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의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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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의 버드나무
  • 김정은 전문 기자
    김정은 전문 기자 1poemday@naver.com
  • 승인 2021.03.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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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아래의 사랑
예이츠(사진=두산백과 갈무리)
예이츠(사진=두산백과 갈무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1865년 6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태어나 1939년 1월 28일 프랑스 호텔에서 병사한다. 시인이자 극작가며, 아일랜드 상원의원을 두 번 역임했고 1923년 아일랜드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예술적으로 온 민족정신을 표현한다”고 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후 가장 위대한 작품을 완성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세기 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아일랜드 문학 부흥의 원동력이었으며, 인도 시인이자 노벨상 수상자 타고르와 1월에 소개한 조지 윌리엄 러셀과 절친이다.

​아버지는 법학을 공부하다 포기하고 미술을 했고 어머니는 부유한 상인의 딸이다. 가족은 매우 예술적이고 동생 잭은 존경받는 화가고, 자매 엘리자베스와 수잔 메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롤리와 릴리로 알려졌으며 예술과 공예 운동에 참여한다. 예이츠는 어린 시절 시를 공부했고, 그때부터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비에 매료되어 거의 작품의 주제였다.

​예이츠 아이들은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어머니는 이야기와 아일랜드 민화로 그들을 즐겁게 했다. 예이츠는 청각 장애인이라 수학과 언어에 어려움을 겪었고, 화가를 꿈꾸다 시가 주목받아 시인이 됐다. 청각 장애인에게 자막은 일반인이 외국어를 보듯 그런 느낌이라 한다. 요즘 코로나19로 수어 통역을 옆에서 하는데 바람직하다. 수어는 얼굴 표정과 동작이 중요해서 작은 화면으로 처리하면 보기 힘들다.

그의 알려진 첫 작품은 열일곱 살 때 썼으며, 중앙아시아에서 왕위를 세운 마술사 내용이다. 1885년에 첫 시와 「사무엘 퍼거슨 경의 시」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더블린 대학 리뷰에서 출간되고, 1891년 소설도 두 편 출판한다. 예이츠는 시인 블레이크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를 “작은 일족에게 위대한 진리를 말한 하나님의 위대한 예술인” 중 한 명으로 묘사했다.

신비주의, 영성주의, 점성술에 평생 관심을 가지고 광범위하게 읽었으며 1892년 초, “신비로운 삶은 제가 하는 모든 일과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과 제가 쓰는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라고 쓴다. 힌두교에 대한 연구에서도 영감 받았고 평론가의 비판도 받았다. 초자연 연구 조직인 “유령 클럽”(1911)의 회원이었고, 1889년 열렬한 민족주의자이며 아름다웠던 첫사랑에게 4번 청혼했으나 그가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길 꺼려해서 거절당한다. 첫사랑에 대해 “그녀가 그 시절을 내 인생으로 가져온 것 같다”고 하였다. 그녀는 민족주의자와 결혼하지만 이혼 후 예이츠와 우정을 유지한다. 그녀 남편은 독립운동으로 처형된다.

​부인할 수 없이, 예이츠는 본질적으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여서 초기에 IRA 일원이었지만, 좀 더 단순하고 전통적으로 살길 원해서 1922년 아일랜드 자유 국가 상원의원으로 임명될 때까지 정치와 떨어져 있었다. 1916년 51세에 25세의 무녀인 조지 하이드 리스(1892-1968)와 결혼했고 아내의 친구들은 그가 죽을 거라고 말렸으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은 성공적이었다. 신혼여행 중 예이츠의 후회에도 불구하고.

​앤과 마이클이라는 두 자녀를 두었지만 다른 여성과도 만났다.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이 죽으면, 사람들은 당신의 연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를 기억하기에.”라고 했다. 경치가 좋아 광고에 많이 나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니스프리 섬 주제인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 시도 유명하다. 이 시는 정지용의 「향수」 시와도 닮았다.

​더블린에 가까워질수록 흑맥주의 맛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다. 흑맥주는 더블린의 상징이며 세계 10억 리터가 매년 소비된다. 흑맥주뿐만 아니라 시의 맛도 좋아진다. 더블린의 대표 시인 예이츠의 시 맛을 가까이 음미하기 전에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와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부를 읽어 보자. 비슷한 부분을 발견할 것이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진달래꽃」 일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부)

Aedh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애드는 하늘의 천을 바란다

하늘에 수놓은 천이 내게 있다면

금빛과 은빛으로 짜여진

푸르고 옅고 짙은 천들

밤과 빛과 여명의.

그대 발 아래 펼쳐드리리

그러나 가난한 나는 꿈만 있을 뿐

그대 발 아래 꿈을 펼치니

제 꿈을 밟으니 사뿐이 즈려 밟으소서

 

원래 If I had 가정법인데 도치하고 if를 생략한 거라 가정법으로 해석해야 하고 enwrought는 수놓은, 짜여진인 inwrought와 같은 단어다. 금빛 은빛은 별을 상징한다. Aedh(에이)는 예이츠 시에 나오는 신화 인물로 아일랜드식 남자 이름이다. 여기서 Aedh가 화자다. 나중엔 Aedh를 he로 시 제목을 바꿨다. 내 생각엔 대중성을 의식한 거 같다. 이 시는 모든 영국의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시다.

​가실 길에 뿌린다는 것과 사뿐이 밟고 가라는 것이 「진달래꽃」과 닮았다. 꿈을 꽃으로 바꾼 듯하다. 「진달래꽃」 의미를 생각하면서 예이츠의 시도 즈려밟다로 번역했다. 김소월의 스승 김억(호는 김안서)은 그 당시 예이츠의 시를 번역했다. 자연스럽게 저 시를 접한 김소월이 예이츠를 오마주한 것이다.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의 뜻으로 표절이 아니다. 표절은 같은 문구를 똑같이 하는 거지만 오마주는 영감을 얻어 차용하는 거니 창작에선 좋은 의미고 영화에서도 많이들 한다. 가난한 나 부분은 백석의 시와 닮았다. 백석도 일본에서 영어사범과를 나와 한국에서 교사를 했으니 예이츠 시를 잘 알았을 거다. 백석과 예이츠, 아일랜드 시 비교 논문도 많다.​

누가 누구를 따라했다고 볼 건 없다. 다른 창작에서 영감을 얻는 건 당연한 거다. 어떤 이는 김소월이 예이츠 시를 요즘 의미로 보면 명백히 표절했다 하지만 누구 시를 보고 연상이 돼서 어떤 작품을 쓰는 건 창작의 자유다. 예이츠의 다음 시도 원래는 아일랜드 민요다. 예이츠는 그 민요의 1절을 그대로 시에 쓰고 있다. 그도 표절자인가?​

 

Down By The Salley Gardens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내 사랑과 나 만났네

눈처럼 희고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며

내게 말했지, 쉽게 사랑하라고, 나무에서 잎이 자라듯

그러나 젊고 어리석었던 난 듣지 않았네

강가 들판에 내 사랑과 나 서 있었네

기댄 어깨에 눈처럼 흰 손을 얹고

내게 말했지, 쉽게 살라고, 둑에서 풀이 자라듯

그러나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젠 눈물만 가득하네

 

​down을 꼭 아래서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에서’라고 그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down by도 마찬가지다. 정원에서, 정원 근처에서도 되지만 아래서가 더 시적이라 정원 아래서라고 했다. 나무 앞에서, 나무 근처에서보다 나무 아래서가 더 시적 어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버드나무정원 내리막길에서 내 님과 나는 만났네 라고 하며 임이라고 쓴 번역이 있는데 구투다. 님은 예전에 쓰던 단어이고 내리막길도 여기서는 시적이지 않아 어울리지 않는다. 시를 번역할 때 번역한 시도 시적이어야 한다. 단순히 영어를 한글로 옮김이 아니라 아름다운 문체를 유지해야 잘한 거다. 그래서 시인이 시를 번역해야 시어를 잘 살릴 수 있다.

​salley는 버드나무(sallow)의 고어다. my leaning shoulder를 서로 기댄 어깨니 구부러진, 굽은 어깨로 번역한 것도 있는데 내가 그녀에게 기댄 자세다. 시에서 어리다는 걸 강조하는 걸 보면 그녀는 연상이고 기댄 자세로 정신적인 의지를 표현한 듯도 하다. bid를 쓴 것도 명령, 충고의 의미도 있어 여성이 정신적으로라도 연상의 느낌이다. 첫사랑이 독립운동을 격려했으니 성숙한 정신적 지주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코로나로 취업도 힘들고 생계도 힘들고 앞날도 막막하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이런 시대엔 그저 집에서 자기계발을 더 열심히 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모두에게 조건은 같다. 다른 사람이 앞서가는 게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다니는 대로 코로나 걱정에 재택근무를 원하지만 못하는 경우도 있고, 출근이 싫다는 사람도 있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기엔 사태가 너무 거세다.

​인생은 파도타기다. 거센 물살이 밀려오면 대항하지 말고 피하거나 그 파도를 받아들이고 같이 넘어야 한다.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정신을 무장하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느끼면서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시도 많이 접하면서 인성을 풍부하게 닦으며 기다리자.

When You Are Old

When you are old and grey and full of sleep,

And nodding by the fire, take down this book,

And slowly read, and dream of the soft look

Your eyes had once, and of their shadows deep;

How many loved your moments of glad grace,

And loved your beauty with love false or true,

But one man loved the pilgrim Soul in you,

And loved the sorrows of your changing face;

And bending down beside the glowing bars,

Murmur, a little sadly, how Love fled

And paced upon the mountains overhead

And hid his face amid a crowd of stars.

그대 나이들면

그대 나이들어 흰 머리에 잠이 많아

난로가에서 졸리면 이 책을 두고 보며

천천히 읽고, 아련한 모습을 생각하세요

한때 그대 눈에 담겼던, 그리고 깊은 슬픔을,

얼마나 많은 이가 그대 유쾌하고 우아한 순간을 사랑했고

아름다움을 사랑했는가 거짓이든 진실이든

그러나 한 남자는 그대 순례자 영혼을 사랑하였고

변해가는 슬픈 얼굴을 사랑한 것을,

빛나는 난간에 기대

조금은 슬프게 속삭이세요

사랑이 어떻게 달아나 산 위로 걸어

별무리 속에 얼굴을 감추었는가를

 

fled는 flee 달아나다, 떠나다의 과거이고 bend down은 lean down과 마찬가지 의미다. dream of를 생각하다로 했다 꿈꾸다는 미래인데 내용은 과거라 과거를 회상하는 의미다. look은 book과 라임 맞춘 거라 부드러운 눈길이라기 보다 아련한 모습이 어울린다. 아래 내용 중 화자가 당신의 영혼을 사랑했다는 말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슬픈 얼굴을 사랑했다는 말도 눈에 담긴 깊은 슬픔과 댓구를 맞춘 것처럼.

​1923년 12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예이츠는 이 행사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일랜드가 독립한 직후 아일랜드 우승자의 상징적 가치를 알고 있었고, 가능한 모든 기회에서 이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에게 보낸 축하 편지의 많은 글들에 대한 대답으로 “이 영광이 개인으로서보다 아일랜드 문학의 대표자로서 나에게 왔다고 생각하며, 이는 유럽이 아일랜드 자유국가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아일랜드어 콘텐츠에 집중했고 연극과 아일랜드 장군을 위한 세 곡의 행진곡도 썼다. 새로운 세대의 젊고 떠오르는 아일랜드 작가들과의 관계도 강화했으며 시인의 자매들도 그의 책 70여 권을 제작했고 그 중 48권은 그도 참여했다. 후기 시와 연극은 좀 더 개인적인 맥락에서 썼으며,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작품에는 아들과 딸의 언급과 나이가 들면서 겪은 경험에 대한 명상이 있다. 그의 시는 음악가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사랑의 슬픔」 시에서 ‘사랑을 하니 그대와 함께 세상의 눈물이 모두 들어왔다’고 했다. 예이츠를 읽으니 시와 함께 세상의 눈물이 모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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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2021-04-05 14:34:44
댓글 감사해요.^^ 신언서판이라고 글 쓰는 거 보면 사람을 아는데 님도 한 줄이라도 평을 잘하시는 듯해요.^^ 다방면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읽기 쉽도록 새 댓글로도 썼습니다.^^

최금숙 2021-04-04 13:09:06
전문기자로서 글의 내용이 깊이가 있으면서 폭넓은 사고를 가지고 접근할수 있도록하여 충분히 매력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