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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10 / 버스회수권 몇 장

김홍성
  • 입력 2021.01.0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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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이 되자 학생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한 반에 백 명 넘게 몰아넣고도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2부제 수업을 했다. 1반부터 6반까지는 오전반, 6반부터 13반까지는 오후반 하는 식이었다.

학교 밖에서 과외도 했다. 학교가 오전반일 때는 오후에 과외, 학교가 오후반일 때는 오전에 과외를 했다. 다른 과외 선생은 모르겠지만 우리 과외 선생은 담임선생이 추천해 주었다. 첫 과외 공부 방은 경신고등학교 올라가는 언덕 꼭대기의 허름한 집이었다.

과외 선생 한 명에 열 명 쯤 되는 남녀 학생 애들이 모여 앉아 수련장 문제를 풀었다. 과목별 예상 시험 문제를 인쇄하여 다발로 묶어 놓은 수련장의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 후 선생과 함께 검토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과외 공부였다.

과외 선생은 시험 문제를 낸 출제자가 숨겨 놓은 각종 트릭에 걸리지 않도록 문제를 잘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 아닌 것에 동그라미인지, 맞는 것에 동그라미인지를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답을 도저히 모를 때에는 가장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항이 답일 확률이 높다고 가르쳤다.

우리 과외 선생은 한국전쟁 때 소위를 달고 소대장으로 참전하여 대위로 전역했다는데, 가끔 전쟁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이를테면, 개성 쪽 최전방에서 서울 무악재까지 약 1백리 국도를 완전무장한 채 구보로 퇴각하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든지, 고지 탈환을 위해 앞장서서 돌격하는 소대장에게 날아오는 총알은 쏘위~ 쏘위~‘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날아온다든지 하는 이야기 등이었다.

학교에서의 수업도 과외 공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날마다 문제지만 풀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 대비한 모의고사가 있었고, 입학 원서를 제출할 중학교를 지정해 주기 위한 배치 고사가 있었다. 배치 고사 전날에는 남학생들만 과외 공부방에 남아서 과외 선생과 함께 밤을 새기도 했다.

그 때도 요즘 못지않게 입시 경쟁이 치열했다. 치마 바람도 심했다. 과외 공부방에서 멀지 않은 혜화동이나 명륜동에 사는 엄마들은 야식을 챙겨서 머리에 이고 오기도 했다.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을 한 타교 출신 아이들이 혜화로 전학하여 6학년을 다시 다니기도 했다. 그 중 몇 몇은 나중에 중학교에서 만났다.

H는 돈암을 졸업한 후에 중학교 입시에 낙방하자 혜화에 다시 들어와서 6학년을 다녔다. P는 정릉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다시 혜화를 졸업했다. H는 몰매를 맞게 된 나를 구해 준 일이 있다.

모의고사 시험지 채점은 교사가 직접 하지 않고 앞뒤에 앉은 애들끼리 시험지를 바꿔서 교사가 불러 주는 해답에 따라 채점을 했기에 나는 내 답안지를 채점하는 애를 매수하여 상위 5 퍼센트 안에 드는 성적을 받은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다. 100 여 명 중 50 등을 못 넘던 애가 갑자기 3등을 하니 수상하게 여긴 애들이 내 답안지를 채점했던 애를 다그쳐서 자백을 받아 냈다.

그 때 내 수법은 답안지에 이름만 써서 앞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앞에 앉아 있던 그 애는 선생이 불러 주는 해답에 따라 동그라미를 쳐서 백 점을 만들기도 하고, 한 문제만 틀리게 해서 98점을 만들기도 했다.

대가는 버스 회수권 몇 장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나는 수십 명의 성난 아이들에게 떠밀려 변소 뒤의 담벼락 밑에 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 때 H가 혜성 같이 나타나더니 내 앞에 서서 아이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 이 놈들아. 그만 둬. 성적이 뭔데 성적 가지고 지랄들이냐?”

나는 H가 우리 반이었다는 것도 중학교에 가서야 알았다. 나보다 두 살 많으며, 당시로서는 덩지도 컸으니 조무래기들 눈에는 형님처럼 보였을 것이다. H는 나에게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마!” 라고 한 마디 하고는 아이들을 몰고 가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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