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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31] Critique: 서울오페라앙상블의 토스카, 10월 31일 토요일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1.01 10:27
  • 수정 2020.11.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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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의 무대가 되는 로마의 성 안드레아 델라 봐레 교회의 내부. 이 교회의 성모상을 그리는 화가 카바라도시와 성당지기의 모습엔 최근 프랑스 니스에서 발생한 무차별 혐오 범죄가 연상되었다. 모든 인간사의 고통을 잊고 지극히 평화롭고 신과의 영적인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 성당 내부가 혈흔이 낭자한 살육장이 되어버려 충격을 주고 있다. 푸치니의 토스카도 짧지만 강렬한 전주곡에 이어 정치범 안젤롯티가 성당으로 도망쳐 오는 걸로 시작한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푸치니 토스카 커튼콜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지난 7월에 이어 올해만 두 번째 방문하게 된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은 서구식 대형 오페라극장이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들과 우뢰매를 보러 가고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방문해서 동시상영 영화를 관람하고 노래자랑을 했던 시민회관 식의 규모다. 피트의 오케스트라 규모도 최소화되었고 무대 역시 왠지 올드하다. 오페라라고 으레 위축 들게 만드는 대규모의 세트와 압도할만한 세트, 화려한 치장의 그랜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동네 극장 같은 내피(內皮)다. 그러다 보니 성악가들의 발성과 소리가 억지스럽지 않고 소리를 키우고 증폭할 객체(Object) 없이 그대로 전달해도 될 정도로 오페라의 정수인 성악가의 기량과 노래로서의 관객과 접점을 찾아야 되는 구조였다.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토스카는 삼각관계로 주인공인 토스카를 두고 연인인 카바라도시와 로마의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오 치정극이다. 여기에 사상적 대립이 가미된다. 공화주의자 카바라도시와 왕정주의 수구 보수파를 상징하는 기득권 스카르피오의 확실한 캐릭터가 사상적 시대적 갈등과 인물 간의 반목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테너 김중일이 분한 1막의 아리아 '오묘한 조화'는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의 기량과 전체 토스카 1시간 40분여의 전체 토스카를 좌지우지하는 첫 관문이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토스카는 관능적이지만 심지가 굳지 못한 갈대와 같은 여자인데 조현애의 극 전체를 밀도 깊게 끌고 가는 스태미나와 지속력은 대단했다. 1막 마지막의 가톨릭 예배인 테데움인 장엄한 분위기에 경의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인데 상술한 중극장과 여건의 제약으로 인해 스텍터클한 면이 부각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쉬울 수밖에 없다. 결국 감동은 크기와 자본이 만들기 때문이다. 대신 2막은 인물 간의 갈등과 전개, 상황의 변환에 맞는 푸치니만의 빼어난 음악 직조가 다른 무엇을 뛰어넘어 극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무대 뒤의 합창이라면 무대 밑에서는 으산한 플루트의 소리였다. 플루트의 음정과 호흡은 안정적이어서 작 중 최고의 오케스트라 부분이었다. 음흉하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이용, 정욕을 채우려는 현대판 미투의 화신 스카르피오를 분한 박경준은 소리의 질감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닌 극의 가사가 내용에 맞게끔 음색을 조절하면서 특유의 제스처가 곁들인 변태 중년을 뺀질뺀질 하게 그려냈다.

주인공인 토스카 역의 소프라노 조현애

동네 극장이라는 친근함은 더없이 상냥하지만 3막의 산탄젤로 성 무대 배경은 지나치게 색조적이었다. 80년대 극장의 간판을 기억하는가! 그때는 나무로 극에 맞는 세트를 만들고 페인트로 극장 입구에 설치했다. 레트로에 편승하고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래서 영화 <시네마천국>과 같은 토스카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시골 극장이 더욱 연상되었다. 그 큰 덩치의 스카르피오를 찌른 토스카의 단도가 바닥에 던져졌을 때의 가볍디 가벼운 소리는 더 이상 말해 무얼 하리....

좌로부터 테너 김중일(카바라도시), 소프라노 조현애(토스카), 연출 & 예술감독 장수동, 지휘자 양진모, 바리톤 박경준(스카르피오), 베이스 최정훈(성당지기)

토스카의 주역 3인은 총살, 좌상, 낙상으로 죽는다. 난민을 받아들인 프랑스의 성당에 무슬림 극단주의자가 난입하여 테러를 저질렀다고 해도 톨레랑스(관용)은 계속되고 혐오 범죄가 증가하더라도 공화의 가치에 대한 도전은 맞서 싸워 승리할 것이다. 그걸 토스카가 다시 120년의 시간을 지나 이국 땅 한국에서도 제시하고 있다. 구로문화재단의 공연장상주예술단체로서 2016년부터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면서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군중 속에 외롭게 버티고 앉아 3막 내내 브라보, 브라바, 브라비를 외친 유일한 사람이 필자다. 그게 한국에서의 오페라다. 오페라가 한다면 또 달려가서 열심히 크게 브라보를 외치리! 고문으로 피폐해진 카바라도시가 나폴레옹의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나 부르고 외친 Victoria! 코로나도, 혐오와 인종, 사상, 세대, 성별의 갈등도 그리고 오페라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불사하고 승리하리! Vic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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