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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로 시]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 61.촛불 시론

2022. 07. 03 by 윤한로 시인

촛불 시론

 

 

좀 투박스러워도 없어 보여도

덜떨어져 보여도

시가 좀 안돼도

씹혀도 좀 쪽팔려도

멋대가리 잔대가리

굴리지 말아야 하는데

무얼 쓸 때마다

쓴답시고 나도 모르게

멋대가리 잔대가릴 굴리게 되곤

굴리는 족족,

어떻게 된 건가!

내가 퍼다 쓰는 말은 왜말 찌꺼기

끼어드는구나 달라붙는구나

생각까지 왜말 생각

느낌까지 왜말 느낌

진실을 죄, 죽이는구나

영혼 마냥, 배부르누나 썩어 문드러지누나

쉽고도 그저

수수하게 촌스럽게 꾸밈없이 써야만 했어

먹고 자고 엉엉 울고 히히 웃고

엄마 말로다 써야만 했어

끊으려 끊으려고 해도

벽에다 머리를 갈아도

끊을 수 없구나 떨굴 수 없구나

멋대가리 잔대가리 때문에 들러붙는

내 왜말투성이 시 쓰기

잘난 척하는 마음

똥을, 똥을

몇 바가지 퍼먹어얀 고칠 수 있을라나

 

 


시작 메모

멋에 잔뜩 찌든 세련된 말을 버리고 투박스런 말을 써야 한다. 수수하다는 건, 촌스럽다는 건, 어리숙하다는 건, 부끄럽고 나쁜 게 아닌데, 오히려 그 속에 삶과 진실이 깃들어 있다는 건데. 어떤 작자들은 밑바닥 우리말을 아주 속되고 하잘것없는 거로 만들어 버렸다. 엄마 말은, 아랫것들 말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존재 자체고 사랑이고 깊고 넓은 전체고 들숨날숨이고 시큼한 냄새다. 거기에는 모든 게 다 들었다. 사유니 철학이니 행간이니 그따위 애써 따로 떼어내지 말아라. 나는 오늘도 서울에 살지 않는다. 잘난 척 교양과 지식, 현학, 명성, 우아 넘치는, 번지레한, 거짓 위선으로 가득 찬 개돼지들 말을 쓰는 개돼지가 아니다. 안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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