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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시작 #1] 새벽 여명은 신의 창조물 중에 가장 보잘것없다.

이용준
  • 입력 2017.09.03 00:00
  • 수정 2021.12.16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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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경계는 모호하다. 사람들은 새벽이 언제인지 모른다. 해가 뜨기 전까지 새벽은 늘 그렇다. 하지만 일몰, 해는 지고 달은 이미 떠 있는 그 일몰의 시간은 분명하지 않은가? 너무나 선명한 색으로 그 시간을, 그 시작을 말한다.

1. 어두움

“달은 계절을 알려주고, 해는 그 지는 시각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 시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의 힘으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여태껏 아무도 그런 반란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그 의사의 말을 그대로 믿은 상황은 어제보다 아니 지난 일 년보다 절망적이다.
날다가 갑자기 추락한 콘도르도 지금 같은 절망에 빠졌던 걸까. 긍정적으로, 당혹과 배신의 감정이 더 컸다는 것이 나와 그 콘도르를 심연이라는 어둠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단 30분간의 대화로 나를 어둠의 감방으로 처넣은 그 의사의 단순한 의학 지식과 객관적이지 못한 임상의 헛된 경험들은 저주받아 마땅하리라.

“좋은 곳이 있대. 거기 가서 네가 원하는 대로 상담을 받아보자.”

엄마는 분명 좋은 곳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도 그 ‘좋은 곳’이 병원인지, 그것도 말로만 들어왔던 정신병원인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모든 정신병원이 일반 병원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위장한 것인지도 당연히 알 리 없었다.
출입구를 통해 들어와서 예약하고 한가하게 정수기에서 물을 뽑아 마시고 늘 그렇듯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면서도 감기 때문에 소아과를 찾은 아이처럼 주사기의 공포만을 떠올렸지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은 상상조차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상 정신병원은 서울 시내 한 복판에도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 혹은 정신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가까운 곳에서 수요를 채워야 한다는 경제법칙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편의점이나 동네 구멍가게 존재가 순간순간의 욕구를 채워 주는 것처럼. 평생 남아서 누군가의 정신을 해치고 종교의 교리를 해칠 문제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
릴케의 글은 읽다가 지루해 그만뒀지만, 나는 어느 곳엘 가더라도 공기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냄새를 통해 분위기를 파악하는 특이한 취미가 있다. 하지만 겨우 십대의 행동반경이란 그다지 넓은 것이 못 되어서 새로운 곳을 경험하며 맡는 냄새는 늘 이전 범주 안에서 찾아내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한참 후에나 있을, 다양한 경험과 말도 안 되는 타락한 상상력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극복하겠지만 말이다.
병원 공기가 소독을 위한 알코올 냄새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만 가지 의약품들의 냄새 그리고 환부에서 나는 냄새로 얼룩진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정신병원에서 이들 중 하나는 빠져야 했었다. 내 오감 중 하나는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정신병원이란 이름의 권위가 무의식적으로 오감을 가로막아 이 곳 공기가 특별하게 무색무취하다고 느끼게 만든 착각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의 모든 사람들 혹은 병원 스스로가 외부인에게 잘 위장한 채 돈을 벌어들이려는 속셈 때문인지는 지금도 분별할 수가 없다.

“준이 학생이죠? 종이에 해당하는 항목을 체크해 주세요.”
악한 이면이나 숨겨진 정체를 드러내길 싫어하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접근하기 마련이다. 그 간호사는 백의의 천사라는 얼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종이를 내밀었다.

- 지난 한 달 동안 매우 흥분되어 있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 원인을 알기 힘든 신체적 문제로 여러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아 집에서 누워만 있는 적이 자주 있다.
- 마음이나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기도 한다.
- 애인과 헤어졌다.
- 어떤 이상하거나 괴기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가 부쩍 늘었다.
- 이사나 이직 등으로 주변 환경이 변화됐다.

나는 모든 항목에 다 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별로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자살’, ‘식욕’, ‘성욕’, ‘피곤함’, ‘슬픔’, ‘실패’, ‘비밀’, ‘극도로’, ‘무의식적으로’, ‘의욕’과도 같은 낱말들은 모두 중립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마치 시험 문제 같은 사지 선다형도 있었는데 증상별로 그 수준을 나눴다. 종이에 적힌 항목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서 차츰 심상치 않는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온 사람에게 이런 설문지는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한편으로 어쩌면 이곳이 지금 필요한 곳, 지금 상황에 딱 알맞은 곳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겪었던 상황들이 하나씩 튀어 오르며 기억을 되돌리기 시작한다. 아무런 자의식 없이, 완전히 타의적인 행동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는 그 순간들.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고 이유도 몰랐지만 꼭 그래야만 했던 순간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도 못하는 순간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몇 번의 가출, 이유 없는 자살 시도, 갑작스런 자퇴.

겉으로 드러난 것이야 ‘날라리’ 학생의 정도가 조금 더한 방황으로만 보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매년 5천명 이상이 자퇴하고 1분당 한 명꼴로 죽음을 찾아가며 수 없는 아이들이 가출한다. 딱히 말세의 증상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행위에 어떤 이유도 없다는데 있었다. 더 큰 문제는 행위 주체자인 나조차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차석으로 입학한 고등학교 생활이 좀 지겨웠던 건 사실이지만, 공부도 잘했고 학급임원을 맡아 활동하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선생님들의 신임도 컸고 부모님도 다 살아계셨고 남들만큼 사는 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 종목을 특히 좋아하는 운동광이었고 예쁘고 다정다감한 여자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그런데 왜?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양보하더라도 내게 잘못이나 문제가 있다면, 몸과 정신이 따로 놀려고 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막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아니, 막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의지가 박약하다거나 어리석지는 않았는데도 말이다.
내 정신은 이미 죽음에까지 이르렀었다. 말 그대로 정신이 죽음의 심연 저 아래, 그곳이 하데스이건 음부이건 간에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그곳까지 가서 오랜 세월을 침묵하고 방황했으며 아무 저항도, 아무 명령도 하지 못했다.
죽음 앞에 이른 정신은 쉽게 회복되지 못하는 법이다.

“다 썼으면 종이는 제출하고 2진료실로 가 보세요.”
일반 진료실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그곳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말고도 푸른색 간호복을 입은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하얀 가운과 적당히 어울리는 하얀 얼굴을 한 의사와는 달리 푸른색 간호복을 입은 남자는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린 피부를 자랑했다. 그저 서 있기만 하던 그 남자는 의사가 내게 말을 걸자 한쪽 구석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어디보자…. 그래, 준이 학생은 오늘 기분이 어때?”
“네?”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일반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순간 당황했다. 원래 의사들이 건방지다지만, 처음부터 대놓고 반말할 정도로 권위나 연륜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오전엔 비도 왔는데 기분은 괜찮나?”
‘비 오는 것이 기분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 그러고 보니 아침에 비가 왔었지….’ 생각을 끊고 답을 해야 했다.
“그럭저럭…. 잘 모르겠어요.”
“자, 아까 적어준 종이는 잘 봤어.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 같은데. 아, 뭐 크게 문제되는 건 아니니까 아무 얘기나 편하게 해보지.”
둥그런 안경테 너머로 보이는 의사의 눈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반짝이긴 했지만, 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의 눈은 늘 그렇다. 반짝거리며 빛은 나지만 단지 전등의 빛에 반사되는 눈들. 나는 그런 눈을 싫어한다. 마주쳐 보는 것조차.
“얘가 말이죠, 부모 말고 다른 사람과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해서 오게 됐어요.”
갑작스럽게 들린 엄마 목소리.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운전한 차를 타고 온 것만은 확실했다. 그 ‘다른 사람’이 부모만 아니면 됐지 생판 알지 못하는 의사와 이야기 하는 것은 더욱 원치 않는 짓이었다.
“별문제 없어요. 그냥 좀 피곤할 뿐이에요.”
“그래, 그러면 어머니는 잠시 나가 계시구요, 준이 학생과 이야기를 더 해 보도록 하죠.”
어머니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지 의사는 진료실에서 엄마를 떠밀다시피 내쫓았다. 엄마는 아무 저항 없이, 아무 말도 없이 나갔다.
“자, 이제 됐으니까 이야기를 해봐요. 아무 말이나 좋으니까.”
의사는 상담하는 사람의 기본은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단 둘이 있게 되자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접근해 왔다. 동시에 그 눈으로 쳐다보면서.
“…….”
5분 정도 침묵이 흐르고,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자 의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준이 학생은 자살을 기도했던 적이 있었다고 썼어. 언제, 왜 그랬지? 편하게 말해 봐. 자살은 큰 문제가 아니야.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힘든 사회가 되었는걸. 다 이해하니까 왜 그랬는지 편하게 얘기해 봐. 어머니한테는 비밀로 할 테니까.”
다른 사람이, 그것도 나조차 이유를 모르는 과거를 입에 올리자 마치 주문을 건 것처럼 그 순간이 떠올랐다. 왜 그래야 했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그 순간과 과정들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난 후부터 그나마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주말마다 시내 약국들을 돌아다녔다.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의심을 사지 않도록 한 약국에서 수면제를 두 알 이상은 사질 않았다.
‘잠이 안 와서요. 수면제 두 알만 주세요.’
50군데가 넘는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꽤 모았을 무렵, 그러니까 한 달 전쯤이었다. 평소처럼 교회를 다녀와서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로제 마르텡의 『회색노트』를 보다가 곧 지겨워져서 밤새 음악을 들었다.
새벽이 되자 아무 이유 없이 그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다.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 태초부터 그 순간에는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는 듯. 처음엔 땅콩 초콜릿을 먹듯 한 알 한 알씩 세어서 30알 정도를 먹었다. 30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자 남은 약들을 탁탁 털어 넣고 그대로 누웠다.
기억나는 것은 한쪽 귀에서 들리는 엄청난 이명과 의식만 남은 꿈뿐이었다. 눈을 뜨면 천국이 내 앞에 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호기심, 천국 따윈 없어도 된다는 또 다른 믿음과 같은 의식들은 하나의 꿈으로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됐다. 그러다가 지겹도록 반복되는, 윙윙거리는 소리와 구토할 것 같은 어지럼증 때문에 눈을 떴다. 여전히 침대 위에 누운 채였고 베란다 바깥으로는 새벽 여명이 밀려오고 있었다.
하루가 끝날 때의 일몰과는 너무나 달랐다. 스멀스멀 기어오듯, 아무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어둠을 몰아내는 여명의 빛만큼 혐오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단지 태양빛에 영합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헛된 희망과 기회들로 혼란만 가중시키는 새벽 여명은 신의 창조물 중에 가장 보잘것없다.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러면 네 자신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
새벽 경계는 모호하다. 사람들은 새벽이 언제인지 모른다. 해가 뜨기 전까지 새벽은 늘 그렇다. 하지만 일몰, 해는 지고 달은 이미 떠 있는 그 일몰의 시간은 분명하지 않은가? 너무나 선명한 색으로 그 시간을, 그 시작을 말한다.
신은 일몰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우리에게 그 박명(薄明)의 빛을 선물해 준 건 아닐까.
물론 사랑은 대상에 따라 충돌하고 부딪힌다. 그 이후로 나는 해가 뜨는 시간을 싫어하게 됐다. 그때 갑자기 이명 소리에 리듬을 맞추듯, 거실에서는 전기밥솥의 신경 긁는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그릇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1999년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아세요?”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침묵을 깨고 말았다. 태초부터 그 순간에는 그렇게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는 듯.
“아니, 준이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지?”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친구 초대를 받아 놀러가서도 그 집 책들에만 관심이 있었죠. 집에 와서도 방에 들어가 책만 읽었어요. 수십 권의 동화책을 반복해서 읽었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백과사전 류의 책들을 즐겨 봤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서 교보문고를 갔는데 글쎄, 그렇게 책이 많은 곳은 처음이었어요. 어린 아이가 느끼는 천국은 동경의 대상, 욕구의 대상이 즉시 혹은 우연치 않게 현실화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게 되네요. 한 달에 다섯 권씩 사주겠다는 아버지 약속은 믿을 것이 못 됐지만, 그날만큼은 진실이었어요. 저는 애드가 앨런 포의 추리소설과 당시 유행하던 유머집 한 권, 그리고『신의 아그네스』와『배꼽』이라는 책, 그리고 검은 표지의 책을 한 권 샀어요.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 유행하던 유리 겔러와 같은 여러 마술가, 예언가들의 일생과 에피소드를 아이들의 눈에 맞춰 편집한 책이었어요. 맨 마지막 장으로 기억해요. 노스트라다무스. 그래요, 그였어요. 이름도 길어서 노스트다라무스인지 노스트라무스인지 항상 헷갈려 하면서 외우게 된 이름이죠. 신의 대언가였던 그는 세상의 종말이 1999년도에 완성된다고 말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는 고도벤이라는 일본 작가가 편역한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을 읽었는데. 선생님은 그 책을 안 읽어 봤나요?”
“책에서는 뭐라고 말했지?”
중요한 비밀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다. 진실은 늘 왜곡되고 은폐되지만, 애초 들어보지도 못한 진실은 우리 스스로가 거부하는 것이라는 믿음 또한 있었다. 거부된 진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피어나는 연민의 감정은 성욕이나 호기심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바로 그 순간이었으리라.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가요? 아니면 이 무서운 예언을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신을 믿던지 버리던지 하는 것인가요? 성경에서도 예언하고 있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선지자가 올 것이고 종말을 예언할 것이라고요. 노스트라다무스는 자신의 예언이 신에게서 온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1999년도에는 적그리스도가 와서 세계를 지배하고, 대환란이 시작될 것이며 이 세계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어요. 다른 거짓 선지자들과는 다른 종류의, 참 예언이 아닐까요? 선생님도 알고 있죠? 많은 연예인들이나 정치가들이 은퇴를 서두르는 것도 환란을 피해 지구 어느 구석으론가 숨기 위해서예요. 최근에 밴드를 해산한 서태지나 신해철도 그렇고요. 뮤즈와도 같이 똑똑한 그들은 분명 외국의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거예요. 물론 선진 음악을 배운다는 핑계를 대겠지만 말이에요.”
“흠, 그 문제는 그 정도로 하지.” 의사는 약간은 당황스러워 하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모두가 종말을 믿지는 않아. 그것은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준이는 왜 자살을 하려고 했지? 학교는 왜 그만두고?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니.”
‘내 부모는 나를 걱정하지 않아, 나를 생각하지도 않고. 어쩌다 보니 나를 낳았을 뿐이고 그냥 나를 길렀을 뿐이지. 의무나 사랑으로도 자식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중 한 부류가 바로 내 부모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의사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이유는 없어요.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람이 죽잖아요? 그건 이유가 없는 거라구요. 어떤 사고나 병으로 죽는 것도 이유가 되지 못해요. 자살도 마찬가지구요.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듣고 있던 음악이 슬펐다,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라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사업이 풀리지 않는다 등등…. 그것도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요. 굳이 이유를 대자면 난 종말 때문에 자살하려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종말이 준이의 자살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잖아?”
“그래요. 모든 사람들이 극단적이지 않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된 거예요. 오히려 사람들은 극단적이고 예민해지고 똑똑했어야 해요. 그래야 이 세상이 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아무도 신을 믿는데 극단적이지 않아요. 사랑하는 것도 극단적이지 못해요. 난 극단적인 사랑도 해 봤고 극단적인 믿음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극단적이지 못한 인간들의 평가와 반응이었죠. 가장 가까이에서 봐온 부모님도 나를 평가했어요. 내 사랑을 거부한 그 사람도요….”
‘사랑’이란 말을 내뱉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사랑의 대상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은 아닌데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이, 나는 서럽게 하지만 숨죽여 울었다. 차츰 울음소리는 커져갔고 나는 항변하듯 소리를 쳤다.
“당신들 모두가 잘못된 거라구! 당신도 나를 믿지 못하겠지? 나를 이해하지 못하잖아!”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밖에 있던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푸른색 간호복의 남자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사는 나를 다독거리며 괜찮다고 말을 했고 진료가 끝났으니 잠시 나가 있으라고 말했다. 푸른색 간호복의 남자는 의사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나를 진료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랑 이야기 할 동안 잠깐만 위층에 가 있으라고 하셨어.”
진료실을 나오자 작은 소동에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인 채 흐르는 콧물을 손등으로 막으면서 남자를 따라갔다.
“잠깐 휴지 좀….”
간호실에서 크리넥스 휴지를 몇 장 뽑아 건넨 남자는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 건물 기둥에 설치된 좁은 엘리베이터 문 앞에 다다랐다. 내 팔을 잡고 있던 남자 손에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 여기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에 가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다시 오실거야.”
두 사람이 타기도 좁은 엘리베이터는 처음이었다. 속도도 무척 느렸고 진동은 거의 느끼질 못했다. 3층에서 내리자 눈앞에는 넓은 계단이 보였는데 양 옆으로 복도가 있었다. 왼쪽으로 돌아가자 바로 방 하나가 나타났다. 남자는 “여기서 잠시 기다리면 돼”라고 말하고는 나를 내버려 두고 나갔다.
일반 병원의 주사실 같은 방이었다. 환자용 침대와 쓰다 남은 주사들, 이름 모를 약병들과 세탁이 안 된 환자용 가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잠시 후 푸른색 간호복을 입은 남자는 한 손에 푸른색 옷을 들고 나타났다. 남자의 등 뒤로는 그와 체격이 비슷했지만 하얀색 간호복을 입은 다른 남자 한 명, 그리고 정상적으로 예뻐 보이는 여자 간호사 한 명이 나를 바라보며 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자, 이걸 입고. 신발도 벗어 둬.”
순간적으로 냉정해야만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순히, 아무 말 없이 그 남자에게서 푸른색 옷을 받았다. 아무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눈으로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환자복 상의를 입고 단추를 채우자 그들은 그때서야 서로 이야기를 하며 내게서 시선을 뗐다. 남자는 바로 옆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문 앞에 여전히 서 있었다.
‘지금 아니면 평생 이곳에 갇힐지도 몰라,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진실과 예언을 누설한 게 틀림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옆에 있던 남자를 거칠게 밀어제끼고는 문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문 앞에 서 있던 하얀 간호복의 남자가 막아섰다. 뒤따라온 푸른색 남자도 달려와서 내 팔을 낚아채고 “괜찮아, 가만히 있어”라고 말했다. 그제야 이들의 실제 역할을 알게 됐다.
“이거 놔! 난 나갈 거야!”
학교에서 매년 상급반으로 진학할 때면 남학생들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팔씨름을 했었고 나는 늘 일 이등을 다툴 만큼 힘이 셌다. 자기 보호와 미래 여자 친구를 지켜줄 힘을 위해선 운동이 필수적이라며 5살 때부터 아버지가 운동을 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팔을 잡은 그 남자의 힘은 다른 차원에서 온 듯 저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곧 순순히 포기했고 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옷을 마저 다 갈아입었다.
“그래, 착하지. 얌전히 있으면 금방 퇴원할거야. 의사 선생님이 오면 더 얘기할 수 있을 테니까 병실로 가자.”
정상적으로 예쁜 간호사는 다른 누군가를 향해 달래듯이 말하고서는 나를 병실로 안내했다. 복도를 지나가니 큰 문이 하나 있었고 간호사는 능숙하게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라고 말하기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편도선 때문에 일주일 정도 입원했던 병동을 기억하는데 지금 마주한 이곳은 일반 병동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이 말로만 듣던 정신 병원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새로운 상황에 처한 똑똑한 사람이라면 자의식의 주절거림보다는 외부의 신호를 먼저 잡아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어야 하니까.
새로운 배우의 입장에 휴게실에 모여 있던 몇몇 사람은 나를 응시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을 했다. 다섯 명씩 한꺼번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는 아줌마,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그다지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다.
병동 중간에는 간호사실이 있었고 그 앞으로 꽤 넓은 휴게실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홀이 있었다. 작은 창문들은 모조리 철창이 쳐져 있었는데 병원 외부에서는 이곳을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차단되어 있는 듯했다. 휴게실 한쪽 벽 위에는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고 몇 개의 낡은 소파가 텔레비전을 향해 있었다. 반대편에는 탁구대가 있었다. 내 또래의 남자애와 중년 남자가 탁구를 치고 있었다. 그 남자애 옆에는 두 명의 여자가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곧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당분간이라도 이들 중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자, 준이 학생, 괜찮으니까 따라와요.”
휴게실을 지나 오른쪽 복도를 따라가자 몇 개의 병실이 나타났다. 몇 개의 방을 지나치던 간호사는 302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은 열린 상태였다.
“여기가 준이 학생 침대야. 말썽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곧 의사 선생님이 오실 거야.”
병실 문 바로 옆 침대를 가리킨 간호사는 “잠시 뒤에 새 시트로 갈아줄 테니 문은 닫지 말고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갔다. 꽤 넓은 병실에는 6개의 침대만 있을 뿐이었다. 일반 병실에서나 볼 수 있는 소형 냉장고나 텔레비전도 없었다. 병실 문 반대편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었고 창문 너머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보였다.
창문 오른편 침대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만 빼면 병실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는 적막한 병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무척이나 낡아빠진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 이제 어떡하지. 어머니는 무얼 하고 있기에 연락도 안 해주는 거야. 그 의사, 오기만 해 봐라. 이렇게 사람을 가둬 놓는 게 말이나 돼? 바로 집에 연락을 해서 내보내 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나는 그냥 침대에 걸터앉은 채 멍하니 바깥 풍경에만 주시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간호사도, 의사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휴게실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창문 너머 하늘은 오후 4시가 지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초여름의 뜨거운 태양빛은 병실 창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병실 안은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침대에 걸터 앉아있다 보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고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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