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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50

윤한로 시인
  • 입력 2022.04.09 23:56
  • 수정 2022.04.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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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2

 

나라는 사람

아름다운 가재골에 참으로 민폐입니다

빈둥빈둥 놀면서

여전히 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억지 시 치장 시 거짓 시 쓰기를 일삼으니

진종일 약 주고 거름 내고 가지 치고

풀 뽑고 꽃 따고 해서 지친 분들께

늘 죄짓는 마음입니다

어느 날 조금이라도 보속이 될 수 있을까

가재골 삼류 시인으로서

활동 수칙 몇 가지를 주렁주렁 정합니다

남들 땀 뻘뻘 흘려 일할 때

논둑 밭둑 가로지르지 않고

깔깔 크게 소리 내어 즐거워하지 않고

미카엘라와 둘이 붙어다니지 않고

적어도 대여섯 걸음은 떨어져 다니고

털끝만큼이라도 거들먹거리지 않고

요란 떨지 않고 특히

몸에 너무 딱 맞는 옷 입지 않고

될 수 있으면 풍덩하고 헐렁하게 걸치고

언제 어데 누구한테나 허리 굽혀

꼭꼭 먼저 인사드리고

내 나이 어린 줄 알고

반말 써도 고까워하지 않고

이분이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또 저분이 아니다 저렇게 하라면

또 그렇게 하고

상추 뜯어 가라고 할 때 상추 뜯어 가고

오이 따 가라고 할 때 오이 따 가고

두 번 세 번 열 번이라도

말씀들에 귀기울이고 곧바로 실행하고

마지막 커피보다는 율무 마시고

마침내 축사 냄새와 친해지고

따위들이네

 

 

시작 메모
이우지 두보 할멈이 저번날 밤 또 궁둥이 훌떡 까고 골목에 나와 오줌을 누신다. 미카엘라가 깜짝 놀란다. 집에 화장실 두고 왜 밖을 나와 저러신다지. 아마 봄이 돼 그런겨. 꽃도 막 피고 새들도 날아다니고 거시기 하니. 우리 마당도 손바닥만 한 마당이지만 애법 여럿 심어 놓았더니 보는 맛이 난다. 매실, 산수유, 블루베리, 장미, 모과, 꽃댕강, 미선나무, 둥시감, 더덕, 둥근잎꿩에비름. 그런데 그렇게 좋던 앵두가 해를 거르는지 삐리삐리 시원찮다. 줄기 껍질이 덕지덕지 틀어지며 시커멓게 타고 내내 꽃을 달지 못한다. 가슴 아프다. 겪어 보니 낭구 또한 사람 아픈 거 유도 아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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