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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64] 리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신세계'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8.23 08:38
  • 수정 2021.08.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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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 문화예술을 향유하고픈 욕구는 이제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든가 보다. 올여름의 무더위가 지나고 입추를 하루 앞둔 가을장마의 틈바구니에 비 온 뒤 맑게 개고 활동하기 좋은 청명한 날씨에 예술의전당 야외를 가득 매운 인파들, 아무리 코로나가 무섭고 엄중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휴일 오후를 누리고 즐기기 위해 소풍 나온 사람들에게 코로나 시국에 어딜 외출하고 돌아다니냐고 비난하는 사람은 외로운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요 이불 속의 하이킥만 남발하는 불쌍한 영혼일 테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욱 따뜻한 환대와 포옹 그리고 문화예술로서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끄집어내어 데리고 나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신세계를 경험해야 하고 경험시켜주고 싶다. 그게 바로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니.....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찬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신세계' 연주회

프로그램의 힘! 서초동 악기거리에서부터 삼삼오여 모여 예당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니 '신세계'들으러 간다고 한다. 이렇게 곡명을 콕 집어 지칭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 인물 위주로 조성진 보러 간다, 코심 들으러 간다 이렇게 일반인들은 말하지 어떤 특정 작품을 언급하면 그만큼 클래식 마니아거나 곡이 가진 흡입력이 크거나 일거다. 오늘은 신세계 들으러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교향적 무곡'은 20세기 중반 미국 대중 클래식 음악의 표본이자 앞으로 메타버스 네오클래시즘의 롤 모델이다. 지난 7월 코심이 들려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와 말러에서와 같이 일체의 일렉트로닉이 배제된 어쿠스틱 기악 오케스트라가 낼 수 있는 관현악의 초 결정체이자 파퓰러 한 요소가 다분한 '이런 스타일도 클래식 음악이라고 할 수 있나'하는 고리타분한 논쟁의 한가운데 있는 작품이다. 예전 필자가 중앙대학교에서 비음악인들 대상 교양수업에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교향적 무곡'의 맘보를 들려주자 수업 기간 내내 뚱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앉아 있던 경영학과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음악은 이렇게 흥겹고 즐거워야해!"라고 외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춤곡으로 이루어진 교향적 무곡 내내 리듬에 몸을 맡기고 흔들고 싶었는데 다른 관객들이 너무나 엄숙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비치고 귀에 들린 광경은 경이로움 자체여서 그래도되나였지 않을까? 클래식 음악의 신세계였을 테니.

코른골트는 더욱 생소한 신세계였을거다. 특히 몽환적이고 극도의 고요가 밑바탕에 흐르는 2악장은 절제미가 가득했다. 솔리스트로 나선 스베틀린 루세브의 기교는 농밀하고 능숙하다.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손열음과의 독주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서울시향 악장 그리고 불과 열흘 전의 금호아트홀에서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회까지 너무 루세브에게 익숙해서인지 루세브의 개성과 매력보단 그가 연주하는 코른골트의 음악에만 빠지기에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시간이었다. 코른골트를 들을 수 있다는 행운에서 벗어난 건 열흘 전 독주회에서도 연주한 앙코르곡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17번에서였다.

코른골트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한 스베틀린 루세브

번스타인과 코른골트에서 공력을 다 써서 그랬는지 정작 그 두 곡에 비해선 익숙하고 연주 횟수도 월등히 많았을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잔실수가 너무 많았다. 1악장 제시부 코데타의 플루트 선율이 지휘자 그리고 악단과의 밸런스와 박자가 안 맞은 부분은 묵과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랬는지 재현부에서의 세컨드 플루트에서 현과 조화를 이루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2악장은 전반적으로 빨랐다. 신기하게 지휘자 크리스토퍼 앨런은 1악장에선 암보로 지휘하더니 2악장부턴 악보를 열고 지휘했다. 2악장의 B 부분에서 1악장 제시부 Codetta에서의 실수했던 플루트가 오보에와 합을 이루어 명료한 선율을 흘렀다. 거칠고 투박했던 호른과 튜닝이 맞지 않은 목관악기들, 지휘자의 빠른 템포를 버거워하는 현악 파트 등 총체적 난국으로 흐른 흐름이 4악장에 가서야 영롱한 트럼펫에 의해 정리가 되면서 안정을 찾았다. 7월 말러 공연 시 인터미션에서 시벨리우스를 불면서 입술을 풀고 오늘의 인터미션 때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불면서 워밍업을 하던 그 트럼펫을 통해서 말이다. 번스타인에서도 금관은 여러모로 미흡함을 들어내었지만 우리 악단은 미국 흑인들의 재즈밴드 또는 콘서트 밴드가 아니니 신체구조상 취약할 수밖에 없다. 도쿄 올림픽에서도 육상이나 수영 등 기초 스포츠에서 체격 조건이 월등히 뛰어난 미국의 선수들이 득세하는 와중에 높이뛰기로 4위를 기록한 우상혁이나 수영의 황선우 선수처럼 오늘의 금관엔 트럼펫이 여러 악조건을 뚫고 나온 셈이다.

좋아하는 사람들, 문화예술의 힘, 경이로운 신세계

코른골트는 갈림길이다. 20세기 중반을 넘어 코른골트 이후 어떤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관현악단 또는 연주자들에게 고정 레퍼토리화되고 자리매김 했다고 자신 있게 꼽을 수 있을까? 코른골트 이후 클래식은 정체를 맞고 소멸에 이르렀다. 번스타인의 파퓰러 한 요소와 함께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결코 분리가 아닌 편입을 해야 하는 일렉트로닉을 포함한 사운드로 융합한다면 혼합과 혼용을 통해 지금 현시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신세계'의 소리들이 나와 클래식이 전 세계 음악계를 다시 선도하고 부활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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