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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15 / 요상한 플라스틱 안경

김홍성
  • 입력 2021.01.0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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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였는지 일반 시내 버스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비좁은 버스에 옹기종기 낑겨 앉아 노래를 부르며 소풍을 떠났다첫 노래는 교가였다. 앞부분은 기억이 안 난다. 뒷부분, 그러니까 후렴만 기억난다.

 

혜화, 혜화, 혜화, 하늘과 땅과 나라의 은혜로 우리는 변함이 없구한다.”

 

없구한다가 무슨 뜻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없으련다라는 뜻일 것이다. 김밥과 사이다와 삶은 계란을 가지고(어떤 애들의 가방에는 바나나도 있었다) 학교 밖으로 멀리 나간다는 것만으로 들떠서 아이들은 자못 씩씩하게 노래했다. 교가보다 더욱 씩씩하게 불렀던 노래는 맹호부대노래였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멋도 모르고 들떠서 전쟁터를 따라가겠다는 노래를 하며 소풍을 가던 그 날은 비가 질척하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심드렁했지만 기분을 내느라고 나도 누구 못지않게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혜화초등학교에 전해져 온다는 전설에 의하면, 학교의 터전을 닦을 때 용인지 이무기인지 뭐 그런 상서로운 생명체를 죽이는 바람에 혜화가 소풍을 갈 때마다 비가 온다는 거였다. 나중에 들으니 거의 모든 학교에 이런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소풍을 어디로 갔는지는 잊었는데, 소풍 가다가 들린 공장은 잊을 수 없다. 영등포나 오류동 쯤이었을 것 같다. 버스가 국도에서 벗어나 밭 사이로 난 질척질척한 길로 접어들더니 두엄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났다. 우리가 내린 곳은 플라스틱으로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 마당이었다.

공장 안에 들어서니 화공 약품 냄새가 너무 심해서 두엄 썩는 냄새는 싹 잊을 정도였다. 색색가지 조화들이 있었고, 안경테 밑에 딸기코와 수염을 단 약장수 안경도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 요상한 안경을 하나씩 사서 꼈다.

 

나도 하나 사서 꼈지만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금방 어지러워져서 바로 벗고 물러 달라고 했는데 다른 것을 껴보라고 하여 다른 것을 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몇 번 그러고 나니 속이 미식미식하고 머리가 아파서 공장 밖으로 나왔다. 화공 약품 냄새보다는 차라리 두엄 냄새가 낫지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요상한 안경에서 아무런 냄새도 못 맡은 것인지 그 안경을 끼고서 버스에 올라와서 깔깔댔다. 어떤 아이들은 훅 불면 돼지꼬리 같은 것이 주르륵 앞으로 펼쳐지고 불기를 멈추면 다시 동그랗게 말려드는 '굴러대라는 것을 불면서 즐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소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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