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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인문대 엄니', 학생들의 든든한 지지자 서길자 할머니 별세

권용
  • 입력 2021.03.3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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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인문대 근처에서 40년 넘게 노점을 운영했던 서길자 할머니가 향년 78세 일기로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사진=마을발전소 제공)

전남대 인문대 근처에서 40년 넘게 노점을 운영했던 서길자 할머니가 향년 78세 일기로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남대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지난 29일 교내 인문대학 앞 벤치에 '길거리 분향소'를 차리고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분향소 앞에는 국화꽃과 사과가 놓여져 있었고 이 사과는 이곳에서 장사를 이어온 할머니가 학생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할머니는 서른 셋의 나이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생계를 위해 인문대 인근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떡 등을 파는 먹거리 좌판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냥 먹거리만 파는 것이 아닌 배고픈 학생들을 만나면 그냥 먹을 것을 쥐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을 피해 학생들이 인근 대학 도서관 등에 숨자, 할머니는 몰래 주먹밥과 떡 등 먹을 것을 만들어 가져다주는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학생들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전남대 근처에 살았던 할머니는 1980년대 경찰에 쫓긴 학생들을 집에 숨겨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학생화 간부들을 위해 집에서 만든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으며, 할머니의 딸인 신성자씨(57)는 “아침밥상에 올라왔던 반찬이 저녁 때 보면 모두 없어지곤 해 어머니께 물으면 ‘반찬도 없이 밥 먹는 학생들에게 가져다 줬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지나는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그냥 건네기도 하면서 남모르게 어려운 학생들도 도왔던 서길자 할머니(사진=마을발전소 제공)

할머니는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인문대 벤치에서 사과나 귤, 도넛 등을 팔았다. 지나는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그냥 건네기도 하면서 남모르게 어려운 학생들도 도왔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 소식을 듣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전대의 돈을 모두 꺼내 쥐어주기도 했다.

전남대를 졸업한 장현규 마을발전소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풍물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할머니가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그냥 주기도 했고, 떡이나 간식 등도 챙겨주셨던 기억이 있다"면서 "할머니에게 장학금을 받았다는 학생들도 여럿"이라고 밝혔다. 전남대 학생들은 이런 할머니를 '인문대 엄니', 또는 '인벤(인문대벤치) 할머니' 등으로 불렀다.

이에 전남대측은 "할머니가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아 기부한 장학금 액수는 알기 어렵다. 학생들이나 학과에 직접 기부하는 경우는 파악이 어렵다"면서 "할머니가 대학본부를 통해 기부하지 않고 평상시 학생들을 많이 도와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0년 넘게 노점을 운영해온 할머니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2년 전 노점을 그만뒀다고 한다. 신씨는 "어머니가 돈 보다는 ‘학생들을 만나는 게 좋다’며 전남대에서 계속 장사를 해 오셨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많은 졸업생이 빈소에 찾아와 놀랐다"면서 "분향소에 놓인 사과는 어머니가 학생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전했다.

사진=마을발전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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