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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42] 소극장 오페라에 대한 소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5.31 12:04
  • 수정 2021.05.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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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된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의 일환으로 4월 18일 저녁 7시30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관람한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오페라>

올해로 12번째 맞은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일환으로 5월 29일 토요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관람한 잔 카를로 메노티의 <전화>와 <영매>

4월 6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진행되었던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① 언어적 관점:

원어를 알고 원 가사로 독일 현지에서 자주 다양한 가수와 극장에서 접했고 연기예술뮤지컬과의 일원으로 6년간 있으면서 안톤 체홉의 <갈매기>네, 런닝타임 3시간에 육박하는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같은 걸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필자 입장에선 이런 연극풍의 소극장 오페라가 전혀 낯설지 않다. 도리어 뮤지컬, 연극 전부 번안해서 하는데 오페라만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로 그것도 대형극장에서 노래로 전달하려고 하니 힘이 들어간 발성에 오페라 감상인구도 형성되지 않은 마당에 큰 극장에 머릿수를 채우려는 무리수가 불편했고 개선이 요원했는데 초근접에서 무대위의 가수, 연기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 수 있으니 소통과 공감이 된다. 이날 공연의 장수동 예술감독은 예전부터 여러번 이역만리의 문화산물인 오페라를 21세기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탈바꿈하여 언어의 장벽이 없이 무대와 객석이 소통이 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관객 입장에서 음악이야 어차피 모르니 가사가 들리고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장면에 집중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번안을 맡은 양진모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기까지 하다. 지금 오는 관객들이 알 수 있게 시사성과 현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같이 웃고 우는 한국판 마당극이 되게끔 하자. 양진모 자체가 작곡과를 졸업하고 지휘자 아니인가! 음악말고도 공부해야할게 산더미 같이 많다. 그런데 필자 입장에선 왜 오페라를 번안해선 안되는가 하는 다른 과제와 문제점도 시사하게 한다. 가사를 다른 나라 언어로 전환한다는거, 작곡가가 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운율과 억양, 문법 등을 고려, 음과 말을 절묘하게 결합한 걸 내용전달을 위해 번역 해버리면 당연히 그 언어에 맞춘 음악이 가장 큰 손해를 보며 뉘앙스와 색채, 묘미를 전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이차원적인 문제다. 일단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재미있어해야 한다. 무대와 객석의 분리와 고립이라는 해묵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단은 듣고 알고 좋아서 이걸 발판으로 진짜를 찾아 들어보고 팬으로 확장해 나가야 하는 발판이 있어야 한다.

② 오페라의 소재:

브레히트와 바일 콤비는 오페라를 통해 자신만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를 끊임없이 강요한다. 브레히트의 메시지가 너무나 분명하고 선동적이고 주입식이다. 브레히트 시대의 사회상, 당시 만연하던 무정부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실업, 돈이면 다 되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멸이 확연히 들어난다. 그런데 2년전 국립오페라단이 쿠르트 바일의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을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과 20세기 10대 후반과 20대 중반까지 독일에서의 쿠르트 바일은 오늘 같이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변한건지 아님 사회가 변한건지 본극에서도 브레히트 아님 양진모를 통해 분명히 언급된 작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명백한 세상에 살아서 그런가 보다. 그러니 극 전반에 대한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부분부분 알아 들을 수 있지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거부감이 들었다.

메노티는 극장에서 직접 만나는 실연이 아닌 TV 송출을 통한 비대면 음악극 콘텐츠를 선보인 오페라 작곡가다. 기술의 발달은 삶의 양식을 바꾸고 바뀐 양식에 탄력 있고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사회가 요구하는 예술의 역할은 줄어들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페라는 게 라디오나 TV가 발명되기 전 대규모의 군중이 일정한 시각에 모여 연극, 음악, 춤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형태였다면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생겨 현장 방문 대신 집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편히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현재는 유튜브와 틱톡 등 비대면 OTT 콘텐츠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와 범람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하는 걸 감상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속도인지의 변화도 다가온다. 현대인이 느끼는 물리적인 시간의 속도는 오페라의 전성기인 18-19세기보단 몇 배로 빨라졌을 것이다. 현대의 관객들에게 2-3시간을 온건히 투자해가면서 어쿠스틱 악기로만 이루어진 편성의 과거 작품들을 감상하라고 하면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같이 꾸준히 누적되고 축적된 관객층과 전통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선 무리인 게 당연한다. 메노티는 20세기 뉴미디어의 발달과정에서 플랫폼과 매체의 변화에 따른 오페라와 음악 형태의 수용을 보여주는 모범답안인 셈이다.

제12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일환으로 무대에 올린 5월 29일 토요일 오후 7시 메노티의 '전화'와 '영매'

③ 앞으로의 방향:

성악가들은 한국어보다 바일의 독일어, 이탈리아의 벨칸토가 더 편했을지도 모를정도로 극 전개와 노래는 어떻게라도 최대한 한국어에 맞추려는데 그걸 부르고 행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보다 독일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나 넘버를 불렀으면 훨씬 성악적인 기량을 더욱 과시했을 정도다. 외국오페라의 한국 이식화에 따른 또하나의 걸림돌과 언밸런스다. 재차 강조하지만 우리 <춘향전>을 미국에서 미국 사람들이 자기 스타일로 바꿔 불렀을 생길 수 밖에 없는 원형과 보전이냐 전환이냐는 갈림길이다.

라디오, 영화 레코드 같은 미디어들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화나 문화산업의 자본주의적 의미로서 신문이나 방송, 음악 서비스 등 여타의 사업이나 특정한 목적을 위한 매체로 인식되는 시초에 메노티가 음악으로 그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한편의 콩트라는 포맷은 21세기에는 사장된 양식이 되어버렸다. 방송에서는 실시간 관찰 예능이 대세고 실시간 버라이어티가 대세다.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유행의 흐름이요 메노티의 시대에 유행했던 미니시리즈, 단편, 잡지 등은 그 당시 대중들의 필요와 요구에 그걸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상부상조했기 때문에 부응했다. 그래서 메노티의 오페라 두 편은 21세기 대한민국의 현 실태에 여러 시사점을 안겨준다.

고전의 21세기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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