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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50] 리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피네건 다우니 디어의 ‘전람회의 그림’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5.30 09:21
  • 수정 2022.05.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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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29일 일요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못 볼 뻔했다. 안 그래도 하루가 머다하고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다른 연주회들 때문에 예당에 출근하다시피 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보상심리일지 아니면 이게 3년 전 봄의 당연했던 우리 일상이었는지 어딜 가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마당에, 더군다나 요즘같이 야외 활동과 여가를 즐기기에 최적의 날씨를 보이는 와중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고 표를 구하기 힘들 거라는 걸 예상 못 하고 안이했다. 아차! 이제 코리안심포니가 아니지... 어엿한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라 정기연주회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올해 국립심포니로 재탄생하고 필자가 첫 번째로 접하는 같은 얼굴, 다른 이름이다.

위풍당당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위풍당당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입장하니 노쇼와 초대받았지만 오진 않은 좌석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이렇게 오지 않고 비워둘 바엔 정말 음악과 국심(이제 약자인 국심으로 불러야겠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양도를 하면 되는데 이 자리의 소중함을 모른단 말인가! 물론 클래식음악회의 좌석은 그날 연주되는 곡들과 연주하는 예술가들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이해하고 좋아하냐는 그런 음악적 기준이 아니라 돈과 권력으로 좌우되지만 후술할 음악회 인터미션 때의 해프닝과 연결되어 조금 씁쓸했다.

창작곡을 연주해야 하는 건 국심으로서의 너무나 당연한 과제이자 시대 사명이지만 더 이상 겨우 음악대학의 몇몇 작곡과 교수들과 그들의 문도 내에서만 통용되는 문헌적이고 아카데믹한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국 클래식 음악 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얼마 전 대통령 취임식 때 연주되었던 남녀노소 다 하나가 되어 어깨동무를 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한 지역을 넘어 글로벌한 스탠더드가 되어버린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같은 곡 어디 없는가? 한국 클래식 창작 100여 년 동안 그런 곡이 없으니 대통령 취임식이라는 기념적인 자리에 영국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외국곡이나 연주하지 100여 년 동안 우리 한국 작곡가들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서울시향에서도 정명훈이라는 지휘자의 스타성에 기대고 언론에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전형적인 무슨 무슨 ~~제, 콩쿠르 류의 입상과 수상하면 덮어놓고 유명해지는 문화예술인들 중, 진은숙이라는 작곡가의 콜라보를 통해 수년간 수억 원을 쓰면서 남긴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들의 커리어와 동종업계 내에서의 컬렉션과 영향력을 기른 것이라면 몰라도.....위정윤의 '번짐 수채화'가 끝나자 의례적인 박수가 나왔지만 작곡가를 객석에서 찾는 제스처를 지휘자가 취하자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순식간에 모든 박수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다. 멍 때리다가 확 깬 순간이나고나 할까? 다음 곡으로 오늘 연주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이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중 엔딩 '키이우의 대문'(원래 키예프였지만 키이우라고 우크라이나 발음을 해야하니)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이제 국심이라는 위치에 맞게 '학술'에서 벗어나 국민을 '통합'하라!

피아니스트 루카스 본드라첵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한 루카스 본드라첵은 저돌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연주의 원인을 알 만했다. 1악장 2주제에서 섬세함은 산 같은 덩치와는 딴판이었다. 전반적으로 너무 몰아가고 속주 위주에 마치 스페인의 투우장에서 성난 황소 같다. 한 손의 속주시 그의 다른 한 손은 허공에 맴돌며 포인트를 짚는다. 지휘자 피네건 다우니 디어는 질풍노도의 10대 아들이 폭주하지 않게끔 온몸으로 잡아주고 인도하면서 이끌어가는 삼촌, 아버지 같았다. 루카스 본드라첵은 1990년생의 다우니 피어보다 고작 4살 많은 1986년생임에도 말이다. 

인터미션 때 2에서 3층 사이의 오른쪽 박스 석에서 고성이 터졌다. 관객과 하우스 어셔간에 실강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자세한 정황을 기입하진 못하겠지만 홀에서 안전과 관람 매너 유지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과도한 감상권 제재가 원인이었다. 필자가 멀리서 두고 보다가 오지랖이 발동해 직접 현장에 가서 중재 또는 원인을 기사화하려 갔더니 하우스 어셔는 이미 1층으로 내려가 버렸고 당사자인 남자 관람객은 너무 흥분해 있어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홀 특유의 권위주의에 찌든 과도한 제재와 통제가 원인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꼭 이번만이 아니라 흔하긴 하다. 우리나라 공연장의 주객전도의 오만은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하우스 매니저와 어셔들은 갈 때마다 바뀐다. 그들은 융통성 하나도 없다. 아니 발휘할 수도 없게 매뉴얼대로만 처리하게끔 교육받는다. 딱따구리같이 방침만 반복한다. 통제와 제약에 억지 논리를 일삼으며 그들에게 항의와 하소연을 해봤자 입만 아프다. 마치 벽창호에 대고 혼자 말하는 거와 같이 소통이 안되고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그들도 무슨 권한이 있는 게 아니고 편의점 대신 예술의전당이나 금호아트홀, 장천아트홀 같은 홀에서 일하는 걸 택한 알바생에 불과하니 특별히 공연예술에 대한 워크에식과 직업윤리가 투철한 것도 아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 그럼 도대체 홀의 주인은 누구인가? 홀의 존립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 홀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경영과 행정가들? 아니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다. 듣고 보는 사람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언제 어디서든 FAN이 제일 우선이 되어야지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그런 짓을 하면 이유 불문하고 귀한 발걸음과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으러 온 공연장이 불쾌하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행정 편의적인 옥상옥이 되어 버린다. 이런 공연장들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손 좀 봐줘야겠다. 유인택 사장? 피아니스트 김용배? 절대 그들은 이런 거 못 고친다. 사장이나 대표 윗 사람 한 명 바뀌었다고 굳어버린 관습이 절대 바뀌지 않고 어차피 임기 마치면 나갈 사람, 늘공들 절대 상대 못한다. 자리 욕심 없고 오직 음악만이 우선인 사람들이 음악이 주는 감동만을 원 없이 누리면서 음악에 헌신할 사람만이 이런 관행 아닌 관행을 뜯어고칠 수 있다.

지휘자 피네건 다우니 디어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전람회의 그림'은 첫 호흡부터 너무 빠른 듯해 왠지 불안하더니 금관 파트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렇게 각 단원들의 기량으로 승부해야 하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바르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같은 거 말고 응집력 있는 사운드 위주의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이 다음 국심의 레퍼토리라니 기다려진다. 이제 국심도 되었으니 정부의 지원과 국민들의 기대에 부흥하게 국심으로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체질과 국심이라는 이름에 맞는 전 세계에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 클래스 기준의 연주력도 구비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혹독한 물갈이와 체질 개선도 동반될 거고 한동안 잡음이 없을 수가 없겠지만 국민은 그걸 원하고 그게 최소 기준이 되어야지 명찰만 바꿔단걸로 그치면 안된다. 일단 오늘 연주회를 통해 국심의 인기가 서울시향에 육박하며 다른 KBS나 경기필 같은 한국의 어떤 경쟁 오케스트라에 비해 위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이제 그들과 같은 선상에 있고 안주하라고 국심이 된 게 아니니 무한 책임과 환골탈태의 각오를 수반해야 한다. 필자도 반성했다. 다음 국심의 연주회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리 티켓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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