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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다

김홍관 시인
  • 입력 2020.10.2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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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탄생이라는 역에서 출발했다.

그 역에는 커다란 아픔 후에

엄청난 축복도 함께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내가 왜 가야만 하는지 모른 채

가라니까 갔고 남이 가니까 따라갔다.

 

간이역을 지나며 봄꽃의 향을 맡았고

조금 큰 역을 지나며 가끼우동을 먹었다.

맛은 있었지만 이름에서 왜놈 냄새가 났다.

 

어느 날 역사(驛舍)에서 역사(歷史)를 바꾸겠다는

왜놈 냄새나는 역장을 만났다

아직 난 역사(歷史)를 모르는데···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내 뒤에는 스물여덟 살 아들도 기차를 탔고

그 아이도 아직 역사(驛舍)와 역사(歷史)를 모르는데

 

역장만이 아닌 것 같다.

기차타고 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들이

역사(歷史)를 고치겠다고 분탕질이다.

 

역사(驛舍)는 어떤 이 인생의 시작이고

어떤 이 인생의 마지막인데

완장 찬 왜놈 냄새나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 인생의 역에서

코 밑을 간질이는 아주 작은 바람에

온몸 내어 주며 흔들리는

연분홍 코스모스 한 송이면 충분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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