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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정의를 말하는 국민이 투사가 되는 나라는 나쁜 국가다

김문영 글지
  • 입력 2022.03.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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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상실감 어떻게 치유할까

 

우리나라는 세계 6대 군사강국, 세계 7대 무역국,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이런 성과를 고려한다면 선진국에 확실히 안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6.25 동족상잔 직후 거의 세계 꼴찌 수준으로 가난했던 나라가 이와같은 성과를 이룩하게 된 것은 기적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K-시리즈를 내세워 대한민국을 부러워한다.

그런데 이와같은 성과를 피부로 느끼며 행복해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많은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다.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부는 소수에게 편중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은 가난한데 소수의 국민은 돈을 주체하지 못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십만명씩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명품을 세일하는 유명 백화점 앞에는 구매 기회를 얻기 위해 고급 이부자리를 깔고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작은 육신 간신히 눕힐 수 있는 쪽방에서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고독하게 생명줄을 놓아야하는 사람도 있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이론적으로 천박한 자본주의가 몰고 온 모순으로 방치만 하기에는 더더욱 답답한 현실이다. 부익부빈익빈이 끝간데없이 확장되는 상황이 공동체를 힘들게 한다. 아프게 한다.

우리에게 이토록 아픈 천박한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전파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지금은 더욱 강하게 전세계 자본의 흐름을 움켜쥐고 쥐락펴락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국민들은 행복할까. 미국 주요도시 번화가 뒷골목을 가보면 부랑아 노숙자들이 쉽게 눈에 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부의 양극화가 훨씬 더 심한 것같다. 저런 모순을 안고도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으로 군림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극단적인 개인의 빈부격차는 금방이라도 공동체를 무너뜨릴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36년간 직접적인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를 통해 천박한 자본주의가 자리잡은 대한민국도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모순을 당당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진실을 말하면 투사가 되는 것이다. 아니 아직도 '빨갱이=공산당•괴뢰'로 몰리고 있다. 해방이후 끝간데없이 이어져온 빨갱이 타령이다. 구체적으로는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 이후 없었던 말이 생겨나 부정적인 단어로 고착화되었다. '군부독재 타도, 민주쟁취'를 부르짖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편향된 언어로 더욱 고착화되었다.

전후 세대의 대부분 국민들이 그러하듯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박정희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해 있었다. 북한은 이리 늑대와 같은 괴뢰 집단이고 북한군은 괴뢰군이었다. 하루가 멀다않고 간첩을 잡았다는 뉴스가 넘쳐흘렀다. 실제 간첩을 잡은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가 '000 간첩단 검거'와 같은 소식이었다. 먼훗날 밝혀진 사실이지만 '000 간첩단 검거'는 국가권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 많았다. 선량한 국민이 영문도 모른채 간첩이 되어 정권을 보호하는 장벽이 되곤 했다. '간첩신고는 113' 표어와 어마어마한 신고 포상금이 발길 닿는 곳마다 붙어 있었다. 멀쩡한 국민을 간첩으로 오인하여 신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각급 학교에서는 반공교육이 철저했다. 반공을 주재로 한 글짓기 웅변 그림그리기......등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도 교육위원회가 주최하는 도내 시조 짓기 어린이백일장에서 나는 장원을 차지한 추억이 있다. 제목은 '장마'였다.

 

장마는 장마는 심술쟁이 인가봐

공산당 먹구름 쏜살같이 달려와

평화의 우리마을 울리고 갔어요

 

장마에 집을잃고 엉엉우는 수재민

따뜻한 동포애로 모두가 도와주어

절망의 구렁텅이서 구출하여 줍시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의 머리 속은 공산당=이리,늑대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 홍수로 집을 떠내려가게 한 장마, 그 장마를 몰고 온 먹구름을 공산당으로 여기는 것은 반공교육으로 세뇌당한 어린이의 당연한 상상력일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웃기는 일이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1968년에는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되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만 수업이 시작되었다. 세뇌의 힘은 무겁고 강했다. 반공 이외에는 일체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에 '빨갱이'가 되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학생들의 조직을 학도호국단으로 편제하여 군대처럼 운영했다. 대학에 진학하여 '학도호국단 폐지 총학생회 부활'을 위한 학생운동을 전개했으니 참으로 아스라한 추억이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의 인생은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울타리에 갇혀 한발짝도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했던 암흑의 시대였다. 이런 현상은 대학에 진학한 신입생 시절까지는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잘못 말하거나 행동하면 '빨갱이'로 낙인찍혀 무리로부터 팽당하거나 외톨이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생활 초입을 벗어나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사회의 부패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왜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인지 가난의 울타리에 갇힐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것을 터득하는 것은 선배들과의 술자리 또는 해적판 문서 공부를 통해서였다. 지금이야 모든 서적이 자유롭게 출판되어 자신이 궁금하게 여기는 부문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지만 당시는 '불온서적'으로 분류하여 법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읽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지금은 궁금한 지식을 온라인을 통해 무한정 취득할 수 있지만 당시는 그러지 못했다.

박정희가 심복 김재규의 의거에 의해 죽고 그자리를 신군부 전두환과 하나회 일당이 5.18 광주민중항쟁을 발판으로 차지했다. 수많은 국민을 총칼로 죽이고 정권을 찬탈했다. 박정희 군부독재는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독재로 이어졌다. 군부독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총학생회를 부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군부독재 타도, 민주 쟁취의 정치투쟁에도 적극 참여했다. 당시는 민중 민주 민족의 삼민투 운동도 유행했다. 통일운동도 활기차게 일어났다. '어려운 살림에 대학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한다' 고 많은 부모들이 걱정하는 시절이었다. 진실과 정의를 주장하면 투사가 되는 시절이었다. 진실과 정의를 주장하는 국민이 투사가 되는 나라는 나쁜 국가다.

나쁜 국가의 현상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지속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호헌철폐 운동에 가담했고 노동운동에도 적극 앞장섰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운동을 통해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달성하는 성과를 얻었다. 산업화를 통해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는 달성했을지언정 상대적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너무나 많다.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한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족 분단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부조리와 부딪혀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촛불로 정권을 바꿨다. 촛불혁명을 달성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촛불의 꿈은 적폐청산 평화 번영 통일이었다. 촛불의 꿈은 불과 5년 만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촛불혁명은 좌절되고 말았다.

군부독재를 끝낸 자리에 검찰독재가 들어선다.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에 집무실 이전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집무실 이전보다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있는데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모습을 보니 향후 5년의 정치가 몹시도 걱정된다. 걱정이 커져 눈앞이 캄캄해진다. 검찰독재가 난동을 부린다면 그동안 달성한 민주화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표현할 수없는 '거대한 상실감'에 허탈 허무해하는 국민이 너무 많다. 스스로 잘못 선택한 것을 인지하여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상상할 수없는 상실감을 울분으로 달래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류근 시인의 시 '나쁜 시절' 은 어느정도 치유가 될 것같아 여기에 소개한다.

 

........

나쁜 시절 / 류근

 

10년씩 배경을 뛰어넘는 드라마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숙취에 떠밀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한 국자 비워져 버린 간밤의 기억처럼

시간이 그렇게 큰 걸음으로

풍덩풍덩 달려가 줬으면 좋겠네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미분의 시간들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르는 길이 천축보다 멀고

밤마다 시간이 떨어뜨린 눈썹이

죽은 모래의 뼛조각으로 떠밀려 가네

한 시절 건너가는 일이 거미줄을 밟고 가듯

허공에 발자국 새기는 일처럼 아득하여서

내 절망은 적분 같은 것이네 죽는 날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

시간이 쪼아대는 부리를 견디며

살아남는 것만이 희망인 목숨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

건너가는 것만이 구원인 목숨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두어 달쯤 앞당겨 잘못 찢어낸 달력처럼

짐짓 빈 정류장을 지나쳐 버리는 버스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세단뛰기 하는 육상선수처럼

숨을 몰아 쿵쿵쿵,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네

 

ㅡ 시집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사

.......

 

많은 국민들에게 거대한 상실감을 제공한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시정해나가지 않으면 촛불의 꿈은 달성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고 적폐들이 난동을 부려도 촛불이 우리 민족에게 명령한 '평화 번영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는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거대한 상실감에서 벗어나 촛불의 꿈을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행군을 시작해야 한다. 형식으로는 졌지만 내용으로는 이긴 선거의 의미를 가슴깊이 새기고 다시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지고 연마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군부독재를 대신하는 검찰독재는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통해서 똥묻은 개는 보호하고 먼지묻은 개는 탈탈 털어서 피를 말려 죽일 수도 있다. 진실과 정의를 말하는 국민이 투사가 되는 나라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정말 나쁜 국가가 되는 것이다. 다시 촛불을 밝혀야 할 상황을 선량한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지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횃불을 들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군부독재 시절처럼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그런 상황은 절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국민이 투사가 되지 않고 소중한 국민으로 인정받고 대접받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6 년 ~ 2017년 겨울 뜨겁게 펼쳐졌던 촛불의 꿈..... 어떤 상황에서도 촛불의 꿈을 깨뜨릴 수없다. 꺼트릴 수 없다
2016 년 ~ 2017년 겨울 뜨겁게 펼쳐졌던 촛불의 꿈..... 어떤 상황에서도 촛불의 꿈을 깨뜨릴 수없다. 꺼트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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