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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5-8 / 어머니

김홍성
  • 입력 2021.02.08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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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이나 갱생원에 갇혀 있었는데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은 적음 형이 승적을 박탈당했거나 천애 고아가 됐거나 속가의 피붙이와 절연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적음 형은 15세에 절에 갔다. 절에 가기 전날, 어머니가 쇠고기 넣고끓여준 미역국을 너무 많이 먹고 설사를 했다. 1년 뒤 수계식에 어머니가 찾아와서 대견해 하였고, 다시 반 년 뒤에 고암사로 찾아와서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가 책에 나온다. 그 대목들 말고는 어머니나 형제에 대한 특별한 얘기가 없다.

말 하지는 않았지만 적음 형은 늘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여인숙 벽에 이마를 대고 흐느꼈던 그 새벽에 적음 형은 꿈꾸다 깨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함께 처음 절을 찾아가던 꿈을. 혹은 어머니가 찾아온 날의 꿈을.

둥둥둥 둥둥둥 가슴 울리는 발자국 소리

충만함으로 살아

기꺼이 나는 살아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새겨들으니

오지 않을 듯, 그러나

분명히 찾아올 황홀한 황홀한 발자국 소리

‘저문 날의 목판화’ 첫 페이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제목 없이, 자서보다 먼저 나온 이 운문은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릴 적 심정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적음 형의 책 ‘저문 날의 목판화’에 의하면 어머니가 세 번 째 찾아왔을 때 적음 형은 16세의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을 하고 있었다. 조석 예불은 기본이고, 행자 한 명을 데리고 부엌일을 했다. 부엌에 땔 나무와 나물을 하러 다녔다. 때로는 탁발도 다녔다. 적음 형의 어머니는 아들의 행색을 보고 고생이 심한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에 가자고 한다. 집에 가서 다시 학교에 다니자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망설였다. 왜 망설였는지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있다. 어머니가 집에 가자는데도 적음 형이 망설였던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물어봤던 기억이 없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번 중이면 영원한 중이라는 말도 있을 법하다. 적음 형이 갈 곳은 번번이 산중의 절이었다. 황폐해진 몸을 눕힐 곳은 거기 밖에 없었다. 도반에게 찾아가 뒷방 스님이 되기도 했고. 대중들의 눈총이 따가워 못 견디면 대처승 절에 방을 얻어 염불하며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비라도 생기면 다시 서울로 왔다. 술친구들이 있는 흑석동, 청파동, 보문동, 광화문, 인사동, 청진동, 안국동, 삼청동의 주점을 순회하다가 그리운 얼굴이 보이면 두 손을 쳐들고 ‘사람 살려~ ’하면서 클클클 웃었다. 그런 적음 형을 내가 얼싸 안아준 적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추석을 열흘 쯤 앞둔 어느 날, 나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 수중엔 차비로 받은 기천원이 있을 뿐이었다. / 불알 두 쪽. 그렇다. 불알 두 쪽만 차고 무작정 상경한 것이다. / 허나 사내대장부가 무엇을 근심하랴. / 몸에 밴 야생의 기를 죽이고 부딪쳐 보자. / 그 어디엔들 내 머물 곳 없으리. / 그 어디엔들 내 오척단구 머물 곳 없으리.

- 저문 날의 목판화 21 쪽에서 발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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