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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호 칼럼]현충일에 생각해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

김평호
  • 입력 2022.06.0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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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호 전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저술가

[김평호 칼럼]현충일에 생각해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

난 국제정치/외교 전문가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꼼꼼히 공부한다. 무섭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기후위기로 지구의 생존여부가 위태로운 지경인데, 심지어 핵전쟁(?)까지 우려되는 수준으로 진행되는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거기에 빠져나올 수 없이 얽혀 있는 한국. 그러니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고 대충 지켜볼 수도 없다.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우리가 바꾸어야 할 생각 중 첫째는, 러시아가 저지른 침공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생각, 둘째는 러시아만 이기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러시아 침공이 직접 원인인 것은 맞지만 그건 앞뒤 맥락을 잘라낸 초등학생 수준의 관점이다. 사실 이 전쟁은 피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게 중요하다. 또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이길 가능성은 제로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전투야 멎겠지만 그것이 사태의 근본종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중요하다. 경제제재도 그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려 러시아가 경제전쟁의 승자라는 기사가 영국 언론에 등장했다. 러시아에도 어려움이 가중되겠지만, 정작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당장 한국도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난리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이미 예고되어 있다. 집권당의 중간선거 패배는 미국 정치의 전통인데 민주당은 스스로 미리 그리로 가고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 사태는 외교적으로 풀릴 것이다. 언제일지, 그 내용이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겠지만... 그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될까? 당연 우크라이나다. 미국의 전쟁 대리인으로 뛰었던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이다. 전략적 판단의 오류로 치러야 할 대가 역시 거대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원인 제공자인 러시아도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는 사태에 조금만 관심을 두면 다 알 수 있는 상식 수준의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첫 번째 질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근본원인이 무엇인가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1990년대 초반, 클린턴 정부 1기 때부터 등장하고, 2기 때 공식화된 미국의 나토확장 정책이다. 역으로 말해 나토확장 정책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클린턴 정부는 왜, 그 무렵 나토확장 정책을 추진하고 공식화했는가이다. 이에 대한 많은 설명들을 종합하면, 1. 냉전 종식 이후 국제질서의 기본구도, 전략, 정책 등에 대한 논의 본격화. 2. 93년 군대까지 동원되었던, 옐친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 사태 같은 러시아 내부의 위기. 3. 94년 체치냐 전쟁. 4. 94년 중간선거와 미국 정치판의 변화. 5. 96년 11월 대통령 선거 등과 같은 국내외적 요인들 때문이다. 

1, 2, 3 같은 국외 요인들 때문에 냉전 이후 유럽 안보질서, 나아가 세계질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중요한 의제가 되는 건 상식이다. 문제는 논의의 내용이고 수준이다. S. 월트 같은 하바드대 교수는 미국 내에서 그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는 사실상 없었다고 혹평하고 있다. 그의 비판에 비추어보면, 나토확장 정책은 결국 국내 요인들과 엮이면서 클린턴 정부가 만든, 또 이미 만들어졌던 패권 제국의 노선—월포위츠 독트린으로 알려진—을 그대로 따라간 결과물이 된다. 4, 5 등의 국내요인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혁명이라고 할 만큼 미국 정치판의 대변동이 일어난다. 하원/상원/주지사 모두 공화당이 압승했다. 이건 거의 40여년 만에 일어난 미국 정치판의 대격변이다. 이건 별도의 긴 이야기이고, 이 중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부분만 짚으면, 공화당이 이때 내건 공약 중 하나가 국가 안보강화 정책이었다. 내용은 미군은 유엔 지휘에서 예외적 위상으로 두고, 미국의 유엔평화유지군 지원액도 삭감하며, 동유럽 국가들이 원할 경우 나토에 편입시킨다는 것. 이건 그 다음해 입법화되었다. 이 같은 94년 선거 결과가 민주당 클린턴 정부의 나토 관련 정책논의를 더욱 자극했고 다가올 96년 대선에 대비하는 선제적 안보공약으로 확정되었다. 이 같은 결정은 또 이천만 정도에 이르는(1990년대 후반 기준) 동유럽/중유럽 출신의 유권자 집단을 고려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클린턴 정부의 결정에 대해 당시 미국 내에서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 전직 국무성 고위 관리부터, 소련과 동유럽 국가 주재 전직 대사들, 군축협상 고문과 유엔 파견 대표, 그리고 저 유명한 G. 케넌, 그리고 소련 전공 학자들까지 나서 그것이 국제 안보질서에 끼칠 파장을 우려하면서 공개서한과 칼럼, 논문 등을 연달아 발표했었다. 이들이 제기한 비판의 요지는 나토확장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동유럽과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중요하다면 EU가 훨씬 효과적인 조직이지, 냉전기구인 나토를 확장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토확장이 오히려 안보위기를 조성하면서,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민주주의를 더 요원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2차 대전 이후, 냉전경쟁 체제의 국제 안보구조를 설계한 전략가로 유명한 G. 케넌은 1997년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경고성 컬럼에서 ‘... expanding NATO would be the most fateful error of American policy in the entire post-cold-war era.’라고 썼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는 케넌이 우려했던대로 냉전 이후 미국의 가장 치명적인 전략적 오류가 돼가는 형국이다. 3차 대전의(?) 불길한 도화선까지도 걸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엔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의 경력도 연관돼 있다. 당시 그는 상원의원으로 1998년 클린턴 정부의 나토확장 조약안에 찬성표를 던졌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보는 관점에 대해, 만약 멕시코와 중국이 군사동맹을 맺는다면 미국이 어떻게 나오겠는가를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그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대입해보라고 말한다. 1961년 미국은 이미 쿠바를 한 차례 침공했고, 그 다음 해에도 침공을 계획했다. 이후 쿠바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소련과 함께 핵 미사일을 들여오기로 했다. 그때 미국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다 아는 이야기이다. 나토확장에 대해 러시아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그와 동일한 것이라는게 그들의 지적이다. ‘그것이 러시아의 오해다, 왜곡선전이다, 나토는 수비기구지 공격기구가 아니다’ 등등은 서방의 주장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씨앗은 이미 30여 년 전에 워싱턴에서 뿌려진 셈이다. 1차 대전의 씨앗은 비엔나에서, 2차 대전의 씨앗은 파리에서 뿌려졌었다. 생각해보면, 우울하게도, 세계의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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