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Dominus Illumintio Mea
“하루 시작은 일몰 때부터다. 창세기에 나와 있듯 신은 어두움을 먼저 창조하고 빛을 만들어 하루를 밤과 낮을 구분했다. 유대인들의 절기도 모두 저녁부터 시작한다….”
유대인의 독특한 시간관념에 대해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밝은 데서 시작하여 어둡게 끝나는 것보다 어두움에서 시작하여 밝은 데서 끝나는 것이 좋다. 인생 또한 이와 같다.”
사람들은 신이 빛을 먼저 창조했다고 믿어왔다. 빛과 어두움이 전부 신의 창조물이라면 빛이 아니라 어둠이 먼저 창조된 것이 맞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생의 끝에 있지 않고 삶이 개화하려는 때 있는 것일까. 대부분 동·식물도 그렇지 않은가? 일몰 또한 그 시작이 화려할 뿐 시간이 지나면 금세 어둠에 잠식당한다. 타락한 우리 인생도 평생 어둠 가운데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믿음을 잃고 다시 찾게 되는가? 빛은 어느 때에 이르러야 우리 삶을 비추거나 스며드는 것일까? 깊은 방황을 하면서 느꼈던 불안과 고뇌들은 사랑과 은혜의 이름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불안과 아픔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사랑과 은혜는 단지 더 나은 것, 아프지 않은 것, 이 세상 너머의 다른 것을 바라보게 할 뿐이다. 그 위대한 비밀을 가리켜 모략(conspiracy)이라 해도 좋을까. 신이 심판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믿음으로의 의지, 영원한 것으로의 자아 기투야 말로 우리를 우리이게끔 한다.
우리 시대 젊음들이 망상과 맹목적인 신념, 위선의 탈에서 벗어나 진정하고도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방황에 내몰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과 글에서 유일하게 이니셜로 등장하는 H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자면, 그의 절반은 상상의 인물인 팩셔너(factioner)라는 것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늘 내 안에 있는 존재다. 글쎄, 어떤 의미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잠시 스쳐 간 인연이었다. H는 늘 나를 이끌어주고 내 모든 방황 가운데 함께한 존재다. 본격적인 종교 소설 혹은 변증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면 H에 관해서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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