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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17] 리뷰: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의 '하멜 그리고 조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3.31 08:41
  • 수정 2021.04.0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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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화요일 예술의전당 IBK홀

음악가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연주력이다. 음악가는 음악과 연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알아주고 판단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적고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음악 외적인 요소가 꼭 개입된다. 대부분의 청중이 지인이 하니 그저 한번 오는 게 다인 국내 클래식 음악시장에서 음악회의 본질인 곡의 예술성과 연주력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건 애당초 과한 기대다. 기금을 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기획력과 서류작성능력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음악가들이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고 악기 잡아야 할 시간에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로 서류 쓰고 있다. 서류에서는 소리가 안 나기 때문에 연주력으로 어필할 수 없는 까닭에 푼돈이지만 기금을 따기 위해선 기획력이 중요하다. 넘치고 넘치는 서류 사이에 튀어야 하고 뭔가 색달라야 하고 찰나에 어필해야 한다. 음악 외적인 요소의 삽입은 언제부터인가 융복합이네 하이브리드네 동서양의 혼합이네 하면서 음악인이 아닌 비 음악, 타 분야인들로부터 선호되고 각광받더니 이젠 음악에 강요 아닌 강요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만 하고 살 수 없기 때문에 음악을 하기 위해 자신이 잘 못하고 배우지 않은 걸 해야 겨우 한번 무대에 설까 말까다. 그렇게 해서 연주라도 하면 다행이기 때문에...

3월 30일 IBK홀에서 열린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 연주회의 무대인사

3월 30일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의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의 바로크 어드벤처 <하멜 그리고 조선>은 16-17세기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수준 높은 연주로 만끽 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력의 무대였다. 하지만 상술한데로 바로크 곡들만 연주되면 안그래도 클래식 음악에 서툰 일반대중들에겐 더욱 낯설기 때문에 뭔가 다른 걸 가미해줘야 하는데 그래서 바로크 연주회에 약방의 감초같이 끼는게 '여행'이라는 컨셉이다. 그당시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하여 서양의 하멜이 동양의 조선과 조우한 것처럼 바로크와 한국의 국악이라는 고음악의 접촉점을 찾겠다는 컨셉이다. 백스크린으로 그 당시의 그림들까지 동시에 보여주었으니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의 고심과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하멜표류기를 배우의 모노드라마, 오디오북 같이 내용을 짜서 거기에 맞는 바로크 시대 고금의 명곡들을 선곡하여 가공하였다.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나연의 음악적 리드와 흡입력, 부드러움과 강함을 두루 갖춘 조화에 음악감독이자 하프시코드를 담당한 이은지와의 호흡은 감탄을 자아내어 모든걸 던져버리고 음악만 들어도 황홀할 지경이요 간만에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 다른 멤버들의 기량도 마찬가지로 뛰어났다. 그들에게 퍼포밍(Performing)까지 이끌어내어 하나의 공연으로 만들어낸 단합력은 크게 칭찬할만하다. 두 대의 리코더가 암보로 곡의 제목 같이 배우 주변을 배회하며 연주한 퍼셀의 <요정여왕>이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전체를 관망하면서 저음을 담당해준 첼로의 역할을 지대했다.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는 음악 연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자신들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고 드러낼 수 있으며 바로크 음악의 특화한 전문단체지만 이것만으로론 외면받으니 다른게 자꾸 들어가면서 훼방만 된다.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 멤버들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 멤버들

하멜은 억지스럽다. 조선이 싫다고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하멜표류기는 그저 동시대 바로크 음악의 원류인 서양을 연결하려는 매개에 불과하지 조선의 후예들 앞에서 펼쳐지는 이방인의 이야기에 공감과 동화가 안된다. "나는 네덜란드인이요"라고 청나라 사신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장면에선 무슨 독립투사의 대한민국 만세도 아니요 설경구의 "나 다시 돌아갈래"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있다 이끌려 나와 화급하게 꺼진 군중심리의 박수소리처럼 실소만 나온다. 국악은 이야기 뒤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진다. 계속 국악과 양악이 따로 연주되었고 혼합 앙상블도 없었다. <대풍류> 이후 국악은 꿔다만 보릿자루 신세요 타악기인 장구만 장단을 맞춘다. 국악기가 가미된 동서양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는 곡은 바로크에 없기 때문에 편곡을 맡기거나 작곡을 의뢰했어야 하는데 그러면 바로크 앙상블이란 정체성이 희석된다. 하멜 말고 차라리 제3의 가상의 인물로 판타지 역사물을 남긴다면? 그렇다면 이건 바로크 음악 연주회가 아닌 모노드라마가 되어 버려 판이 너무 커진다.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곡만 듣고 그 곡을 제대로 연주하게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다면.... 하멜이 주인공인가... 사무엘 샤이트, 니콜라 마테이스 등 듣도 보도 못한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주인공인가, 아님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가 주인공인가.... 결국 이런 현실은 절대적으로 경이롭지도 아름답지도 않고 속상하기만 하다. 다 떠나서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를 기억하고 음악감독 이은지와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나연의 다음 연주회를 기다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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