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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살인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1.04.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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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나는 폼 나는 반장이었고 걔는 폼 없는 루저였다. 이원수. 그 아이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보면서 저 애의 부모는 쟤를 얼마나 원수같이 여겼으면 이름도 저렇게 지었을까 의아했다. 옷은 항상 다 낡아빠지고 늘어진 진한 국방색 티, 게다가 여기저기 구멍도 많다. 얼굴도 시커멓고 몸에 때 국물이 줄줄 흘렀고 몇 달을 씻지 않은 상태였다. 원수는 수업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교실에 진열된 장식품처럼 들어와만 있는 존재였다.

수업 시작을 알려도 바닥에 누워 잠만 잤다. 선생님도 포기하셨는지 간섭하지 않았다. 그 애와 나의 전쟁은 매일 시작되었다. 난 떠드는 애를 적어야만 했고, 칠판에 적자마자 그 앤 쏜살같이 달려 나와 지우기 일쑤였다. 다시 구석에 쓰면 다시 지우고 싸움은 항상 반복됐다. 아무도 그 애와 짝이 되려하지 않아 반장이었던 내가 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녀 커플이 되어 추는 댄스 수업 때도 난 늘 그 애 파트너가 되어야했다. 손잡는 것도 싫어서 막대기를 주워 이거 잡으라고 내밀었다. 그때는 나도 어려서 친구를 도와줄 생각보단 터부시했던 거 같다. 다른 애랑 출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서 아이스크림 막대기 등을 주워 손잡지 않았다. 다들 그런 세대였다.

초점 없이 인생 다 산 눈으로 누워 교실 천장을 바라보던 초등학생. 나이에 맞지 않게 인생고락을 다 알아버린 얼굴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애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는 가난, 피할 수 없는 학대, 할 수 없는 성적. 그 모든 게 친구를 절망하게 만들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거대한 웅덩이로 느껴지고 그 안에 빠져버린 듯했다.

이원수 선생님의 동화를 읽으면서 동명이인인 그 아이도 이런 환상적인 삶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이 들고 보니 겉으로 드러난 장애보다 그 아이의 마음의 장애가 얼마나 깊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이에 누리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그런 인생을 살아야하는 것에 대한 우울증도 있었던 듯하다. 지금은 어떤 삶을 사는지 가끔 궁금하다.

내 짝꿍들은 다 나를 좋아했다. 한 친구는 얼굴도 하얗게 귀공자처럼 잘생기고 귀여웠다. 그 친구는 다리가 불편했다. 아이들 놀이나 달리기, 소풍에 함께 하지 못한 친구는 언제나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곤 했다. 우리 반은 한 달에 한 번 자리를 바꾸는데 그 아이는 내 옆에만 앉겠다고 울고불고해서 1학년 내내 그 애와 짝이 됐다. 숙제니 화장실 가는 거니 여러모로 도와주는 내가 좋았던 거다. 자기 키 만 한 나무 목발을 짚고 한 걸음 나가기도 불편해 보였다. 한 날은 쇠 철심을 박은 듯한 그 애의 다리 보조 기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나 무겁고 답답할까. 정신적인 문제든 신체적인 문제든 장애는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인지 난 길거리를 걸으면서 키가 작은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쳐다보는 사람을 째려본다. 시선 살인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왜 그런 분들을 바라보는지, 아직 우린 선진국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남을 신기하게 보는 그 사람들에게 너무 화가 난다.

어릴 때 반쪽이 이야기를 읽었다. 반쪽으로 태어나도 현명해서 성공하고 예쁜 마누라까지 얻는. 그 동화를 보면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우리 땐 동화책을 많이 읽어 권선징악을 잘 배웠다. 돈을 뺏기 위해 손님들을 죽였던 주막집 주인이 삼형제를 낳아 다 장원급제했는데 문지방을 넘으면서 뇌진탕으로 다 죽은 이야기도 남에게 잘못하면 꼭 벌을 받는다는 교훈이 있다. 지금 보니 세쌍둥이 설화에서 나온 동화다. 요새 애들도 그런 책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럼 장애나 선악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가질 것이다.

현대는 산업화니 교통사고니 후천적 장애가 대부분이다. 내가 나와 다르다고 장애인을 바라보지만 다음 날은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 참담하다고 생각하면 타인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을 거둬야한다. 세상 누구도 장애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어릴 때 친구들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바뀐 건 없다. 도와주지는 못한다 해도 시선만은 거두는 의식이 생겼음 좋겠다. 친구들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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