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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탐방기: 캐스퍼 강 개인전 '속속속속세세세세'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7.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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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까지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에서 개최되는 캐스퍼 강의 개인전 '속속속속세세세세'

37도에 육박하는 폭염, 열흘 넘게 지속되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나날들, '짧고 굵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하여 코로나를 잡겠다더니 역시나 또 '2주' 연장되고 잡히기는커녕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 정말 사는 게 지옥이 따로 없다. 온갖 오해와 갈등이 난무하는 이 아귀다툼 세상을 벗어나 어딘가 더위와 코로나, 담배 냄새 없는 무릉도원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한 이때,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에서 '속속속속세세세세'라고 4번씨이나 강조한 속세를 주제로 한 캐스퍼 강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8월 22일까지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에서 개최되는 캐스퍼 강의 개인전 '속속속속세세세세'

1981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2004년 서울로 이주, 몇 년간의 건축 회사 근무 이후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캐스퍼 강의 예술세계는 이방인의 관점에서 보이는 한국 전통 시각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모태에 대한 궁금함과 탐구는 모태와 분리해서 살고 태어난 모든 생명체들의 회귀본능과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타자로서 살면서 끊임없이 부딪혀야 되는 족쇄와 같고 진정한 나를 찾는 고행과 같다. 첫 조우에서의 감동과 경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망하고 알지 못했던 것보다 나을 게 없다. 마치 옛 짝사랑이나 첫사랑의 대상과 같다.

캐스퍼 강 입장에서는 밖에서 기대하고 선망했던 유일무이 고유의 존재로서 보전 계승되는 완전체가 아니라 그런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주체들이 그걸 모르고 스스로 과도할 정도로 빠르게 외부의 풍물(캐스퍼 강 입장에서는 본인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변해가는 한국 현대사회에 실망과 상실감을 느꼈을거다. 그건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로 독일 유학을 떠났던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외국에 나간 이유는 단 하나다.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에서 정통으로 그들의 문화와 사물을 익히고 싶다'라는 일념과 목표였다. 처음 3-4년은 마치 스펀지 마냥 적극적으로 그들의 문화와 습성을 받아들이고 독일인화 되었지만 세월이 더 흐르고 몰랐던 실상을 차츰차츰 알수록 애정이 애증으로 변하고 염증이 생기더라. 그래서 10년간의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한편으로는 타자로서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고 성장하고 접한 대상들을 원주민들과는 다른 시각과 생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거 또한 차별점이다. 매일 같은 대상을 무비판적으로 접하고 사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장점이 될 수 있다.

전통 민화를 향한 작가의 관심이 민화의 바탕이 되는 한지로 이어진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경험에 앞서 있는 그 무엇에 대해 선험적으로 다가간다. 즉 형상을 비워내고 완전한 추상적 영역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런 모문화에 대한 생각의 변화과정이 캐스퍼 강의 작업의 근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한지를 그을리거나 색이 있는 한자를 표백해서 번지거나 잘게 찢어 접착제나 회분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입체적인 추상회화가 된다. 한지와 접착제가 섞어지고 한지를 표백하거나 불에 그을려 캔버스에 붙인 그 사라지기 전의 찰나의 형상을 붙잡아 화폭에 일시성을 부여하면서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나아간다. 민화의 밑바탕인 한지의 물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고찰하면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형상이 사라지고 완전한 추상적 회화에 이르게 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한 옛 한국 미술의 매개가 되었던 한지를 '해체'하는 행위를 통해 속세의 덧없음이 그려진다.

이제 왜 전시회의 제목이 속세이며 우리가 폭염과 코로나도 이겨내면서 부득부득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캐스퍼 강의 작품 안에 '삶'이라는 미명 하에 누구나 흔하게 접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뇌, 다른 이들과의 부대낌과 오해, 갈등이 제한된 색과 벽돌과 한지에 쌓인 풍진세상도 눈 녹듯 녹아버린다면 좋을듯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자식만을 일순위로 알고 살며 자식을 덮어주고 다독여 주었던 엄마의 품이 그리워진다. 이젠 그럼 따뜻한 품과 정겨운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고 있지도 않겠지만 모문화의 모(母)자는 엄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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