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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1.05.08 09:56
  • 수정 2021.05.0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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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철 시인

송광사 배롱나무(사진=네이버 갈무리)
선운사 배롱나무(사진=네이버 갈무리)

 

배롱나무                                                           양태철​

오늘밤 어머니 달 속을 들락이신다.

겨우내 말랐던 배롱나무 껍질 곱게 빗은 배롱나무 한 그루

호롱불 하나 들고 동구 밖에 서 있다.

온몸에 둥근 꽃등이 많아지는 배롱나무.

 

난생 처음 어머니를 위해

첫 월급으로 옷을 사드렸을 때

주름이 겹겹이 흘러내리던

나이테가 점점 선명하던

앙상한 어머니의 꽃불이 일렁이는 그 눈빛에서

난 왜 자꾸 전등사 뜨락에서 본

꽃등 환한 배롱나무를 생각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가뭄에 바싹 타 들어가는 논바닥처럼 갈라진

배롱나무가 뱀처럼 허물을 벗으며

기어가는 것을 보았는지 모를 일이다.

간신히 마음속에 심지 하나를 켜서

나를 꽃등처럼 달고 환해하시던 어머니.

오늘밤 어머니 배롱나무 속을 달처럼 들락거리신다.

 

한 목숨을 한 목숨처럼 받아서 피는

저 꽃등의 꺼지지 않는 생명의 뜨거운 등잔,

눈이 재처럼 날리는 고향 고샅길로 달을 이고

달을 등에 지고 어머니 내게로 걸어오신다.

 

동구 밖 쥐불놀이 하는 언덕길에

오늘 배롱나무 한 그루에

조등 하나 까치밥처럼 밝다.

 

양태철 시인의 필명은 양하이다. 현대시문학 발행인이며 전체주간이며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시집 <거제, 바람이 머무는 곳> <바람의 말>, 번역서 <한여름 밤의 꿈> <노인과 바다 영어로 읽어라> <햄릿 영어로 읽어라> <어린 왕자 영어로 읽어라> <예언자-칼릴지브란> <이솝우화 영어로 읽어라> <톨스토이 단편선> <리어왕 영어로 읽어라> <베니스의 상인 영어로 읽어라> 등등이 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배롱나무를 송광사에서 보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 마치 부처를 보는 듯했다고 한다. 어버이날 생각나는 좋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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