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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대통령이다] #2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이용준
  • 입력 2017.02.06 00:00
  • 수정 2020.07.1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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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 편집자 주.

#2.
3주 만에 여자는 청년미사가 아니라 교중미사에 나타났다. 교중미사 전 고해성사 때 목소리는 분명 들리지 않았다. 교중미사는 본당신부님이 집전하시기에 나는 중간 자리에서 여자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남자 한 명과 나타난 여자는 항상 앉던 맨 뒷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연인 같았는데 여자는 어딘가 지쳐 보였다.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알 수 없는 사랑,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랑을 주는 사람치고는 평범해 보였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제2독서 말씀이 낭독되고 화답송이 신자들 사이에서 울릴 때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화답송도, 복음환호송도 잊은 남자는 고개를 뻣뻣하게 든 채 본당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조각상만 주시했다. 집중하지 않는 나태한 중년의 교우, 한 손가락으로 이에 낀 음식물을 빼는 할머니 교우 등 잘못 끼워진 대리석같이 무언가 잘못된, 아니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찾으려는 심문관 같았다.

본당 보좌신부로서 영성체의 빠른 진행을 위해 주임신부님과 전교수녀님과 함께 영성체를 하던 중이었다. 여자는 성체를 받으러 나오지 않았지만, 남자는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살아 계신 주님의 몸입니다.”
“…….”

성체를 내밀었는데도 남자는 말이 없었다.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퍼뜩, 신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밀던 성체를 거두고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세례를 받으셨나요.”
“저는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당한 저음의 목소리다. 순간 이상하리만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밀려서는 안 된다. 나 역시 단호해야 했다.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으셨더라도 가톨릭에서 영성체를 모시려면 따로 세례를 받으셔야 합니다. 미사가 끝난 후 잠시 저를 보고 가시죠.”

경건한 영성체 예식 시간에 혹 소동이라도 일까 싶어 속삭이듯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불쾌한, 그러나 동정하는 눈빛으로 넌지시 나를 쳐다보고는 곧장 자기 자리로 향했다. 퇴장 성가가 끝나기도 전에 여자와 남자는 성당을 떠났다. 마침기도가 끝나자마자 그들을 찾으러 주차장으로 갔다. 그들이 탔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에 확 뜨이는 차 한 대가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흰색 아반떼 차량 옆에는 ‘신나고 즐거운 경마문화’, ‘말산업을 선도해 나가는 레이싱미디어’라는 문구가 파란색으로 도색돼 있었다.

저녁에 있을 청년미사 전에 그 형제에게 연락했다. 홍정환 시몬. 한때 여자와 사귀었다는 형제는 미사가 끝난 뒤 찾아오겠다고 했다. 4년 전 뜬소문이 떠돌았어도 시몬은 성당을 지켰고 작년에 2살 연상의 비신자 여성과 결혼했다. 성실하고 착한 가격이라고 입소문이 나 사업장인 카센터도 운영이 잘 된다고 들었다.

“신부님, 저를 찾으신 이유는요?”
“시몬 형제, 나를 용서하십시오. 궁금한 게 있는데 알 길이 없어 연락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거라면 다 말씀드려야죠.”
“이미아, 클라라 자매님을 기억하나요?”
“네? 그… 그건….”
“두 사람의 과거를 캐묻자는 건 아닙니다. 그 자매님이 왜 성당을 떠났는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얼마 전부터 다시 성당에 나오는 거 알지요?”
“네…. 두어 번 봤습니다. 먼저 알은체를 하던데 저는 말하기조차 겁이 나서 피했어요.”
“겁이 났다고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겁니까?”
“그게 말하자면… 길어요.”
“혹, 자매님이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사랑을 받았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까?”
시몬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신부님이 그 이야기는 어떻게 아시죠?”

목이 타는지 시몬은 정수기에서 물을 뽑아 마시고,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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