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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24] 리뷰: 선율 피아노 리사이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2.06 09:18
  • 수정 2022.02.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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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5일 토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그래~~이 정도는 되어야지 정통 피아노 독주회지. 토요일 오후의 불 꺼진 객석에 혼자 위엄을 뿜으며 열려 있는 검은색 피아노 한대에만 비추는 조명, 턱시도 또는 홀가분하게 와이셔츠에 넥타이만 맨 피아니스트. 음악회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오랜만에 오직 음악만 주가 되어 올곧이 음악과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호연의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다. 클래식 대중화네, 팬덤 형성이네, 방송과 미디어를 통한 클래식 음악팬 확대와 노출이네, 타 장르와의 융합이네, 유튜브로 대중과의 만남이네, 조회수 구걸 등등 세상사의 온갖 소음에서 해방된 불변의 만고진리를 재확인한 정통 기악독주회! 레슨이네 수업이네, 생계 때문에, 체력이 달려서 등등의 자신의 부족함을 합리화하려는 온갖 핑계에서 벗어난 음악이 주가 된 2시간의 대장정!

피아니스트 선율

첫 곡인 장 필립 라모의 <기술적 손가락 훈련을 위한 클라브생작품집 중 모음곡 D장조>부터 단아하면서 고요와 안정, 지극한 평화와 한탄과 애달픔이 공존했다. 1악장은 마치 며칠 전 22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린 설날, 눈 덮인 청계산을 올라가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그 밑에 흐르던 맑은 청정수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마신 듯이 청정했으며 2악장은 가볍고 발랄했다. 거기에 균형 잡힌 적절한 강약 대비가 돋보였는데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뭉개진 게 옥에 티였다. 뭐 그 정도야 독주회의 시작인 워밍업이니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 꼬투리에 불과하다.

알캉의 <이솝의 향연>에서는 왼손이 마치 보탄이 창을 대지에 내리꽂으며 천둥을 불러일으키는 듯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무진장 유치하고 리스트 아류이자 2류 작곡가인 알캉의 곡을 치고 있는 선율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오늘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다음 곡 슈베르트의 <방랑자>가 더욱 빨리 듣고 싶어졌다. 이런 2류 서커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조회수나 관심을 어그로 하는 알캉 같은 작품은 어서 빨리 패스하자고~~~

선율은 이름만큼이나 선율 만들기에 탁월하다. 특히 영롱한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 2악장은 앞의 알캉과의 예술성과 독창성, 위대성에서 슈베르트의 차원을 달리하는 압도함만 여실히 증명하였다. 박력 하나는 끝내주더구먼~~ 4악장은 흠잡을 데 없는 몰입감과 응집력을 선보여 깊은 에너지가 온몸에서 꿈틀대게 만들고 청춘의 꽃을 마음껏 피어오르게 한 진정한 코로나 백신이었다.

유연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4번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지치지 않는 스태미나와 여리게 보이는 외형과 다른 저돌성과 박진감은 라흐마니노프의 <13개의 전주곡 op. 32>로 그대로 이어졌다. 다음은 각각의 곡에 대한 짧은 감상 키워드다.

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주
② 생동하는 리듬
③ 無
④ 같은 건반인데 무게가 다르다. 힘의 안배에서 오는 건반들마다 다른 추의 흔들거림에 섞여서 울리는 페달. 마치 1부를 마치고 들려줬던 신비한 스크리아빈의 음색
⑤ 라흐마니노프와 선율이 함께 연출한 황홀한 아름다움, 왼손의 아르페지오와 오른손 선율의 조화. 마치 천국에 온듯한
⑥ 같은 조로 된 베토벤의 열정을 다음엔 선율의 피아노로 듣고 싶다.
⑦ 부화되기 전의 쿵따라 따라 삐약삐약
⑧ 핑퐁에서 테니스로 그리고 다시 핑퐁으로. 위태로운 곡예에서 조금이라도 미끄러지고 떨어지지 않고.
⑨ 백조와 같은 우아함
⑩ 시베리아의 고드름과 같은 냉기, 차가운 얼음장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날카롭게 흩어지는 파편들.... 베이면 피가 난다. 그 피가 온 시베리아를 물들인다.
⑪ 무덤덤한 릴랙스, 긴장의 압축과 이완
⑫ 탄식하는 골짜기
⑬ 자꾸 앞으로 쏠리게 만드는 움찔움찔, 참아왔던 박수를 언제 쳐야 되지?

얼마 전 유럽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하고 있는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의 소식을 접하고 고뇌에 빠졌다. 승리의 낭보에 기뻐하지 않고 혼자 또 유별나게 딴죽을 건다. 이제는 콩쿠르 하나 우승 정도 따위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부스터샷까지 맞은 대중들은 항체가 강하게 형성되어버려 별다른 반응도 하지도 않는다. 오늘의 독주회를 채운 관객들이 2-30대가 대부분이어서 신기했다. 이상한 괴성이나 내고 분위기 흐리는 잡스러운 관객들이 아니라 다들 전공자인가 싶을 정도로 관람 분위기가 성숙했고 이런 정통 피아노 독주회에 걸맞은 품격이었으나 넘치는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음악인들 홍수 속에 그걸 수용할 시장과 관객층이 존재하지 않은 마당에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 나이 대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음악적 완숙도, 최고 & 최상의 교육을 받고 미디어를 통한 실시간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는 지금의 피아니스트, 음악도들이 펼쳐갈 향후 음악계는 어찌해야 되는지 식자우환이다.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와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2시간의 독주, 피아도 리사이틀에서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앙코르인 브람스까지 듣고 나오니 4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2시간 넘은 묵직한 프로그램에 배가 부르고 흡족하다. 아! 그러고보니 왜 QR만 찍고 어떤 날 와서 무슨 공연 보고 내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되고 어디에 앉아있었으니 하는 개인 정보를 온 천하에 발라당 까야 하는 전자 명부를 적고 보여주지 않았지? 그 사이에 또 바뀌었나? 불과 열흘 전에 토월극장에 왔을 때까지만이라도 했는데..... 1월 20일에 세종문화회관 갔을 때도 캡처해서 보여줬는데... 클래식 음악회 가서 음악 듣다가 코로나 걸렸다는 사람 2년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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