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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할미의 질문

천원석 칼럼니스트
  • 입력 2021.02.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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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변방에 위치하며 소수의 애호가들에 의해서만 향유되던 SF와 환타지 작품이 요즈음 문학과 영화 장르에서 큰 흐름을 이루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나 젊은층에게는 활자보다는 영상이, 순수 문학보다는 SF와 환타지가 더 영향력 있는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싶다. SF로는 무엇보다 스타워즈시리즈와 함께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베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등)’와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 시리즈(아이언맨, 토르, 헐크, 스파이더 맨 등)’가 회를 거듭해가며 식지 않는 인기를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국산 영화 승리호가 넷플렉스에서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 28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환타지로는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조엔 K. 롤링의 헤리포터시리즈를 비롯하여,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둔 절대반지를 둘러싼 선과 악의 싸움을 다룬 반지의 제왕’ 3부작 및 호빗시리즈가 먼저는 책으로, 이후 영화로 만들어져 지금도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우리의 안방을 찾는 단골 손님이 되었다.

  이처럼 SF와 환타지가 오늘날 순수 문학의 자리를 위협하며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으로서의 소설은 거시적으로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미시적으로는 해당 시대를 절단하여 그 시대의 속성과 그 시대에 속한 인간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담겨진 시대정신, 혹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 작품들이 만들어졌던 시대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 오늘날에도 닿게 되었을 때, 그것은 이른바 고전이라는 이름하에 현대인들에게도 읽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전의 사례로는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토스트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톨스토이의 부활등이 위에서 제기한 그런 작업을 수행한 작품이란 점에서 별 이견들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 국내 작품으로는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등이 향후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처럼 시대를 관통하고 아우르는 시대정신을 담는 소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반면 많은 소설들이 이제는 이 세상사의 미시적인 면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러한 현상을 단지 현대의 작가들의 필력과 시대의 문제의식을 향한 치열함이 예전의 작가들보다 못해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신 그 원인을 현대 사회가 이제 이른바 순수 문학이라는 틀로는 담아낼 수 없게끔 다극화되고 복잡해졌다는 데서 찾아야 할 듯하다. 그런 면에서 현실성이나 개연성이라는 잣대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인류의 미래의 모습과 나아갈 길에 대해 그 서사를 제한없이 펼칠 수 있는 SF와 환타지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tvN '도깨비'에서. 구글에서 인용.
tvN '도깨비'에서. 구글에서 인용.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SF보다는 환타지 작품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듯하다. 특히나 역사와 환타지 혹은 멜로와 환타지를 결합한 작품이 특히 인기가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몇 년 전 흥행몰이에 성공한 공유와 김고은이 열연했던 도깨비이다. 도깨비의 중반부 가운데 한 장면이다. 주인공 은탁이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 가족들에 둘러 싸여 축하를 받는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어색하게 앉아 있는 은탁. 그런데 잠시 후 빨간 원피스를 입은 팔등신의 삼신 할미가 나타나 은탁이에게 꽃다발을 안기며 축하해 준다. 그런 후 삼신 할미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은탁이를 무시하고 차별했던 담임 선생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히 한마디를 던진다. “아가, 좀 더 좋은 스승이 될 수 는 없었니?” 삼신 할미가 던진 그 말에 담임 선생은 내면에서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끝내 오열하고 만다. 아마 이후 선생은 반성하고 좋은 스승이 되지 않았을까?

  이쯤에서 혼자 펼쳐보는 환타지 한자락. 이 땅 곳곳에 삼신 할미가 나타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아가, 좀 더 공정한 검찰총장이 될 수는 없었니?”, “아가, 기레기가 아닌 기자가 될 수는 없었니?”, “아가, 사람을 우선하는 사업가는 될 수 없었니?”, “아가, 당파보다는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 될 수는 없었니?” 이에 모두 일동 통곡. , 너무 유치찬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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