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백제의 수도가 한반도에만 있었다는 고정 관념을 떨쳐버리지 않는 이상 차이나의 25개 정사(正史) 와 차이나 대륙에서 발견된 백제의 유물, 무덤 (의자왕의 무덤, 흑치상지의 무덤, 예식진의 무덤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좀 더 공부해야 하겠지만, 최소한 한반도와 차이나 두 곳에서 전투가 있었거나 아니면 전투는 차이나에서만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은 무대가 한반도임을 명시한 기록은 없다. 기록의 대상 지역이 한반도인지 차이나인지 후손들이 알아내어야 한다.
660년 한반도에서 전투하기 위하여 소정방이 13만의 군대를 이끌고 단 며칠 만에 돛단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왔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소정방은 660년 3월(음력)(《신당서》3권 고종황제 이치 현경 5년)
신구 우이 마한 웅진(神丘嵎夷馬韓熊津) 등 14도 대총관 을 제수받고, 신라와 연합군을 편성하여 백제를 토벌할 것을 명 받았다.
(위키백과 소정방, 대당평백제국비, 《신당서》본기, 소정방전, 《자치통감》은 대표로 신구도라 하였고 《구당서》소정방전은 웅진도라 하였다. 이원환 주 : 이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로는 구당서도 신구도이다. 구당서에서는 우이도가 아니라 곤(昆 )이도로 되어 있다.)
신구 우이 마한 웅진(神丘嵎夷馬韓熊津) 14도 대총관 소정방!
여기에 우이, 마한, 웅진이 다 들어 있네! 구당서는 대표로 웅진도라고 했네!
바다를 건너는데 길 도 (道)자를 쓰는 것은 이상하지.
한민족 계 명사 (이름)인 우이, 마한, 웅진은 그렇다고 하자.
신구는 뭐지? 신구, 신의 언덕도 한민족 계열 명사 (이름) 아닐까?
“ 김춘추에게 내려진 직책에 언급된 우이(嵎夷)는 바로 백제 땅을 의미한다. 우이의 위치가 밝혀진다면 이웃에 있는 신구(神丘)와 웅진(熊津)과 마한(馬韓)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식민강단사학계는 백제의 직전 도읍지 웅진을 충남 공주시로 비정했으며 마한 역시 한반도 서남부로 비정했으며,
중국은 우이가 산동반도에 있다고 하면서
위 소정방비와는 다르게 백제의 웅진과 마한은 한반도에 있다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김춘추의 직책에 있는 우이(嵎夷)는 어디인가.백제 땅으로 알려진 우이는 한반도에 위치하지 않아.성헌식. 기사입력 2018-11-24. 스카이데일리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spot.html?ID=79215)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