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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한반도에서 전투하기 위하여 당나라 소정방이 13만의 군대를 이끌고 단 며칠 만에 돛단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왔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백제, 고구려와 나당연합군(신라 당나라 연합군) 전투는 한반도에서 있었나? 중국 대륙에서 있었나? (1)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1.04.25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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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백제의 수도가 한반도에만 있었다는 고정 관념을 떨쳐버리지 않는 이상 차이나의 25개 정사(正史) 와 차이나 대륙에서 발견된 백제의 유물, 무덤 (의자왕의 무덤, 흑치상지의 무덤, 예식진의 무덤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좀 더 공부해야 하겠지만, 최소한 한반도와 차이나 두 곳에서 전투가 있었거나 아니면 전투는 차이나에서만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은 무대가 한반도임을 명시한 기록은 없다. 기록의 대상 지역이 한반도인지 차이나인지 후손들이 알아내어야 한다.

 

660년 한반도에서 전투하기 위하여 소정방이 13만의 군대를 이끌고 단 며칠 만에 돛단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왔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소정방은 660년 3월(음력)(《신당서》3권 고종황제 이치 현경 5년)

신구 우이 마한 웅진(神丘嵎夷馬韓熊津) 등 14도 대총관 을 제수받고, 신라와 연합군을 편성하여 백제를 토벌할 것을 명 받았다.

 (위키백과 소정방, 대당평백제국비, 《신당서》본기, 소정방전, 《자치통감》은 대표로 신구도라 하였고 《구당서》소정방전은 웅진도라 하였다. 이원환 주 : 이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바로는 구당서도 신구도이다. 구당서에서는 우이도가 아니라 곤(昆 )이도로 되어 있다.)

 

신구 우이 마한 웅진(神丘嵎夷馬韓熊津) 14도 대총관 소정방!

여기에 우이, 마한, 웅진이 다 들어 있네! 구당서는 대표로 웅진도라고 했네!

바다를 건너는데 길 도 (道)자를 쓰는 것은 이상하지.

한민족 계 명사 (이름)인 우이, 마한, 웅진은 그렇다고 하자.

신구는 뭐지? 신구, 신의 언덕도 한민족 계열 명사 (이름) 아닐까?

 

김춘추에게 내려진 직책에 언급된 우이(嵎夷)는 바로 백제 땅을 의미한다. 우이의 위치가 밝혀진다면 이웃에 있는 신구(神丘)와 웅진(熊津)과 마한(馬韓)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식민강단사학계는 백제의 직전 도읍지 웅진을 충남 공주시로 비정했으며 마한 역시 한반도 서남부로 비정했으며,

중국은 우이가 산동반도에 있다고 하면서

위 소정방비와는 다르게 백제의 웅진과 마한은 한반도에 있다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김춘추의 직책에 있는 우이(嵎夷)는 어디인가.백제 땅으로 알려진 우이는 한반도에 위치하지 않아.성헌식. 기사입력 2018-11-24. 스카이데일리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spot.html?ID=79215)

 

 

신당서 구당서 원문 소호자 2009. 12. 7. 네이버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hoja&logNo=5007753016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에서 캡쳐 편집
신당서 구당서 원문 소호자 2009. 12. 7. 네이버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hoja&logNo=5007753016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에서 캡쳐 편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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