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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is 뭔들]

양태철 시인

회화나무 그늘 아래서

2021. 05. 24 by 김정은 전문 기자
황금회화나무(사진=네이버 갈무리)
                                      황금회화나무(사진=네이버 갈무리)

 

회화나무 그늘 아래서                                         양태철

 

아버지 흰 두루마기 입고 헛기침하며

쉴 곳을 찾았다는 듯이 회화나무 그늘 아래 서 계신다

맑고 큰 눈빛에선 무수한 나뭇잎 맥처럼

불빛이 흔들리고 살점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는 지쳐 보인다

회화나무 한 채로는 집이 너무 좁은 것인지

아버지, 낙타처럼 푸르르 잎사귀로 몸을 털 때마다

열매들이 떨어져 내린다

 

잎사귀마다 멍이 든 상처들을 몸 밖으로 밀어낼 생각으로

회화나무 한 그루 속으로 걸어 들어간 아버지의 생,

도도한 앞 그림자 짙어갈수록

순례이든 고행이든 내가 따를 수 없는

넉넉한 내 아버지 이름 아래

회화나무는 온데간데 없고

아버지 무덤 앞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회화나무는 한자 괴화(槐花)나무다. 중국발음과 유사한 회화로 부른다. 홰나무를 뜻하는 '槐'(괴) 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 만들었으며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궁궐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

양태철 시인의 시는 가정의 달 5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다. 화려함도 꾸밈도 변형도 없다. 그저 묵묵히 우리네 아버지를 잘 그리고 있다. 어쩌면 돌아가신 부모님들은 본인들의 삶을 털어내며 우리를 지켜주시는 지도 모른다. 어머니에 대해 쓴 배롱나무와 이번 회화나무는 잘 어울리는 감동적인 부부에 대한 시다. 시간은 흐르고 부모는 걸어가신다.

나의 아버지도 많은 인생을 살아오셨다. 나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그분의 삶을 바꿀 순 없다. 언제나 항상 늘 그렇게 오래도록만 사시는 게 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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