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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시작 #9] 내가 없어도 진아는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이용준
  • 입력 2017.10.23 00:00
  • 수정 2021.12.16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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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다의 일몰

바다가 그리웠다. 해가 지는 초저녁의 서해. 그곳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 바다와 하늘을 보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던 그런 절박한 순간에 바다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 좀 해봐, 준이야.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필요한 거는?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자, 응?”
“…….”
“엄마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힘 좀 내고, 말도 좀 해봐.”
“…….”
다시 사흘이 흘렀다. 그곳을 나온 이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필요를 못 느낀 것인지 말을 잃어버린 것인지 몰랐다. 실어증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편해서였을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러기를 사흘. 그리고 나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바… 바다….”
“바다? 바다에 가자고?”
반문하는 엄마를 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바다가 그리웠다. 해가 지는 초저녁의 서해. 그곳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 바다와 하늘을 보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던 그런 절박한 순간에 바다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어. 엄마 잠깐 준비 좀 하고. 기다려.”
작년 가을, 학교에 가지 않고 무작정 동해를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 기차를 타고 강릉에 도착하니 새벽 무렵이었다.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계속 지켜봤다. 넥스트의 ‘The Ocean’을 들으며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초가을이었지만 여전히 따가운 햇볕 덕분에 바닷바람도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복되는 음악 소리와 파도 소리가 하나로 합쳐서 들렸다. 마음이 편해지자 모래사장에 누워 잠을 청했다.
30여 분 정도를 잤을까, 잠에서 깨자 귀에서 이명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눈을 떴을 때는 하늘이 뱅뱅 돌고 있었다. 끊임없이 왼쪽으로 돌고 있는 하늘, 속은 메스꺼워서 헛구역질이 위로부터 올라왔다. 몸과 세상의 갑작스런 변화에 어쩔 줄 몰랐다. 이렇게 죽는 것일까? 단지 영혼을 팔았다는 이유로? 그 이유로 평생을 웃을 수 없게 된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신은 그토록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고 더군다나 질투까지 심해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이렇게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난 가야 할 길에 서 있지 않아 정신을 잃게 되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해수욕장 관리 사무실에 겨우 도착했다. 문을 열어젖히고 소파에 앉아있던 누군가를 발견하자마자 “사…살려 주세요” 라고 외치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웅성거리는 소리 그리고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하늘은 여전히 뱅뱅 돌고 있었는데 의식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듯 여러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눈을 뜨면 어지러웠기에 다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 이름이 뭐예요? 어디 살아요? 말 좀 해봐요.”
“으… 으… 어지러워요.”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죠? 빨리 치료를 해야 하니 말해 봐요.”
“칠구일공이이...”
내게 말 걸던 사람은 무전으로 곧바로 병원에 내 신상을 알렸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가 멈췄다. 구급차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도 돌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다시 평상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아주 잠깐, 약 1시간 동안 그 숨 막혔던 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시 멀쩡해졌다. 응급실 간호사는 안정을 위해 잠을 좀 자두라고 했다.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어지러움은 싹 가셨고 허기가 졌다. 잠시 후 응급실 의사가 와서는 몇 가지 진정제를 처방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그런 병의 원인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하늘이 뱅뱅 도는 것 같았다고? 귀에서는 소리가 나고?”
“네, 갑자기….”
“전에도 그런 적은 있었나?”
“아니요.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허… 글쎄, 집이 안양 어디라고 했지? 집에 가면 꼭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도록 해봐요. 알았지?”
응급실을 나와서 약을 타고 약값을 내려는데 돈이 없었다. 내 뒤를 따라온 의사는 슬그머니 내게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자, 여기. 나중에 갚으면 돼. 다른 사람에게.”
“고… 고마워요.”
이 사람은 왜 생전 모르는 내게 친절을 베푼 것일까? 친절은 아무 관계가 없는 사이에서만 베풀 수 있는 것일까? 의사가 대신 준 돈으로 병원비를 해결하고 병원을 나섰다. 몸은 이제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강릉역까지 나를 몰아갔다. 남은 돈으로 서울을 가는 표를 끊고 대합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준이야, 준이야~!”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역 대기실 입구에 부모님이 서 있었다. 병원의 연락을 받고 온 것일까? 이런 만남은 너무나 낯설다. 낯선 것은 늘 섣부른 당황을 초래하기에 이내 수면 아래로 의식을 삼켜버리곤 한다.
“괜찮니? 무슨 일이야? 병원에 갔더니 너 나갔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행이다. 이렇게 만나서. 정말 괜찮아?”
“네… 여긴 어떻게 알고….”
“여기 있을 것 같아서 와봤지. 그만 집에 가자.”

“준이야, 엄마 준비 다 했어. 가자.”
기억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생각과 말을 잊어버린 십 대일 뿐이다. 단지 바다와 하늘이 보고 싶어 외출을 준비하고 있는 십 대 청소년.
“내일은 네가 좋아하는 삼촌이 오신댔어. 삼촌 며칠 후면 군대 가잖아. 삼촌 오면 맛있는 것도 해 줄게. 알았지?”
2시간에 걸쳐 도착한 서해는 작은 항구가 있는 곳이었다. 더러운 바닷물, 헝클어진 그물과 진흙들, 썩지 않는 비닐과 쓰레기로 뒤범벅된 곳. 그 가운데서 다시 지는 태양을 봤고 내 방황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음성을 들었다. 정말이지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좌… 좌회전….”
“준이야, 벌써 몇 번째야? 좌회전할 길이 없잖아. 여기서는 우회전이야.”
“그… 그래요, 우… 회전….”
선물로 받았던 그 만년필을 놓고 왔다. 내게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펜이다. 단지 만년필을 되찾기 위해 삼촌과 함께 다시 그곳으로 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리만치 좌우를 헷갈리면서 운전하는 삼촌에게 길을 정반대로 말했다.
사흘 만에 다시 찾아간 그곳,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병원 일층 안내 데스크의 간호사는 만년필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직접 위층으로 올라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잠시면 돼요. 침대 어딘가에 끼어 있을 거야.”
“아니, 안된다니까요. 환자 이외에는 절대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다른 환자들에게도 안 좋고. 의사 선생님의 엄명이에요. 인제 그만 돌아가세요.”
“그래, 준이야. 삼촌이 더 좋은 거로 사줄게. 그만 잊고 돌아가자.”
“…….”
더 싸우기도 싫었다. 지난 사흘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할 수 없을뿐더러 삼촌에게 이런 일들로 폐를 끼치진 싫었다.
차를 타려고 주차장으로 가다가 문득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사흘 전, 내 부모가 서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뒤를 돌아봤다. 3층 위에 있는 몇 개의 창문 그리고 그 창문 너머로 그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는 여전히 탁구를 치고 있겠지, 진아는 무얼 하고 있을까? 인사도 못 하고 왔는데….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그때, 내가 소리를 질렀던 바로 그 창문에 진아가 있었다. 나를 응시하고 있는 진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듯 점점 또렷이 보였다.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 준 사람인데 이제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슬프다 못해 우습기까지 했다.
그 순간 진아가 손을 흔들었다. 살포시 미소를 보인 것도 같았다. 움푹 들어간 보조개가 보이질 않아 그 모습이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건 우리 자신과 사랑과 친구들 때문이리라. 진아가 나를 보내주는 것처럼,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진아를 바라보며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아마도 난 만년필을 찾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진아를 찾으러 왔었어야 했나 보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 텐데 그런 불안감은 없고 단지 슬플 뿐이었다.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슬픔만이 나를 둘러쌌다.
내가 없어도 진아는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운명이 우리와 그 믿음을 보증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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