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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11] 리뷰: 박은경 작곡발표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3.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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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일신홀

며칠 전 카이스트에서 '자동재생악보'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SK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엔지니어와 식사를 했다. 음악인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라 캄파넬라>까지 칠 줄 아는 수준급의 연주자요 웬만한 음악인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석사는 스탠퍼드 대학교 CCRMA 컴퓨터를 전공했다고 하며 프랑스의 IRCAM (Institute for Research and Coordination in Acoustics/Music) 현대음악/음악 연구소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음향과 기술의 접목하려는 연구가 깊었으나 상용화에 고민하는 거 같았다. 결국 그 사람은 나 같은 직업 음악인이 아니니 생계와 음악적인 비즈니스 모델, 음악 생태계 창출에서는 다른 의견과 관심의 한계를 보이며 용두사미로 흐지부지하게 헤어졌다.

3월 19일 일신홀에서 열린 박은경 작곡발표회

3월 19일 금요일 일신홀에서 열린 작곡가 박은경의 작곡발표회도 타이틀처럼 시간과 공간, 텍스트라는 명제를 우열과 차등 없기 동등한 관계로 조명하면서 소리라는 객체에서 벗어나 다른 무엇인가로 변모하는 그 무언가를 나타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음향과 소리 그리고 텍스트의 탐구는 일련에 이루어지고 있는 작곡 발표회의 단골주제다. 화성, 선율, 리듬이라는 전통적인 범주에서의 작곡이 아닌 소리, 시간, 인성이라는 다른 관점에서의 3가지 요소로서의 탐구와 작곡으로 관심사와 방향이 일련의 학자들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연구와 학습이 깊으면 깊어질수록 세분화되고 다차원적이고 다방향적이면서 쪼개져 일반적인 인식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음악적 아이디어, 모티브라고 칭하는 그걸 공간, 시간에서 인식하면서 발전시키는 게 전통적인 작곡의 개념이요 방법이었으면 그걸 비틀고 재배열하여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작업의 현대음악의 한 범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처음의 황유원 시인의 리듬은 시인과 시에 대한 필자의 무지의 소치로 넘어가려 하였으나 웬만큼 안다고 자부한 베토벤에서도 베토벤의 모티브 발전 작법을 캐치하지 못한 필자의 부족함만을 더욱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가야금을 솔로악기로 사용한 작품에서는 분명 작곡가의 위트와 활발함이 살아 있고 국악기를 사용해서 착각할 수 있겠으나 구전동화 같은 해학도 있었다. 그걸 좀 더 직접적으로 접근해 심각진지가 아닌 박장대소가 터지는 신명으로 재바꿈할 요인이 적지만 분명히 있었지만 수줍고 드러내지 않고 의도적으로 피하고 억누르려는 거 같았다. 예전의 어떤 가곡 발표회에서 한국 생존 작곡가가 19세기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유명한 시를 가사로 하여 곡을 발표하는 걸 보고 왜 한국 사람이 자국의 언어를 놔두고 외국의 언어로 곡을 쓰냐는 평을 썼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는데 이날의 헤르만 헤세는 같은 독일어지만 전달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건 언어소통과 의미의 문제가 아닌 분절과 해체이기 때문에 쌍방향 소통을 통한 공감과 이해가 아닌 음악회의 제목처럼 텍스트 처리와 거기서 오는 소리로서의 시간에서의 환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박은경 작곡발표회 프로그램

엊그제는 모 대학에서 24년간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한 피아니스트와 식사를 하면서 그녀의 토로를 들었다. 자신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현재 피아니스트의 테크닉과 실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고 테크닉적으로 거의 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터넷, 유튜브 등의 플랫폼으로 정보 공유와 지식 습득이 용이해졌지만 거기에 비례해 내용과 본질은 따라오지 못한다는 고민인데 그럼 4-50대 피아니스트로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사람은 누가 있냐고 반문하였다. 작곡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격물치지를 통한 기술과 연구의 현실적인 적용과 사회환원, 이게 AI와 로보트를 만들어 세상에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선보이는 물리학자나 테크닉을 초월하여 인간미와 개성이 살아 있는 음악연주를 해야하는 연주자들 사이에 음악 실존의 진정한 의미로 남으니까.

마지막 곡 <시간의 순환>을 마치고 인사하는 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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