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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

유지현은 어떻게 LG 트윈스팀과 연봉싸움에서 이겼을까

2020. 08. 24 by 기영노 전문 기자
알토란같은 활약으로 구단과의 연봉협상을 승리로 이끌어낸 유지현 선수(사진=LG트윈스 홈페이지 갈무리)

프로스포츠는 돈이다.

프로스포츠 팀을 운영하는 구단은 돈으로 선수(코칭스텝 진포함)를 사서 팀을 운영한다.

팀 입장에서 볼 때 기량이 좋은 선수의 몸값을 싸게 해서 많이 데리고 있어야 좋은 성적이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구단과 선수가 연봉협상을 할 때는 항상 날카롭게 대립하게 마련이다.

구단은 선수에게 줄 전체 연봉액수를 미리 정해 놓은 다음 연봉 협상에 임하기 때문에 재량권이 많지 않다. 그러나 선수 입장에서는 구단 사정과는 상관없이 될 수 있는 한 많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비장하다.

1982년 프로야구 창립이후 39년 동안 구단과 연봉전쟁에서 선수가 이긴 것은 2002년 LG 트윈스 유지현 선수 한명 뿐이다. 구단의 승률이 무려 99퍼센트나 된다.

이는 메이저리그가 구단 대 선수의 승리 확률이 57대43으로 구단이나 선수나 승률이 5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선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불합리하다.

우리나라는 구단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한국야구위원회 즉 KBO가 추천한 5명의 연봉조정위원회를 열기 때문에 선수가 이길 수 없는 구도였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에서 모두 인정을 하는 3명의 변호사가 연봉조정위원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연봉조정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메이저리그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와는 달린 대리인제도를 인정하고 있어서 변호사 등 전문적인 자식을 갖고 있는 대리인들이 구단과 협상을 하기 때문에 논리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지현은 그 같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 해서 구단(LG 트윈스)에 이길 수 있었을까?

2001년 연봉 2억 원을 받았던 유지현은 2002년 연봉으로 2억2000만원을 요구했다.

반면 LG 구단은 1000만원이 삭감된 1억9000만원을 적어냈다.

유지현은 구단에 연봉인상액이나 연봉삭감 액이 아니라 '인상 대 삭감'이 맞붙었었다.

조정위원회도 얼마를 삭감한다든지 올려주는 것 보다 인상 또는 삭감 둘 중에 하나는 결정하는 게 훨씬 쉽다.

유지현은 2000년 시즌 126경기에 출전해 139안타, 38타점, 7홈런, 도루 25개, 타율 2할8푼1리를 기록했었다.

다음해인 2001년엔 129경기에 출전해 127안타, 53타점, 9홈런, 도루 21개, 타율 2할8푼3리로 전년도와 비교해 비슷한 성적을 냈다.

구단은 2억 원을 받는 (당시로서는)고액 연봉자임을 감안, 성적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해 삭감 액을 제시했다.

반면 유지현은 꾸준하게 자신의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유지현은 당시 구단보다 더 꼼꼼하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준비했다.

유지현은 우리나라 프로야구 사상 가장 약게 선수생활을 한 선수로 남아있다. 오죽하면 별명이 ‘꾀돌이’ 였을까.

유지현은 투 스트라이크를 먼저 먹고도 기어이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볼을 몸에 맞아서라도 1루로 걸어 나가곤 했다.

또한 발이 빠르기도 하지만 루상에서 상대팀 투수를 가장 괴롭힌 주자였다. 차라리 2루(또는 3루)로 도루를 시도 하면 좋겠는데, 도루를 시도 하는 척 하면서 계속해서 투수를 헛갈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꾀돌이 근성이 자신의 밥줄인 연봉협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유지현은 팀 수비의 핵인 유격수 였고, 주로 1,2번을 치는 테이블 세터였다. 그러니까 유지현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잘 파악해서 거의 완벽하게 자료를 준비한 것이다.

유지현은 2000년에는 139안타를 친 반면, 2001년에는 12개나 적은 127개를 때리는데 그쳤다.

그러나 3루타를 2000년에는 1개에 그쳤지만, 2001년에는 2개나 쳤고, 2루타 수 도 2000년에는 24개밖에 못 쳤지만 2001년에는 2개가 늘어난 26개를 때렸다. 홈런도 2000년에는 7개, 2001년에는 9개로 2개가 더 많았다.

결정적인 것은 타점이었다.

유지현은 2000년에는 38타점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2001년에는 15타점이 더 늘어난 53타점을 올렸다. 테이블 세터(특히 유격수)치고는 적지 않은 타점인 것이다.

구단에서는 도루를 물고 늘어졌다. 유지현은 2000년에는 25개의 도루를 했지만, 2001년에는 4개나 줄어서 21개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지현은 도루 자가 9개에서 7개로 줄었기 때문에 팀 공헌도는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밖에도 유지현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많았다.

볼넷이 73개에서 96개로 무려 23개나 많았고, 희생 플라이도 18개에서 12개나 더 많은 30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출루율이었다.

테이블 세터가 출루율이 높다는 것은 팀의 공헌도에서 절대적이다.

유지현은 2000년에는 0.373의 출루율에 그쳤었지만, 2001년에는 무려 3푼8리가 높아진 0.411의 높은 출루율을 보였다.

10번 타석에 들어서서 4번 이상 루상에 나가서 중심타선에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당시 다른 7개 팀(당시 프로야구는 8개 팀이었다) 테이블 세터 가운데 유지현 보다 출루율이 높았던 선수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연봉조정위원회는 유지현이 삭감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게 됐다.

유지현은 당시로서는 비교적 고액인 2억 원의 연봉을 받아서 더 이상 인상요인도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삭감할 요인은 더 더욱 없었던 것이다.

프로야구선수협회(당시 회장 송진우)가 막 들어선 시점에서 연봉조정위원회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삭감 요인이 없는 유지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인상 폭(또는 삭감 액)이 논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지현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유지현도 연봉 인상액이나 삭감 액을 놓고 LG 트윈스 구단과 싸웠다면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2001년 당시 LG 트윈스는 유지현 이외에 김재현, 전승남, 이병규 등도 연봉조정신청을 했었다.

그들은 모두 구단에게 졌다. 김재현은 인상을 요구했고, 이병규는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구단은 삭감이 아닌 동결을 제시했다. 전승남은 유지현과 마찬가지로 선수는 인상, 구단은 삭감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승남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중간계투 였던 전승남은 2000년, 2세이브 3홀드(방어율 2.68)에서 2001년 2승2패1세이브 2홀드(방어율 7.31)로 외형적인 성적은 약간 좋아졌지만, 투구 이닝에서 40과3분의1이닝에서 28과3분의1이닝으로 줄어든 것이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해태 타이거즈 강만식 투수는 유일하게 2년 연속(84년, 85년) 연봉조정신청을 해서 2연패라는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고, 김재현 선수는 2002년 본인요구액(2억8000만원)과 구단 제시액(1억8000만원)이 역대 최고액인 1억 원의 차이를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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