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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19] 리뷰: 월간 객석 초청 피아니스트 전세윤 피아노 리사이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4.0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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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토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불 꺼진 객석에 무대에만 비친 조명, 마이크네 해설자 등의 거추장스러움을 제하고 혼자 위엄을 뿜으며 열려 있는 검은색 피아노 한대에만 비추는 조명, 검은색 턱시도의 피아니스트... 음악회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오랜만에 오직 음악만 주가 되어 올곧이 음악과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호연의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다. 클래식 대중화네, 팬덤 형성이네, 방송과 미디어를 통한 클래식 음악팬 확대와 노출이네, 타 장르와의 융합이네, 유튜브로 대중과의 만남이네, 조회수 구걸 등등 세상사의 온갖 소음에서 해방된 불변의 만고진리를 재확인한 정통 기악독주회! 레슨이네, 수업준비네, 생계 때문에, 체력이 달려서 등등의 자신의 부족함을 합리화하려는 온갖 핑계에서 벗어나 반복할 거 다 하면서 악보에 충실한 연주력으로 감동을 준 음악의 힘!

4월 3일 토요일 오후의 호연

전세윤 독주회에서 가장 해석상의 의견을 분분하게 하는 건 베토벤 6번 소나타다. 한 마디로 압축하면 내적 지향적이었다. 1악장 1주제의 선율 구조는 전형적인 고전파 특히 초기 베토벤의 A와 B라는 상반된 모티브의 대조다. 물음과 대답 사이 공간의 울림이 아주 짧은 찰나지만 진하게 짙드려진다. B라는 모티브가 발전된 선율은 아름답게 가공된다. 그래서 고전음악이라기보단 마치 베토벤 후기 소나타 치듯이 낭만파 피아노곡의 음색을 가미하듯, 특히나 2악장은 음색의 대조가 극명했다. 독일/오스트리아의 어느 선술집에서 농부의 춤 같던 3악장은 간혹 지나치게 무도풍이어서 푸가토의 구조가 쓰윽 지나간다.

드뷔시는 왜 이렇게 잘 치는 한국 남성 피아니스트가 많은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조성진의 출시 음반 중 드뷔시 <영상> 등이 수록된 드뷔시 녹음을 최고로 친다. 거구를 웅크리고 쳤던 박종해의 <달빛>에 숨이 멎을뻔하기도 했다. 이제 고작 25살 밖에 안된 전세윤의 드뷔시 전주곡집 1권 중 3개 중에서 유난히 6번 <눈 위의 발자국>은 베토벤에서 들려준 내적 지향성이 안으로 영글어 시공간에 접점을 찍었다. 눈 위에 발자국을 찍은 게 아닌 시간이라는 물리적 흐름에 소리로서 낙관을 찍은 무한대에 빠지고픈 흐름이었다.

뒤티와는 반전이었다. 축소지향적인 베토벤, 드뷔시와는 반대로 외향적인 기운이 뻗어나가더니 브람스의 3번 소나타에서는 젊은 브람스(공교롭게도 이 소나타를 작곡하고 발표했던 브람스가 지금의 전세윤과 동년배)의 재림이자 독수리의 비상이었다. 2악장의 깊은 Romance는 한편의 흑백영화와 같이 클라라에 대한 연모와 사모의 정, 스승인 슈만에 대한 추억이 점철되어 절로 깊은 탄식을 뱉어내게 만들었다. 이런 2악장만큼이나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라는 브람스를 상징하는 모토에 어울리는 악장이 있을까 할 만큼 브람스로 동화된 25살의 청춘이 아프다. 2악장을 들으니 전세윤이 연주하는 브람스의 후기 피아노곡집들이 듣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다. 브람스도 전세윤도 브람스가 평생 독신으로 살 거라는 걸 미리 3번 소나타의 2악장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알았던 거 같다. 3악장의 왼손도약은 브람스의 화풀이다. 어떻게 하나도 안 틀리고 연주할 수 있겠는가! 연주자에겐 마의 구간일터요 그걸 그대로 구현해내야 하는 연주자들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다. 4악장의 메아리는 2악장의 상기다. 그래서 중간에 스케르초가 함부로 끼워져 있는 셈. 그러고 보니 독일 음악에서 소나타의 전통은 이 곡이 마지막이구나.... 그 뒤로는 20세기에 들어서 알반 베르크의 것이 하나 있긴 하지만 브람스의 악마와 같은 교향곡 같은 이 곡 때문에 어찌 보면 소나타의 수명이 더욱 단축되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런 곡을 오늘 전세윤이 소화해냈다. 나이가 더 들고 공부를 더 한다고 지금 이상의 연주력이 나오는 건 아닐 정도로 브람스 소나타의 완성이었다. 그런데 왜 베토벤은 브람스같이 연주하지 않았을까?

앙코르로 스크리아빈의 <왼손을 위한 녹턴>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전세윤

2-30대 한국 남성 피아니스트들의 약진으로 전세윤 또한 그 밑의 세대는 어떻게 될지 앞으로의 한국 클래식 음악계 전체까지 전망하게 만든다. 이제는 콩쿠르 하나 우승 정도 따위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대중들도 화이자를 세게 맞아버려 별 반응을 안 보인다. 그게 현대 김태형, 조성진, 선우예권, 김선욱, 임동혁 등등의 한 손가락에 꼽기도 힘들 만큼 포진한 2-30대 남성 피아니스트의 약진으로 클래식 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다면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지고 상향 평준화되어버린 그 밑의 지금의 전세윤 세대는 다른 어떤 무엇으로 군계일학이 될는지....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 나이 대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음악적 완숙도, 최고 & 최상의 교육을 받고 미디어를 통한 실시간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는 지금의 피아니스트, 음악도들이 펼쳐갈 향후 음악계는 어찌해야 되는지 식자우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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