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용원 음악통신 361] Critique: 김선국제오페라단의 보테가 '라보엠' 녹화 현장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21 09:44
  • 수정 2020.12.21 1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치니의 <라보엠>으로 김선국제오페라단이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보테가 델 오페라' 프로젝트의 대망의 피날레는 12월 20일 일요일, 오후 5시 금천구 금나래아트홀에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으나 코로나19의 무서운 확산과 감염 여파로 격상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홀 휴관으로 인해 김선국제오페라단 자체 마농 스튜디오에서 공지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녹화로 대체되었다. 예정된 일정 3일 전까지 미리 대관한 홀의 상태와 코로나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다른 대체홀을 찾았으나 요즘 같은 시국에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결국 자체 홀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걸로 2020년 하반기 내내 달려왔던 레이스의 결승점을 통과했다.

미미 역의 소프라노 박예린과 로돌포 역의 테너 최원진의 열창

로돌포 역의 최원진이 부른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은 푸치니 오페라, 아니 이탈리아 오페라 특유의 시원스러우면서도 쭉쭉 뻗어가는 문자 그대로 벨칸토의 정수이자 리릭테너의 자존심을 과시한 완숙한 열창이었다. 수백 번은 부른 듯한 노래가 가수에 스며들어있는 듯한 미성의 감미로움이었다. 연속해서 여자 주인공 미미 박예린의 ‘내 이름은 미미’(Mi chiamano Mimi) 역시 아름답고 황홀하다. 그 둘은 미미와 로돌포의 2중창, ‘오 사랑스러운 아가씨’(O soave fanciulla)까지 1막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1막은 미미의 출연 전후로 앞의 시끌벅적한 옥탑방의 청춘들과 수줍지만 사랑이 익어가는 로맨스의 뒷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미미와 로돌프의 만남부터 이어짐은 로맨틱하기 이를 데 없다. 난장판을 방불케 하는 흥겹기 그지없는 2막은 크리스마스 전야제다. 무제타(소프라노 김정아)가 나왔다. 마르첼로(바리톤 조현일)와 함께 펼쳐지는 노인네 골탕 먹이고 죽 써서 개주기는 유쾌상쾌통쾌하다. 노래도 노래지만 연극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가미되어 극에 빠지게 만든다. 2막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내용에 짧지만 콤팩트하다. 어쩌면 교향곡의 2악장 스케르초와 같은 막으로 보편성을 띠며 재미있다. 

도도한 무제타, 소프라노 김정아
도도한 무제타, 소프라노 김정아

지금까지 얼추 실황으로 20번 정도 독일, 이탈리아, 한국에서(물론 한국에서 본 게 압도적으로 많지만) <라보엠>을 관람하였다. 모두 무대와 객석이 거리를 두고 있었던 대극장에서다. 오늘은 양팔벌려 2미터가 넘은 간격에 눈과 귀로 감상하면서 지금까지 미쳐 알지 못했던 등장인물 개개인의 디테일한 감정 변화와 표정, 목소리에 가미되고 응축된 음색까지, 특히나 3막은 심리적, 감정적 변화가 세밀하여 잠자던 세포까지 깨어나게 하며 인과율이 마치 독일 바그너의 악극과 같았다. 알프스 이남과 이북의 절묘한 혼합이요 이탈리아적인 디오니소스와 독일적인 비극의 조우였다.

마르첼로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해준 바리톤 조원일
마르첼로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해준 바리톤 조현일

피아노도 2막과 같은 인물이었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완급조절이 되었고 문자 그대로 파노라마와 같은 극전개를 반영하였다. 로돌포에 가려 조금 덜 조명 받았던 마르첼로 역할을 더욱 심도 있게 알 수 있었던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이렇게 마르첼로가 매력적인 캐릭터요 비중이 컸었던가? 마르첼로 역의 바리톤 조현일의 열연에 등장인물들의 속내까지 음악으로 투영시켜 끄집어낸 마에스트로 팔레스키의 공이다. 바리톤 원재선의 쇼나느가 부드러우면서 단호했다면 콜리네의 베이스 김진욱은 4막의 ‘친애하는 나의 오랜 외투여!’(Vecchia Zimarra)에서 진가를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손에 들고 있는 외투, 콜리네 역의 베이스 김진욱
손에 들고 있는 외투, 콜리네 역의 베이스 김진욱

그러고보니 이번 보테가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은 필자 본인이다. 연습 때 한번 그리고 본 공연, 단 2번 참관한 게 다이지만 여태껏 알지 못한 라보엠의 단면들을 속속들이 더욱 알게 되어 스트라빈스키의 말마따나 나이가 들수록, 라보엠은 진짜 걸작이라는 확신이 들고 점점 더 아름다운 거 같다. 다음 보테가 시즌에는 팔레스키를 통해 마스카니의 <까발레니아 루스티카나>의 비밀을 열고 싶다. 국제적인 베르디보다야 이탈리아 국가적인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등이 더 밀착되지 않을까? 녹화라서 박수도 못치고 브라보, 브라바도 못 외쳤다. 이 지긋지긋하고 공포스러운 코로나 빨리 퇴치해서 원 없이 제대로 오페라 보고 싶고 이 스태프 그대로 이탈리아에서 우리 오페라 위상도 드러내고 싶다.

브라보! 브라바! 브라비! 제1기 보테가 공방 공연 후 커튼콜
브라보! 브라바! 브라비! 제1기 보테가 공방 공연 후 커튼콜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