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시인
비웃지는 마시라
나는야
종이컵에 시를 쓰는
종이컵 시인
소공원 벤치 위에
구겨질 대로 구겨져
한 줄 또는
끽해야 두 줄
저 꾀죄죄, 일상생활
남몰래 찌그린다오
파리 모과 구두 말번지 촌충 따위
지각 조퇴 염소선생
발가락이닮았다 따위
혹 누군가 볼세 ㅠㅠ,
얼굴 불콰히 노래한다오
고달파라 내 영혼
그러구러 별처럼 구름처럼 흐르니
뉘렇게 짠 손 그득
언젠가 꼭 한 번은 맑게 읽히리
무신무신눔,
소리 들어가매 다시금 구겨질 대로 구겨젼
나는야 종이컵 시인
그러니 가자, 시시껄렁
더 작고 여리게
우리 정작
아픈 얘기들은 빼고
시작 메모
저 시는 10년 전 2011년에 쓴 시 <소공원>을 다시 들여다보고 쓴 시다.
*어데서 물큰
개비린내가 온다
노을에 탄 고동색 얼굴
쨀쭘한 눈
벤치에 구겨져
자꾸만 무신 새끼란다
종이컵 소주 커피
게우, 한 모금 손에 들곤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백석 시인이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백석 시인 시 가운데서는 좋아하는 시는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 어데서 물큰 개비린내가 온다’고 하는 <비>다. <비>를 단연 최고로 친다. <비>는 딱 두 줄이다. 비 속에서 물큰 개비린내를 맡는 그 감성이, 숨결이 놀랍고도 기쁘고도 슬프다. 그래서 왠지 노숙자들을 위해 이 구절을 빌리고 싶었다. 그러구러 <소공원>이 나오고 다시 물큰, 이 <종이컵 시인>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