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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탐방기: 갤러리 너트(Gallery KNOT)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24 08:41
  • 수정 2020.12.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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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교대역 13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고층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갤러리. 금싸라기 같은 강남의 한복판 유동인구도 많은 대로변의 한 가운데 위치한 갤러리 너트는 지나다니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화랑이 밀집된 인사동이나 청담동, 이태원도 아닌 서초중앙로의 사무실이 밀집된 상업 지구, 거기에 법조 단지에 있는 갤러리의 운영자는 분명 금전적인 이윤보다 더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일 거 같다. 안 그랬으면 임대업으로 돈 버는데 급급하지 미술, 그것도 난해한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전시하는 갤러리를 이런 데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규모로 오픈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교대역 13번 출구에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갤러리 너트(서초중앙로108)

너트?(Nut)? 나사다. 너트의 다른 표기(Knot)는 매듭이란 단어다. 나사든 매듭이든 뭔가 조이고 묶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우리 말로 하면 발음이 똑같다. 얽히고 설킨 매듭과도 같은 현대미술의 난제를 함께 풀어가며 누구나 쉽게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예술공간을 지향한 이름이 갤러리 너트라고 한다. 고대 국가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봉인한 뒤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두며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왕이 되니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 이후 수많은 영웅들이 매듭을 푸는데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수백 년 뒤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나 이 매듭을 풀고 고르디우스의 말대로 아시아를 정복해서 왕이 되었다. 우리는 이미 알렉산더 대왕의 고사를 통해 그가 어떻게 매듭을 풀었는지 잘 안다! 몇 날 몇 밤을 지새워도 풀지 못하는 복잡하고 단단한 너트를 그냥 단 칼로 한방에 잘라버렸다. 여기서 파생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란 뜻으로 너트가 현재 쓰인다.

갤러리 너트의 운영철학

너트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끄덕 해지며 절묘한 갤러리 네이밍이라고 탄복했다. 자칭 대가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현학적이고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남발하고 현대미술이네 행위예술이네 하면서 뭔가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깊이 있는 예술세계를 창출하려고 갖은 눈속임과 사기를 행할 때, 그래서 왠지 현대미술(음악이든 건축이든 문학이든 다 도긴개긴이긴 하지만)이 일반인과 가까이하고 같이 소통하고 눈높이를 맞춰가면서 호흡하는 게 아닌 문화사대주의와 권위에 빠져 우열 의식으로 점철된 그 역겨운 작태를 풀기 위해서 백날 모여 말들의 향연인 토론을 하고 서로의 작품세계를 존중해 준다는 의미에서 끼리끼리 서로 추켜세워주고 박수 쳐주고 진정 알지도 못하지만 아는체하는 그러면서 견고한 자신들만의 카르텔과 그들만의 리그에서 활개치는 게 아닌 진정한 대중과의 소통과 생활 속의 예술을 성사시키는 단 한 방법은 알렉산더 대왕처럼 단 한 합으로 매듭을 잘라내고 부셔야 한다는 지령이다. 자신의 독창회 프로그램에 단 한 곡의 한국 가곡도 삽입하지 않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 독일 가곡으로 도배를 한 다음, 러시아 키릴문자로 작곡가명과 가사까지 적어 놓으면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꾀하고 관객과 동행하겠다는 그 가식, 세상의 아픔과 시대적 소명에 앞장서는 전위예술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속내는 학계와 선배 교수들의 인정을 받아 아카데미에 속하면서 취직을 하며 시집은 대기업 회사원 또는 법조인 아니면 안 가겠다는 모순, 그리고 우리 주변에 너무나 자주 보이는 내로남불까지 말로 해선 안 고쳐지면 평생을 가도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만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망치로 파쇄해야 하고 꽉 끼인 나사는 드라이버로 돌려 풀어야 된다.

너트프라이즈 선정작가 이시형의 '행동의 N번째 동기'

필자가 방문한 21일 월요일은 너트프라이즈를 받은 광주 출신 작가 이시형의 개인전 <행동의 N 번째 동기> (올해 N으로 시작하는 큰 사회적 스캔들이 연상되 N자라는 알파벳의 왠지 강렬하다.) 끝날이었다. 22일부터 28일, 7일 동안은 박지원 작가의 <비뚤어진 하모니>가 열린다. 12월 내내 다채롭고 영감을 자극하며 우리 시대 젊은 작가들이 어떻게 코로나 시대에 세상을 바라보는가 관조할 수 있는 좋은 기획전이 지속되고 있다. 세상은 지금 분 초 단위로 올라오는 정보의 홍수요 내 마음의 고요와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선 외부에서의 자극이 너무나 거세고 방해 거리가 넘친다. 이시형의 말마따나 선택할 지표가 너무 많아 혼란스러워 뭔가 정이고 사인지 구분도 안 간다. 선택할게 많아 결정 장애가 된다면 역시나 방법은 하나다! 쾌도난마! 단 칼에 내려치는 거다. 행동하는 거다. 다시 갤러리 너트에 방문, 이번에는 박지원의 작품을 감상해 봐야겠다. 아직 2021년의 연간 전시 스케줄이 안 나온 거 같지만 뭐 상관없다. 하루에도 몇 번은 왔다 갔다 코앞이지 않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생활 반경에 문화생활을 넘치고 넘친다. 가지도 않고 풀지도 않으면서 푸념하고 불만을 터트리지 말고 발품 파는 행위로 현장에 가는 게 문제 해결의 답인 경우가 많다.

지상 2층, 지하1층 규모의 갤러리 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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