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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47] 리뷰: 소프라노 최정빈 독창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5.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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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일 일요일 오후 7시30분, 영산아트홀

간만에 주제가 있는 진중한 소프라노 독창회를 접했다. 서울예고와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건너가 다름슈타트와 할레에서 수학한 소프라노 최정빈이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장편 운문 희곡인 <파우스트> 중에서 '그레첸의 비극'이란 불리는 1부의 내용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가곡과 아리아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독창회를 개최했다. 그래서 음악회 제목도 그레첸이라는 애칭을 가진 순수하고 신앙심이 깊은 마르가레테(Margarethe)다. 피아노 반주는 역시 서울예고와 연세대학교를 나오고 독일 드레스덴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한 김소강이 맡았다.

피아니스트 김소강(좌)와 소프라노 최정빈

무엇보다도 이것저것 진열한 전형적인 백화점식 소프라노 독창회가 아니라 반가웠다. 가수가 제대로 된 자신만의 고유 레퍼토리를 평생에 걸쳐 한두 개라도 확보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독창회에 가면 모국어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워하면서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로 된 노래들은 다 하나씩 선보인다. 가수마다 성량과 스타일이 다르고 잘하고 못하는 장르가 있을 건데 종교곡부터 가곡, 오페라 심지어 뮤지컬까지 보여준다. 이런 잡탕이 듣는 사람과 소통이라도 된다면 더할 나위 즐겁고 신나는 놀이동산 같은 선물일 건데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딴 세상이다. 그런데 오늘의 독창회는 무엇보다도 주제가 명확했다. 거기에 맞춰 소프라노 최정빈이 연구하고 선곡하였다. 이것저것 나 할 줄 안다고 보여주기식 독창회가 아닌 심포지엄, 학술대회, 가곡연구회의 발표회, 문학의 밤 같아 들뜨고 붕 뜨지 않고 차분했다. 하나의 주제에 여러 작곡가들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을 비교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적하게 눈을 감고 독일 가곡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아쉽게도 2부에서는 갑자기 몰려온 누가 봐도 '나 성악전공자야~~'라고 티가 나는 체형과 목소리의 최정빈의 동문들에게 혼자 뒤에 앉아 있던 좌석이 둘러 쌓여져졌지만 말이다.

무대인사하는 소프라노 최정빈

포스터와 프로그램에서의 최정빈을 보고 쇼트커트에 현대적인 외모의 아가씨로 여겼는데 괴테 시대, 유럽 부르주아 또는 귀족 가문의 장발을 한 드레스를 입은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마르가레테로 분한 최정빈이 무대에 출연했다.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거기에 맞는 노래들을 연달아 불렀다. '툴레의 왕'에서는 젝켄도르프, 슈베르트, 리스트가 동명 또는 같은 내용으로 곡을 썼다. 즉 우리 식으로 하면 찾아보면 수백 개는 족히 될 가곡으로 작곡된 윤동주의 '서시'나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같은 노래를 하나로 묶어 여러 작곡가들의 노래로 들려준 셈이다. 두 번째 챕터인 '나의 평온 사라지고'(Meine Ruh ist hin)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은 슈베르트의 '물레 감는 그레첸'인데(이 곡의 마지막에 저 가사가 나온다) 물레 돌리는 속도가 어찌나 숨 가쁘던지 물레 돌리다가 실이 툭 하고 끊어질 거 같아 조마조마했다.

소프라노 최정빈 독창회 포스터 

최정빈은 뢰베와 찰떡궁합이었다. 세 번째 챕터인 '아 굽어살피소서, 고통이 많으신 성모님이시여'(Ach neige, Du Schmerzenreiche)에서의 2번째로 부른 뢰베의 곡은 소리도 곧고 잘 뻗어나가 홀도 따뜻하게 채워졌다. 그녀에게 딱 맞는 음역대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마지막의 저음도 잘 안착했다. 연속해서 슈베르트의 '그레첸의 기도'는 바로 앞의 뢰베와 유사하게 시작한다. 풍성하고 소박하다. 그러니 최정빈의 소리에 딱 들어맞는 연타석 홈런이었다.뢰베도 '툴레의 왕'이 있는데... 그럼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뢰베 역시 모든 챕터에 다 등장할 수 있었던 작곡가다.

오페라가 빠지면 서운하다. 독일어를 넘어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어로까지 뻗친다. 신기할 일도 아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유명한 오페라는 독일인에 의해 창작되지 않았다. 옆 나라 프랑스인 구노의 작품이다. 그럼 괴테와 같이 시공간을 넘어 끊임없이 창작욕을 북돋고 계속 연달아 2차, 3차 생산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문학적 원천이 우리나라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괴테 같은 사회 이슈적인 문제를 초월하여 인간사 천태만상을 다루는 작가가 우리나라엔 누가 있을까? 괴테의 <파우스트>하나로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음악, 문학, 미술, 조각, 무용 모든 걸 총망라해서)에게 영감을 주고 셀 수 없이 많은 스핀 오프를 양산하며 지금까지도 작품의 해석에 대한 논문이 수없이 나오고 있는가! 모든 사람, 집단, 민족을 넘어, 남녀노소 갈등과 이념을 넘어 인간 본연의 심성을 다루고 전 지구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이 뭐가 있을까?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칼의 노래'의 김훈? '토지'의 박경리? 모국어를 초월하여 번역까지 완벽하여 보편적인 인간 공통의 관심사를 건드릴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스토리텔러는? 차라리 작가로서의 이문열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곡이라도 이번 최정빈의 접근 같은 시도라도 흔하길 먼저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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