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시인
비웃지는 마시라
나는야
종이컵에 시를 쓰는
종이컵 시인
소공원 벤치 위에
구겨질 대로 구겨져
한 줄 또는
끽해야 두 줄
저 꾀죄죄, 일상생활
남몰래 찌그린다오
파리, 모과, 구두, 말번지, 촌충 따위
지각, 조퇴, 염소선생
발가락이닮았다 따위
혹 누군가 볼세, ㅠㅠ
얼굴 불콰히 노래한다오
고달파라 내 영혼
그러구러 별처럼 구름처럼 흐르니
언젠가 뉘렇게 짠 손
그득 한 번은 맑게 읽히리
‘무신무신 눔’
소리 들어가매 다시금 구겨질 대로 구겨젼
나는야 종이컵 시인
그러니 가자,
더 작고 여리게
시시껄렁,
우리 정작 아픈 얘기들은 빼고
시작 메모
종이컵 동시, 종이컵 마음, 종이컵 그리움. 그전에 쓴 ‘종이컵 시’ 몇 개를 묶고 빼고, 끙끙거려 다시 한 편 만든다. 꾀죄죄, 찌그리다, 시시껄렁 이런 말들 억수로 좋아하다 보니 이것들 중심으로 허턱, 엮는다. 시가 어째 길고 휘저어 놓은 듯하다. 삼류 신변잡기 시인의 한계며 아픔이랴만, 저런 말들 버릴 수는 없고 이제 숱해 얼굴 찡그려 잔뜩 짜려나 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