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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영갑서예 #2 제주올레길 7-1코스] ‘천국 문은 절대 좁지 않아’

이용준
  • 입력 2018.01.25 00:00
  • 수정 2021.12.16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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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젠가는 “천국이 좁은 문이야?” 하고 물었다. 책 따위는 읽지 않는 너이기에 성경도 읽었을 리 없다. 누군가 지껄였음을 직감했고, 어떤 인간이 그토록 교만하게 굴었는지 물었다.

새벽 동이 튼다. 태양은 사흘째 보이질 않는다. 목적지는 여전히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저 멀리 있는 성산일출봉으로 향한다. 혼잣말하면서 걷는다. 이젠 외롭지 않다. 왜 너뿐이라고 착각했을까. 한갓 맛난 간식거리, 안줏거리에 불과했는데.
실장과 삼촌. 너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직속상관이었다. 하루 열두 시간 일만 했기에 데이트할 시간조차 없었던 우리. 탐색하고 알아가야 할 연인은 부연 없는 대화만 했다. 서로 때리고 견제해야만 먹고사는 바닥에서 남몰래 사귀겠다는 귀엽고도 발칙한 시도를 했으니 오죽 힘들었나. ‘사내 비밀 불륜 커플’이었던 우리는 남들 시선을 피해서야 겨우 연애를 즐겼다. 하지만 신은 우리를 주시했다. 그 비밀을 알고도 나는 기투했다. 백 년 만의 가뭄이 닥친 지난 5월, 네 신혼여행지와 이름만 같은 발리 모텔 206호에서 우리가 삽입한 찰나에 소낙비가 오고 천둥이 쳤던 사실을 넌 몰랐을 것이다. 신이 우릴 지켜본다는 증거, 무서웠다. “무덤까지 비밀이야” 하고 말했던 넌 보이는 시선을, 언제든 알아챌 수 있는 시선만을 두려워했지만 나는 볼 수 없는 시선, 어디든 따라다니는 시선이 싫었다. 발리로 수차례 끌고 가서라도 신을 이기고 싶었다. 이대로 끝나면, 너를 놓는 게 아니라 신에게 지는 것. 그거야말로 가장 큰 실수이자 목적 없는 짓이다. 어쩌겠는가. 나를 놓고, 인류를 놓고 주사위를 던진 건 신이었는데.
함께 산다는 건 결국 두 사람의 몸이 아니라 돈이 하나 되는 게 아니던가. 나는 빚도 없고 장래가 촉망한 철학도로서 언제든 이 바닥을 뜨면 그만이다. 신랑이 부도 맞아 떠안은 억대 빚에 개인 대출까지 낀 너는 애 셋 딸리고 바퀴벌레 득실득실한 아파트 월세를 사는 그저 그런, 닳고 닳은 여자 아니던가. 네가 수차례 암시했듯이 우리 함께 머리 뉠 집이 있고 내가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아이들 버리고 따라왔겠지. 아니, 돈 따라서.

“아, 부인. 맹인의 도덕은 우리의 도덕과는 무척 다릅니다. 또 농아의 도덕도 맹인의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한 가지 감각을 더 가진 존재가 있다면, 더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도덕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드니 디드로, 이은주 옮김,『맹인에 관한 서한』(서울: 지만지, 2010), p. 72.

돈, 돈, 돈 때문이다. 앞을 볼 수 없는 그는 내게 말했다.
“장 실장이 안타깝고, 그렇게 사랑한다면 집 팔아서 현금을 갖다 줘야지.”
뭔 소린가 했다. 이게 성경적인가, 정신이 이러니 이 바닥을 못 벗어나는가 궁금했다. 내 상식으로는, 교육받은 바로는 부부끼리도 금전 거래를 해서는 안 되며 거지에게도 함부로 적선하지 말라고 했다. 같잖은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이니까.
밑바닥끼리는 통하는 걸까. 앞을 볼 수는 있지만 한 치 앞이 불투명한 너도 말했다.
“집 있어? 나도 없잖아. 대안이 없는데 어떡하라고.”
밑바닥으로 기어 온 나는 맘몬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사랑이니 복음이니 도덕이니 관용이니 배려니 하는 건 개나 줘 버려라.
이성과 감성은 별개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성이 감성을 지배할 수는 없다. 냉철한 이성주의자로서 나 또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의도한 바가 아니니까. 이럴 땐 의지가 필요하다는 건 안다. 문제는 내 의지와 네 의지가 다르다는 것. 네 의지는 맹인의 말도 안 되는 돈 논리에 함몰됐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아이들과 생활고를 핑계로 불법과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그 일을 하게끔 하는 구조에 스스로 복종하는, 사지 멀쩡한 너 같은 노예다. 서로 기생했기에 십 년을 알았어도 믿지 않았다. 언어만 닮고 눈치만 익혔을 뿐 실제 자기 존재에 대해서는 털어놓지 않았다. 그렇게 굳어진 삶의 상실은 고스란히 자기 몫이라는 것,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라는 것은 너와 맹인 원장도 사실 잘 모른다. 현실에 짓눌린 눈먼 자들에게 은혜니 빛이니 복음이니 사랑이니 하는 건 형이상학 놀음 그 자체였다. 신이 더욱 원망스러웠던 까닭이며 너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유다.
“부탁 중에 들어줄 수 있는 건 장 실장이 계속 일하게 해 달라는 거야. 하지만 준이 니가 정리하지 않으면 장 실장도 일할 수 없어.”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히 볼 수 없는 것일까. 눈먼 사람은 통찰하리라고 생각했던 게 착각일까. 선(先) 믿음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맹인 안마사, 네 사장은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몰랐다. 검은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똑바로 바라보는 데만 도통하지 않던가. 피상조차 못 보면서 목소리와 뉘앙스로만 상대의 정신을 읽는다고 하지 않던가. 바라는 거 없으니 다 덮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리하라는 근거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안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라’는 금언이 아니라 돈 때문에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너를. 실장들 뒤통수치는 일을 밥 먹듯 저지르는 맹인을 못 믿겠다고 하소연하지 않았나.
성산일출봉을 한 번 훑고 해안도로를 걷다가 결국 유혹을 못 이겼다. 비 맞기 싫다는 이유로 소라네집을 그냥 못 지나치고 잠시 쉬었다 간다. 문어에 소주 시켰다. 술 안 마시려 했는데, 마시면 취해서 전화할까 참았는데.

너는 정숙했고 조심스러웠다. 말 하나, 단어 하나 그냥 내뱉지 않았다. 맨정신일 때는 사람들 시선에 예민해 팔짱도 끼지 않았다. 하지만 술 취하면 ‘꽐라꽐라’ 하는 개가 됐다. 길거리에서 내 그곳을 더듬고, 망치로 다리 찍으며 자해하고, 무릎 꿇고는 잘못을 빌고, “똥 먹을 수 있어?” 하는 해괴한 말이나 내뱉고, 싸대기를 때리는 둥 진상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너 같은 애 많이 겪었다”고 막말했다. 넌 무척이나 자존심 상해했다. 무슨 짓을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차라리 오른뺨도 내밀고 똥이라도 먹어 볼걸.
잘못을 빌고 자해한 이유는 왜였나. 총각 아닌 총각과 놀아난 것이 미안한 건 아닐 텐데. 외로운 두 사람, 밑바닥과 상류층을 사는 두 인간은 망가지려고 서로 잠시 빌린 것뿐인데. 목사 아들을 따먹은 죄책감 때문은 아니겠지. 취했다는 핑계로 팔짱 끼고 발리로 몰고 간 건 나였는데. 서로 믿어서는 안 되는 바닥에서 만났으니 육체라도 섞어서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야 서로 잘 볼 수 있지 않았나.
언젠가 우리 둘, 술에 꼴아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할 때 길거리 전도자가 휴짓조각 내밀며 예수 믿으라고 했다. 그 상판대기에 대놓고 재수 없다고 일갈하자, 너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러지 마. 하나님 욕하는 거잖아.”
또 언젠가는 “천국이 좁은 문이야?” 하고 물었다. 책 따위는 읽지 않는 너이기에 성경도 읽었을 리 없다. 누군가 지껄였음을 직감했고, 어떤 인간이 그토록 교만하게 굴었는지 물었다.
“교회 다니는 작은 오빠가.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야 뒤늦게 와서는 그랬어. 아빠가 좁은 천국 문을 지나갔다고. 그 말이 머리에 박혔어. 지금도 오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그랬고. 기분 나빠.”
술김에 나는 ‘천국 문은 절대 좁지 않아’ 하고 대답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정말 계셔?”
“나도 몰라. 우리 일하는 바닥에서 옆에 있는 인간들도 못 믿는데 안 보이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그건 자기가 하나님께 직접 물어봐”라고 대답했었던 것 같다. 술을 달고 살아서인지 뭐라 지껄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너는 고개를 주억거렸고, 내 손을 꼭 잡았다. 헤어질 땐 진심을 담아 키스했다. 그건 기억한다. 내 잠든 이성이 아니라 오감을 자극했으니까. 그때 네가 재수 없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예배당에 앉아 온갖 정숙한 척 할렐루야를 외치고 믿음 좋은 척 아멘, 화답하는 더러운 창기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날 너와도 끝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술 너무 취해서, 비 너무 와서 서귀포까지 버스 타고 와서 찜질방에 누웠다. 한숨 자고 밀린 세탁도 하고 정신 차리고 길을 떠나야지. 제일 예뻤던 네 둘째 아이, 내 정액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와 함께 갔던 찜질방이 기억난다. 셋이서 참숯방에 누워 손 꼭 잡고 수다할 때 참 행복했는데. 다신 누릴 수 없는 일상일까?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해. 나도 좋은 삼촌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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