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암기했던 정답이 오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물구나무서기
- 마혜경
나무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어둠을 파헤치고 땅을 보는 것이다
흙이 고집을 버리고 길을 내어주면
조금 수월해질 뿐이다
막무가내로 나아가면 안 된다
물러난 만큼 다가가고 기다려야 한다
빈자리에 헝클어진 머리를 대고
새 살이 차오르듯
흙이 다가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종이와 펜을 잡은 시지프스는
나무가 그랬듯이 안을 바라보는 것이다
달이 깨진 자리
여우가 숨은 사막에서
홀로 별이 되는 것이다
다만 푸른 나뭇가지만이 손목을 비틀어
이 소름 끼치는 사연을
시인에게 수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