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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95) - 네가 날 선호하게 만들겠다

서석훈
  • 입력 2014.03.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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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네가 날 선호하게 만들겠다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를 야밤에 불러내 커피 한 잔을 하며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장화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연락을 해와 심야에 커피 한 잔 하자는 남자와 특별히 감회에 젖을 이유는 없었고, 그저 이 작자가 왜 날 불러냈나, 뭔 할 말이 있나 정도의 궁금증만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로 말하자면 주머니에 복권 탄 돈이 있다 보니 그동안에 용돈조차 없어 당해야 했던 설움들이 북받쳐오며 저 혼자 감화에 젖으니 이런 사실을 장화자가 알 리는 없었다. 안다 한들 그 감회에 맞장구까지 쳐줄 수는 없고 그저 한시바삐 감회에서 깨어나 제정신을 차리기까지 기다리는 게 다일 거였다. 아무튼 감회에서 깨어난 제작자는 그 동안의 모든 설움을- 특별히 누구에라고 할 것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희망을 갖고 새로운 시선으로 장화자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장화자는 영화나 드라마 출연 제의가 아니라면, 항상 빈털터리인 이 작자를 만날 이유가 이렇게 시간을 내줄 이유가 없었으므로 잠자코 무슨 말을 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죠." "네?" 장화자는 남자가 갑자기 `나가죠` 하니 어안이 벙벙하였다, 애인도 아니고 선배도 아니고 뭘 어디로 갑자기 가자는 건지 뜬금없이 내뱉는 말에 그저 반문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디 술이나 한 잔 하죠." "술요?"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꼭 술 먹으면서 해야 될 이야기가 있는가 장화자는 묻고 있었다. 사랑고백이라도? 아니면 이 작자가 그새 보험 직원으로 업종을 바꿨나? 경계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갑자기 연락을 해오는 이들의 태반은 보험을 들라든가 무슨 업체를 차렸으니 투자를 하라든가 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야밤에 술을 마시자고 하는 것은 경우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게 아닌가. "네 뭐 좀." 남자의 대답도 시원찮아 "술은 좀..." 했더니 "속이 안 좋은가요?" 하고 나왔다. 속이 좋으면 너하고 술을 마셔야 하나? 질문이 한심하였지만 "속도 그렇고 너무 늦은 거 같아요." 하고 답했다. 남자는 생각하기를 니가 언제 시간을 따졌나. 한때 우리가 여럿이 있는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마실 때는 새벽 두 시가 넘어가기 일쑤였지 않나. 둘만 있다고 겁먹을 너도 아니지 않냐. 그렇다고 내가 주머니에 돈이 있으니 따라 오라고 하기도 그렇잖아. 그냥 `네` 하고 따라 와주면 안 되나? 내가 정말 할 말이 있는지도 모르지, 그건 술자리 가봐야 알겠어. 이렇게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녀를 보면 볼수록 시선을 끄는 풍만한 몸매와 강력한 포즈가 새삼 심장을 고동치게 하였다. 네가 날 선호하게 만들겠다. 이것이 남자의 결심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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