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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is 뭔들]

행복한 왕자의 절망

오스카 와일드의 불행

2021. 04. 17 by 김정은 전문 기자
오스카 와일드(사진=네이버 갈무리)

오스카 핑갈 오플래허티 윌즈 와일드(Oscar Pingal O'Flahertie Wills Wilde)18421016일 아일랜드(당시 영국) 더블린에서 태어나 감옥에서 넘어져 다친 귓병으로 1900년에 수술받으나 실패해 뇌수막염으로 19001130일에 사망한다. 중간 이름은 의미 없고 본인도 오스카 와일드로 불리길 바랐다. 아버지 윌리엄은 유명한 안과 의사이며 작가이며 고고학자이고, 어머니 제인은 시인이며 성공한 작가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캐임브리지, 옥스퍼드 트리니티 칼리지와 다른 곳이며 아일랜드 최고 명문 대학이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 맥덜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고대 언어학을 했고 시 라벤나(Ravenna)로 뉴디게이트(Newdigate) 상을 받았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라벤나는 단테 무덤이 있는 이탈리아 도시 이름이며 내용도 단테를 언급한다. 너무나 장시고 아름답지는 않아 번역하지 않았고 라베나는 잘못된 표기이고 뉴다이제스트 상이란 번역은 틀렸다. 로저 뉴디게이트 경이 만든 옥스퍼드 대학 재학생의 영시에 대해 수여하는 뉴디게이트 상이다. 와일드는 졸업하고 미술평론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 근엄함과 위선을 풍자했고,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무대에 올려진다고 할 정도의 작가이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조국에게 버림받는다. 사망 98주기인 19981130일 노동당 정부가 런던 트래펄가광장 근처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이름의 기념비를 세운다. 트라팔가 표기는 오류며 광장은 붙여도 된다. 죽은 지 백 년 가까이 와서 명예회복되고 그때까지 영국엔 오스카 와일드 기념비 하나 없었다.

202122일 뱅크시라고 얼굴을 밝히지 않는 영국 그래피티 화가이며 영화감독이 창조적 탈옥이라는 제목으로 죄수가 탈옥하는 장면을 타자기와 함께 옛 레딩 감옥 벽에 그렸다. 그곳은 결혼해서 두 아들까지 두었지만, 후작 집안 젊은 앨프리드 경과의 추문으로 와일드가 1895년에서 1897년 동안 갇혔고 거기서 레딩 감옥의 노래시집을 썼기에 와일드를 그린 거다. 아내는 이혼하진 않고 따로 살며 그에게 일주일마다 적은 용돈을 주었고, 친구들의 관대함으로 살았다. 길에서, 알던 여성 오페라 가수에게 자신 이름을 말하며 돈을 달라고도 했다.

                            앨프리드 경(사진=네이버 갈무리)

 

뱅크시는 그림 하나가 몇십억 하는 화가다. 2010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자신의 작업과정과 인터뷰를 얼굴 가리고 담은 다큐멘터리로 감독 데뷔했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고 국내 개봉도 했다.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가 본 사람들은 저기를 지나야 나갈 수 있는 상업성 민낯에 동의할 거다. 초창기 유일하게 얼굴 보고 인터뷰 한 기사에 의하면 1974년생, 본명 로버트 뱅크스, 백인, 브리스톨 시 출신, 고등학교 퇴학, 사소한 일로 체포된 경력이 있다 한다.

대영박물관에 잠입해서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몰래 진열하고 도망갔는데, 며칠 동안 사람들이 그게 가짜인 줄 몰랐다.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에도 똑같이 했고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놓아둔 미사일 딱정벌레는 23일 동안 전시됐다. 예술의 허식을 비판한 거다. 유명해진 후 센트럴 파크에서 본인을 숨기고 자기 그림을 몇만 원에 팔았는데 6시간 동안 3명만이 총 8장을 구매하였다. 예술의 허구를 비판한다.

내 생각엔 뱅크시는 와일드를 성별의 감옥에서 탈출시킨 거다. 성이 예술을 침범할 수 없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를 성 정체성을 이유로 가두는 것은 예술을 죽이는 일이다. 왜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천재성을 말살시키는 권리는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가?

 

Ava Maria Plena Gratia

 

Was this His coming! I had hoped to see

A scene of wondrous glory, as was told

Of some great God who in a rain of gold

Broke open bars and fell on Danae:

Or a dread vision as when Semele

Sickening for love and unappeased desire

Prayed to see God's clear body, and the fire

Caught her white limbs and slew her utterly:

With such glad dreams I sought this holy place,

And now with wondering eyes and heart I stand

Before this supreme mystery of Love:

A kneeling girl with passionless pale face,

An angel with a lily in his hand,

And over both with outstretched wings the Dove.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재림! 놀라운 영광 보기를

위대한 신에 대해 들은 대로

황금비 되어 창살 부수고

다나에에게 온.

아니면 두려운 모습

사랑과 채우지 못한 욕망에 병든 세멜레가

신의 완벽한 몸 보고 싶어 기도하여

결국 섬광이 그녀 흰 살결 불태운.

부푼 기대로 성지에 왔으나

의구심이 든다

신의 사랑이라는 최대 의문 앞에.

열정 없는 창백한 얼굴로 무릎 꿇은 소녀

백합 든 천사

그들 위 날개 펼친 성령

 

고전문학과 고대 언어학의 결정체인 시다. 라틴어 ava Maria plena gratiaave Maria, gratia plena와 같은 말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이며 성모송이라는 천주교 기도문 첫 문장이다. ave는 안녕하세요이며 마리아시여로 대신할 수 있다. 그의 동화 공주님의 생일에서도 성모를 위한 춤을 만들어 쓰고 존경하지만, 개종할까 고민이 많았고 종교 주제의 시를 많이 썼다. 이 시는 하느님과 제우스를, 신화 인물인 다나에, 세멜레와 성모 마리아를 동일시한다. His comingH를 대문자 함으로써 Christ coming, 예수 재림을 말한다.

다나에는 그리스의 딸이란 뜻이며 황동 탑, 황금비를 상징하고 아르고스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이다. 왕은 딸이 낳을 손자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신탁을 듣고 그녀를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청동 탑에 가둔다.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신하여 탑으로 들어가 다나에를 임신시켜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왕은 제우스의 아들을 죽일 수 없어 딸과 함께 상자에 태워 바다에 버리지만 제우스의 부탁으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호한다. 신화를 모르면 번역도 잘할 수 없다. 빗속에서, 비를 타고라는 번역한다면 오류다. 비 자체가 제우스이기 때문이다.

세멜레는 대지, 대지의 거주자란 뜻이며 무모한 호기심을 상징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바이 왕 카드모스의 딸이다. 테바이는 그리스 한 지방 수도의 고어고 현대어는 테베다. 제우스에게 사랑받아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임신한다. 유모로 변신한 제우스 아내 헤라 신의 꼬임에 빠져 벼락과 번개의 신 제우스에게 본모습을 보여 달라 해서 그 강렬한 빛에 불타 죽는다. 스틱스강에 맹세하면 신이라도 거부할 수 없기에 뭐든 들어준다고 강에 약속한 그도 어쩔 수 없다. 신도 어기면 9년 가사상태가 되고 81년 올림포스에서 추방된다. 제우스는 바로 디오니소스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어 산달 채워 출산한다. 어른이 된 디오니소스가 지하세계에서 엄마를 구출해 제우스에게 부탁해서 티오네 thyone라는 신으로 만든다.

이 시가 긍정 시인지 부정 시인지는 열정 없는 창백한두 단어를 보면 안다. passion은 고어에선 순교, 수난, 고통, 병을 말하며 여기선 종교에 대한 열정을 말한다. passionless는 순교를 하지 않을 정도로 신심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기쁜 표정이 아니라 병들고 창백하다. 시인의 의도는 찬미가 아니라 실망이다. 탑에 갇힌 순결한 다나에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엔 황금비를 황금 돈으로 보고 타락한 부를 의미하기도 했다. 고전문학을 공부한 시인은 그 의미도 넣었을 듯하다.

시의 위대함을 보러 왔는데 신의 사랑이란 게 타락이고 죄 없는 여성을 잔인하게 죽인 결과 밖에 없다는 반어적 시다. 이미 신을 방탕한 제우스에 은유함이 그렇다. 결국 신이란, 사랑이란, 신의 사랑, 남녀의 결합이란 다나에와 세멜레, 마리아처럼 얼굴도 못 보고 잉태한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닌 황망한 환상에 불과한 게 아니냐, 내 사랑과 다를 게 없지 않냐는 투정을 마리아에게 하고 있다.

무릎 꿇은 소녀는, 신을 존경하고 기도하는 다나에와 세멜레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고 백합을 든 천사는 천주교에서 마리아를 말한다. 고결한 꽃이라 성모를 그린 그림에 백합 든 모습으로 많이 나온다. 날개 펼친 비둘기는 성령 하느님이다. 또한 제우스가 비둘기로 변해서 사랑을 많이 나눠 제우스를 뜻하기도 하며 성경에서 비둘기는 순수한 마리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Dove를 대명사로 써서 비둘기보다 성령의 뜻으로 번역함이 옳다. Love도 보통 시에서 대문자로 하는 건 신을 의미하니 그냥 사랑보다 신의 사랑으로 함이 바르다.

다나에 신화는 라푼젤 동화로 발전했고, 세멜레 이야기는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와 닮았다. 언니들의 성화에 초 켜고 보다가 촛농이 떨어져 잠이 깬 에로스는 화가 나 떠나지만, 결론은 세멜레 신화와 다르게 용서하고 다시 돌아온다. 이외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 동화, 우리나라 뱀 신랑 설화와 비슷하다. 비슷한 설화들은 전파가 아닌 동시 발생이다. 콩쥐 팥쥐와 신데렐라, 엄지공주, 개와 고양이 동화들은 나라끼리 구전된 것이 아니라 각자 자연발생설이 학계 정설이다. 사람 사는 곳 생각은 똑같다.

 

The True Knowledge

 

Thou knowest all; I seek in vain

What lands to till or sow with seed -

The land is black with briar and weed,

Nor cares for falling tears or rain.

 

Thou knowest all; I sit and wait

With blinded eyes and hands that fail,

Till the last lifting of the veil

And the first opening of the gate.

 

Thou knowest all; I cannot see.

I trust I shall not live in vain,

I know that we shall meet again

In some divine eternity.

 

진정한 지식

 

너는 모두 알지만 나는 헛되이 구한다

경작하고 씨뿌릴 땅을

가시덤불과 잡초로 황량하고

눈물이 떨어지든 비가 내리든 신경쓰지 않는

 

너는 모두 알지만 나는 앉아 기다린다

눈멀어 내다 보지 못한 실패를

마지막 베일을 올리고

문을 처음 열 때까지

 

너는 모두 알지만 난 알 수 없다

내가 헛되이 살지 않는다면

우리 다시 만나리

신의 불멸 속에서

 

knowledge는 고어로 성교를 뜻한다. 고대 언어학을 한 와일드는 이중의미로 썼을 거다. 그렇게 해석하면 1연은 여성을 상징한다. 눈물과 비도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고. 여성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를 나타내며 2연은 사랑했던 동성 연인의 배신을 말하며 3연은 자신의 사랑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신적인 진정한 앎 안에서만이 이루어짐을 말한다. 세상의 판단을 받지 않고 신의 판결만을 받겠다는 거다. 이 시는 자신의 전체 인생행로가 담겼다. 위의 모든 시 해석은 필자의 독특한 해석이다. 아마 전 세계 아무도 저런 해석은 안 했을 듯하다.

눈물 흘리는 주체가 나일 수도 여성일 수도 있다. 내가 울면 비에 묻혀 아무도 나의 고통을 상관하지 않고, 여성이 울며 애원해도 어차피 황무지엔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베일을 벗기다는 진실을 밝힌다는 의미가 있다. 그에게 진실이란, 진정한 지식은 세상이 아니라 영원 속에 존재한다는 거다. 사람의 잣대로 질책하지 말라는. 마지막 최후까지 인생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knowledge는 배우거나 실천 통해 아는 것이니 신의 지식을 말하는 건 아니다. 신의 지식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신은 배우거나 경험해야 아는 지식을 가지는 존재가 아니어서 신의 한 수나 신의 뜻, 의지는 쓸 수 있지만, 신의 지식은 자기모순이다. 여기서 너는 지식이다. 죽어서나 인정받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knowestknow2인칭 단수 고어다. ‘-’ 는 보충설명, 추가 설명을 하는 부호고 평서문에서는 some은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시는 각운도 잘 맞고, 1연의 seek, 2연의 sit, 3연의 see로 두운과 발음도 맞춘 슬랜트 라임이다. 비슷한 단어를 쓰는 걸 말한다.

그림이 늙어 가고 자신은 젊음을 유지하는, 헛된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쓴 도리언 그레이의 화상도 그의 작품이고, 미국대학위원회 대학수능시험 추천도서이며 최고다. 초상은 사진도 될 수 있어 화상이 적합하다. 이 시는 지식의 불멸을, 그 소설은 미의 불멸을 추구한다.

 

Desespoir

 

The seasons send their ruin as they go,

For in the spring the narciss shows its head

Nor withers till the rose has flamed to red,

And in the autumn purple violets blow,

And the slim crocus stirs the winter snow;

Wherefore yon leafless trees will bloom again

And this grey land grow green with summer rain

And send up cowslips for some boy to mow.

 

But what of life whose bitter hungry sea

Flows at our heels, and gloom of sunless night

Covers the days which never more return?

Ambition, love and all the thoughts that burn

We lose too soon, and only find delight

In withered husks of some dead memory.

 

절망

 

계절은 해내고 떠난다

봄에 핀 수선화 시들지 않고

장미가 붉게 타오를 때까지,

가을 보라색 제비꽃 지면

가냘픈 붓꽃 겨울눈 휘젓기에,

헐벗은 나무 다시 피고

회색 땅은 여름비에 푸르러

소년이 베어낼 앵초를 주리

 

하지만 삶이란 무엇인가

발밑 몹시 굶주린 바다가 흐르고

쓸쓸하고 우울한 밤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 날들을 덮은.

불타는 야망, 사랑, 모든 사상

너무나 빨리 잊어 기쁨을 찾을 뿐

사라진 추억 시든 껍질 속에서

 

desespoir는 프랑스어로 절망이고 yonyonder 고어다. 자연은 이루고 떠나지만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대비를 보여주는 시다. 꽃말은, 수선화는 나르시즘 신화로 자기 사랑, 제비꽃은 나를 생각해주오, 봄엔 크로커스, 가을엔 사프란으로 불리는 붓꽃은 난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회 없는 청춘이며, 크로커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꽃으로 변한 청년이다. 유한한 존재 인간 크로커스는 불멸의 존재 요정 스밀락스를 향한 불행한 사랑으로 고통받다 불쌍히 여긴 신들에 의해 꽃으로 변신했다. 헤르메스의 원반에 머리를 맞고 죽은 뒤 변했다고도 한다. 앵초는 젊은 시절의 고뇌, 영원히 당신과 함께, 돌보지 않는 아름다움, 꽃 모양이 열쇠를 닮아 행복의 열쇠 꽃말도 있다. 취란화라고도 하며 관대함 꽃말도 있고 51일 탄생화다.

꽃 선택이 의미 있다. 자기애와 사랑, 날 생각해주고, 난 언제나 기다리고,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한다는 젊은 날의 슬픈 고백 같다. 문학과 언어학이 어우러진 화려한 데뷔와 중년의 동성애로 인한 타락, 말년의 절망을 나타내는 거 같아 순차적으로 시들을 소개했다.

루브르에 잠든 헤르마프로디테라는 최고로 여겨지는 멋진 조각이 있다. 원본은 사라지고 로마 때 복원됐다.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 Hermaphroditos)는 그리스 신화에서 양성을 갖춘 신이다. 제우스의 전령이자 상업의 신 아버지 헤르메스와 사랑과 미의 신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합성어며 자웅동체(hermaphrodite) 어원이다. 양성성, 남성의 여성성, 남성성과 여성성의 결합인 결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15살 때 여행을 가 숲에서 살마키스라는 물의 요정을 만나 사랑을 거절하나, 연못에서 목욕하는 그를 살마키스가 안고 신에게 절대 둘이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 빌어 한 몸이 된다. 그도 부모에게 이 연못에서 목욕하는 자는 누구든 자기처럼 되게 해달라 하여 그 소원도 이루어진다. 어쩌면 와일드는 그 연못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힌두교에도 남자와 여자의 몸을 아수라 남작처럼 반반 합쳐놓은 아르다나리슈바라라는 신을 숭배한다. 성의 다양성은 예전부터 있었다. 성별은 사회적인 성별도 있고 심리적인 성별도 있다. 생물학적으로만 따지면 안 된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성은 스펙트럼이라고 한다. 한 끝단에 남자, 다른 끝단에 여자가 있고 중간에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 골고루 다 빛처럼 분포한다고. 이분법으로 자를 수 있는 성별은 없다.

변희수 하사가 사망했다. 그녀도 와일드처럼 성 정체성을 겪었다. 인간의 목숨은 성별로 소중함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탄생 자체로 결정된다. 누구도 성별의 차별로 죽음을 강요당하면 안 되며 그런 사회는 가치가 없다. 타고난 건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성별도 롤스의 무지의 베일처럼 어떤 성을 타고나든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피부가 검든 희든, 얼굴이 달걀형이든 아니든 내가 선택할 수 있나? 본인들이 그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가슴 아플지.

사회의 의식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다면 우리가 죽인 거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실체가 사라지나. 태완이법, 윤창호법, 한 명만 죽어도 법이 새로 만들어지는데 성별에 있어서는 절대 사회가 바뀌지 않는 것이 공정한가?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자란 이유로 쫓겨나거나 비참해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탈무드에서는 한 사람의 무게는 지구 전체의 무게와 같다고 한다. 그 사람이 죽으면 그에게는 지구 전체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관절 뭐길래 한 우주를 뺏는가? 사소한 불편함이 생명을 앞설 수 없다. 가치에는 우위가 있다. 생명이 최고고 그 밑에 사상이니 사고니 정치니 사회니 문학이니 다 하부서열이다. 인간의 목숨보다 강한 가치는 없고 생각이 생명을 죽이면 안 된다. 누군가의 삶을 뺏는 의식과 사상은 죽은 사상이고, 생명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은 거짓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장애차별과 뭐가 다른가? 조금의 의식전환이 한 사람을 살린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깨어있냐 없냐의 차이지만 저들은 죽냐 사냐이다. 우리는 싫고 좋고 차이지만 저들은 죽냐 사냐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중세까지도 여성은 영혼이 없다고 생각해서 토론 주제였다. 동물과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우리는 중세에 머무는가? 언제까지 오스카 와일드가 살던 시대처럼 아직도 의식이 레딩 감옥에 갇혀야 하는가? 언제까지 대작가의 재능이 성별로 죽고 일반인의 생이 안타까운 죽음에 희생되어야 하나? 뱅크시가 탈옥시키기 전에 의식이 걸어 나오면 안 되는가? 더 이상 희생자가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베를린에 갔을 때 오스카 와일드 카페를 보았다.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그가 다녀간 건지 그냥 지은 건지 몰라서 들어가지 않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보석을 다 빼내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동상 내용인 극찬 받은 유명한 동화 행복한 왕자도 아들들이 태어날 즈음에 쓴 와일드 작품이다. 이 책만 봐도 성향이 예술을 파괴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나의 빛나는 보석이라며 굉장히 사랑했으며 말년에 볼 수 없음을 슬퍼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화상이 유일한 장편소설이고 단편소설, 동화, 희곡, , 수필 등 많이 남겼다. 장편소설은 연인 만나기 1년 전에 쓴 유미주의 소설이나 연인이 연상된다. 앨프리드는 신화에서 가장 잘생긴 에로스를 닮았고 그의 유미주의에 딱 맞는 얼굴이다. 몽환적이고 조각 같아 모델 해도 될 만큼 역대급이다. 하지만 철없는 귀족대학생으로 매우 사치가 심해 와일드는 엄청난 지출을 한다. 행복한 왕자처럼 다 준다. 경박하고 다혈질이며 시인과의 관계를 떠벌려 앨프리드의 아버지는 길에서 아들을 때리기도 했다. 시인은 히스테릭한 그에게 질려 여러 번 떠났으나 앨프리드의 형이 사고로 죽자 연민으로 돌아왔다.

와일드의 첫째 아들은 1차 대전에 참전해 30세에 죽었고 둘째 아들의 자식은 그의 비평가이고 증손자는 옥스퍼드대에서 그의 방을 배정받았다. 행복한 왕자는 모든 걸 다 주고 불행한 왕자가 된다. 무덤엔 날개 달린 스핑크스 조각이 있다. 수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레딩 감옥을 날아 탈출한다.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다수 사람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뱅크시 작품(사진=네이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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