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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5-14 / 저녁에

김홍성
  • 입력 2021.02.02 08:46
  • 수정 2021.02.0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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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늦게 연락을 주었는지 어제는 감꽃이 지기 시작하더니

초가을 바람이 벌써 한차례 비를 몰고 가는구나

저녁엔 스산해서 한 잔 소주로 목을 달랬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놓아두고

그렇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 저녁을

꾸려가야 하는 것인가

연락은 한차례 내리는 비처럼 왔다 갔다

감이 발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 저녁에 全文

어제 밤에는 K와 전화로 긴 얘기를 했다. 파주 지역 가톨릭 연령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작년 연말부터 어제까지 여덟 명의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많은 노인들이 사망해서 병원마다 영안실이 만원이더라는 얘기도 나왔다. 연령회가 하는 일은 주로 ‘죽은 자를 위한 기도’지만 영안실까지 섭외한다는 건 어제 알았다.

K에 대해서는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적음 형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당시 월 50만 원가량의 고정 수입이 생기도록 도와 준 사람이다. 그는 내가 적음 형에 대해 쓰고 있다니까 논픽션을 쓰는 줄 알고 논픽션은 철저한 조사와 근거를 바탕으로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내가 쓰는 글은 논픽션이 아니라 소소한 인상기라고 했더니 K는 조금 안도하는 듯 적음 형을 회고했다.

올해(*2018년) 60이 된 K의 기억력은 나보다 나았다. 적음 형이 어려울 때마다 찾아가 도와주면서 마지막까지 접촉했으므로 적음 형의 속사정도 잘 알았다. 사골을 사다가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때고 푹 고아서 여러 날 장복했던 얘기와 적음 형은 전기장판을 깔고 자는데 구들방 좋아하는 그를 위하여 버섯 작목반에서 폐목이 된 참나무를 한 차나 사다 놓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정부 기관에서 적음 형에게 의치(틀니)를 해 준 일도 상기했다.

나는 적음 형이 그렇게 오라는데도 안 가고 결국 때를 놓친 일이 후회되었다. K는 술을 여러 해 끊었을 때니까 맑은 정신이었고 적음 형도 술 끊었다는 후배 앞에서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특히 고관절 부상 때는 약을 먹고 있었으므로 최대한 술을 자제했다. 두 사람은 사골 국에 밥을 말아 저녁을 먹고 나면 일찌감치 드러누웠나 보았다.

적음 형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K도 한동안 헷갈렸다. K가 ‘4~5년 쯤 됐을 거야’ 라고 하기에 ‘4~5년 전이면 내가 이 산에 들어온 이후인데 그보다 먼저 아닌가?’ 라고 했다. 9시 못 되어서 전화를 끊고 연탄을 갈고 오니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잘 헤아려 보니 적음 형은 2011년 추석 언저리에 사망했다는 메시지였다.

2011년은 내가 아직 춘천에 살고 있을 때였다. K는 추석 지나고 한 달이 되도록 적음 형의 전화가 없어서 궁금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고 조만간 일소암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에 10월 23일이 되었다. 봉화경찰서 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체는 사망한 지 최소한 보름이 넘었다고 했다. 누구는 스무 날은 되었을 거라고 했다. 누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사망 시점이 추석 무렵 아니겠냐고 했다. 시신의 부패가 그만큼 심했다는 얘기였다. 평소 적음 형을 따르던 문창과 후배 세 명과 ‘인사동 사람들’이 봉화 읍내의 한 병원으로 조문을 갔다. 유족들이 있었지만 빈소는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앰뷸런스에 실린 시신은 부검을 위해 대전으로 옮겨졌다. 부검 후에 바로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숨구멍이 바늘귀처럼 조그맣게 뚫려 있네

그리로 내 혼이

빠져나가고 있네

이제

비바람 불고

나뭇잎 떨어지겠네

그대

따스하게 자고

따스하게 일어나길

바라겠네

-숨구멍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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