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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41] 리뷰: 임현정 바흐 평균율 리사이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4.1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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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7일 일요일 오후4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임현정하면 '왕벌의 비행' 동영상으로 뜬 유튜브 스타이자 SNS를 통해 활발하게 대중들과 소통하는, 현대 트렌드와 미디어의 흐름을 일찌감치 포착하고 거기에 자신을 맞춘 브랜드와 전략을 짠 연주자 정도 인식되었다. 남들이 다 하는 방법으론 절대 부각할 순 없다는 걸 파악하고 유튜브를 통해 자신을 노출시키고 청중과 팬을 찾아서 만들어간 사람이다. 신문, 방송 등 전통 매스미디어 대신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창작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로 2년 전, 코로나 초기, 경각심이 극도로 달했을 때 내한을 감행, 큰 이슈를 만들었던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와 유사한 케이스다. 또한 과도한 제스처와 표정, 미믹(mimic) 등의 외적인 요소로 어필한다는 평도 다분한 연주자인데 그녀가 다른 곡도 아닌 바흐의 평균율로 리사이틀을 개최한다고 하여 4월 17일 일요일, 고양아람누리에서의 공연을 보러 일산으로 행차했다.(안산이나 천안, 강릉으로 갈 순 없는 노릇이니 그나마 제일 가까운...)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The Original Beauty

임현정의 바흐 평균율은 연주자의 자의식이 너무 강해 기존 바흐의 문법을 깨고 바흐라기보다는 임현정스럽다. 통상적인 해석과는 거리가 멀고 속주 위주다. 마치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를 치는 듯 과한 피아니즘을 추구하며 재즈적인 즉흥 요소도 다분하다. 오늘의 평균율 2권의 C#-Major 전주곡은 내가 아는 그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리게티(LIgeti)의 클러스터 음향 또는 미니멀리스트의 현대곡으로 둔갑이 되어버릴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특히나 토카타로 된 전주곡에서는 모토릭(Motoric)이 빠르다 못해 질주를 해버렸다. 개별적인 음들의 또박또박한 발음이 아닌 흩날리고 전체를 위한 수많은 구성음 중의 하나로 치부되었다. 2권 c-minor 푸가 주제의 악센트는 일부러 뒤로 빼 밀리게 처리하기도 해 강약의 스위치로 인한 구조의 해부가 이루어질 정도였다.

4월 17일 아람누리에서 만난 바흐 평균율 연주목록

전체적으로 임현정의 바흐를 이루는 더 나아가 임현정이라는 피아니스트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독특한 개성과 파격, 신선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주에 기존과는 다른 악센트 이동을 통한 재해석이다. 원곡을 2022년의 기호에 맞게 Remake 했다. 바흐 평균율 피아노 곡집의 대표적인 연주자로 굴렌 굴드가 떠오른다. 1955년에 굴드가 골드베르크변주곡으로 그리고 잇따라 평균율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의 센세이션이 오늘 임현정의 평균율에서 느끼는 그 감정과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이 비슷했을까? 흔히 알고 있는 바흐가 아닌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바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게 표본이자 정격 연주의 정석이어야 한다는 거 또한 지나친 관습적이자 학습적인 선입견이지 않을까? 바흐야 만큼 서양음악사 통틀어 실용음악의 대가가 또 어디 있는가! 미사곡을 쓰고 예배를 집행했으며 오르간을 치고 성가대를 지휘하고 그 당시 발명(?) 되고 개량된 악기들을 위해 곡을 쓰고 학습용 작품을 남긴 세상의 모든 음악을 품은 유니버설 한 생계형 직업 음악인이었는데 지금 바흐의 작품은 문헌적인 요소로만 자리 잡아 연구과 보전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이런 박제품에 임현정 같은 개척자가 나와 시대와 트렌드에 맞는 생기와 파격을 불어넣어야 계속해서 생명력을 얻고 고리타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람누리 한칸에 세워진 공연 배너

음악회의 시작부터 이상하게 홀의 잔향이 강하고 피아노의 공명이 심하고 울림이 오래 파생되어 혹시 페달에 이상이 있나 구석구석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요인이 있나 찾아보고 갸우뚱했는데 리사이틀의 반환점을 돈 E-Major가 끝나고 마이크를 쥔 임현정에 의해 의문이 풀렸다. 객석에서는 알아차리고 볼 수 없게 홀 위에 피아노를 연달아 두 대를 바로 옆에 부착했던 것이다. 즉 한 대는 치지 않지만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뚜껑까지 열어두니 옆의 피아노에서의 소리의 잔향이 다른 한 대에 남아 그대로 전달되면서 하모닉스(이걸 임현정은 교감공명이라고 지칭하더라!) 효과가 남 셈이다. 그러면서 설명하길 바흐의 곡들이 오르간 또는 교회에서 연주되어서 그런 효과를 살리려고 한다는 거였는데 이런 스테이지가 임현정의 장단점을 여과 없이 들어내는 하나의 예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이야 그런 점에 신기해하고 함성을 지르며 응원하고 감탄하겠지만 그건 일종의 이벤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쇼에 불과하다. 박수를 어디서 쳐야 되는지도 모르고 바흐의 평균율은커녕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순박한 일반관객들에게나 먹히는 마법이지 내공 강한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거부감만 들고 반사되어 임현정에게 반감이 쏴진다.

무대인사하는 피아니스트 임현정

개인적으로 인문학이네 토크네 힐링이네 따위의 부재를 붙여 연주만 하는 게 아닌 해설과 설명을 곁들인 콘서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유튜브 방송 역시 떨떠름하다. 대중들에게 클래식을 알리고 소개한다는 명목하에 요 3~4년 사이에 부쩍 생겨난 이런 현상은 처음의 순수한 음악에 대한 봉사와 사명이라는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연주력 떨어지고 노래 안되는 사람들이 새로운 활로로 대중들과 접촉하는 수단으로 삼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에고(Ego)를 들어내고 성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전락되어버려 웃음과 애교 팔면서 가십성 신변잡기, 흥미 위주 음악계 비하인드스토리나 들려주면서 대중들의 관심과 조회수 구걸에 나서기 때문이다. 특히 임현정 보다 한 세대의 위의 4-50대 음악가들 사이에서 마지막 활로로 이런 방법을 택하는데 임현정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의 연주력으로 큰 차이점을 보인다. 그녀가 택한 게 바흐다. 쇼맨십 강하고 4차원적인 랑랑도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통해 그런 모습이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인정을 바라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고독한 홀로서기와 독고다이로 학벌로 똘똘 뭉치고 아카데미즘이라는 미명 하에 경직되고 무개성의 '참 잘했어요~~' 연주자, 레스너만 넘치는 이 구역(Field 또는 일본어 단어를 차용한다면 표현이 딱 찰지겠지만)에서 여기까지 이룬 그녀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인터미션도 없이 1시간 넘게 바흐의 곡들을 연주할 수 있는 체력, 논리와 체계가 없으면 도저히 습득 불가능한 바흐를 암보로 연주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 1권 g#-minor 푸가의 주제에서 보여주었던 인위적이지 않았던 모티브 표출 등은 이미 임현정이 엔터테이너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비르투오소에서 대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증명했고 잠재력이 높다. 2년 전 마치 전쟁이 일어날 걸 미리 예측했다는 듯 고향이 키이우에 계신 어머니가 연주 중에 떠올라 도저히 함머클라비어를 완주하지 못하고 자기가 유튜브에 올린 맨날 주구장창 치는 곡들로 스테이지를 채워 실망감만 안겨준 발렌티나 리시차와는 비교 자체가 모욕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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