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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문학관 탐방기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1.22 10:03
  • 수정 2021.01.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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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왠지 방학동에 갈때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그 동네를 걸으며 맞는 비는 평온하지만 왠지 모르게 애잔하다. 근심이 없다는 뜻의 무수(無愁)골이 에워싸면서 세상의 모든 소리와 근심을 살펴본다는 관세음보살의 다른 호칭인 원통(圓通)에서 이름을 딴 방학능선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원통사를 찍고 내려오면 연산군의 묘가 쓸쓸히 자리를 잡고 있는 그곳, 거기에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인이었던 김수영을 기리는 문학관에 며칠을 벼르고 다녀온 그날도 겨울비가 내렸다.

도봉구 해등로 32길 80번지에 위치한 김수영문학관
도봉구 해등로 32길 80번지에 위치한 김수영문학관

코로나 3차 대유행으로 한달여를 휴장했던 김수영문학관이 거리두기 완화로 부분 개장을 했단 소식을 듣고 외출한 오후엔 우산을 챙겨오지 않아 집에 다시 갈 정도로 여정의 발을 땜과 동시에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상 4층과 지하와 옥상정원 중 1층 전시실만 문을 열었음에도 김수영의 숨결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2층은 김수영 시인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작업하던 탁자들, 작가로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서재, 작업실 같은 은말한 공간을 엿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1층의 문헌적인 시와 산문의 육필원고만으로도 생생하게 김수영의 혼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적 지식인 김수영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김수영문학관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적 지식인 김수영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김수영문학관

문학관 탐방의 가장 큰 성과는 그동안 무지해서 몰랐던 김수영이라는 작가, 사상가를 알게 된 점이다. <풀>이나 <폭포>와 같은 고작 몇 편 읽어본 게 다였는데 김수영은 모더니스트이자 리얼리스트로서 너무 앞서간 나머지 한때 ‘불온’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시인의 시인’으로서 시대를 관통하며 서거한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앞으로도 빛날 살아 숨 쉬는 정신을 남긴 사람이었다.

김수영의 대표작인 '풀'이 전시실에 벽에 적혀있다.
김수영의 대표작인 '풀'이 전시실 벽에 적혀있다.

1층 전시관 벽에 걸려 있는 그의 산문에서 발췌한 문장들은 소위 말하는 먹물 지식인에 대한 일갈이자 날카로운 관점을 담은 담론, 시대정신, 비평이 번듯이는 21세기, 코로나로 신음하는 현 세태에 백신과 같은 가르침이자 예언이었다. 수필, 시사 에세이, 문학론과 시론, 시작노트, 편지, 일기, 시월평, 미완성 소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산문집은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만큼 새롭고 신선한다. 예언자적 지성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가식이 전혀 없고 유머가 철철 넘친다. 그건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 방식과 직결"된다는 김수영 문학론의 직결적인 반영이다. 외국에나 갔다 온 영어 나부랭이나 씨부리는 시인에게 후한 점수는 주는 문단의 풍토, 문화사대주의와 미 8군 납품을 내세운 간장 광고에서 한걸음 나아가 미국 배우를 흉내 낸 우리 영화배우의 연기를 개탄하고 사이비 교육자들의 횡포와 착취해 대한 당국의 방임엔 문화 사대주의에 치를 떠는 내 모습을 보는 거 같고 1960년대의 버스와 택시 승객들이 '전통가요'를 즐기는 모습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트로트 타령의 변함없는 작태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문화의 본질에 대한 김수영의 언급

갈 때는 무수골을 넘어 호젓하게 둘레길을 걸었다면 굉장히 날 선 감정의 김수영 작가정신을 만나니 흥분되었다. 어서 빨리 달려가서 김수영 산문집과 관련 서적들을 사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문학관 앞에 도봉마을버스6번을 타고 쌍문역으로 가는 길에는 김수영의 흔적들이 귓가에 생생히 울리고 눈앞에 어른거려 아찔할 지경이었다. 문화의 본질을 추구했고 현실사회에서 문화의 기능에 대해 열띤 논쟁을 펼쳤던 김수영은 불편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인간에 대해 성찰하고 되돌아보게 만든다. 김수영 산문집을 읽고 나서 한번 다시 찾아봐야겠다. 그때도 또 비가 내리려나....

필자의 서재에 꽂혀 있는 김수영의 시를 수록한 전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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