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조선민족이자 옛날 연나라 사람인 만(滿)이 본향 산동성 인근 산서성으로 돌아와 상투를 틀고 새로운 조선, (위)만(滿) 조선을 세웠다고 하면 무리인가?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0.12.24 00: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기 조선열전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1) 만(滿) 이전 조선의 역사는 서술하지 않았다. 만(滿) 이전에 조선이 있었는가?

2) 만(滿)이 왕이 되어 도읍한 왕험은 어디일까?

3) 만(滿)의 성은 무엇인가? “위”인지 알 수 없다.

 

전해지는 역사서중 집필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사마천의 사기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기원전 109년에서 기원전 91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한다. 편의상 기원전 100년이라고 하자.

 

1)사기 조선열전은 “만(滿)이 조선의 왕이 되었다.”로 시작한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朝鮮王 滿이라는 사람은 옛날 燕나라 사람이다.” 만(滿)은 기원전 190년대 인물로 추정된다.

 

만(滿)은 연나라 왕 노관이 흉노로 망명하자 (연나라에서) 동쪽으로 달아나, 패수를 건너, 옛날 진(秦)나라 땅에 살면서, ‘진번조선만이’를 복속하여 거느리고 옛날 연나라, 제나라 망명자를 규합하여 (그들의) 왕이 되어 도읍을 왕험에 정했다.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爲其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屬燕.

燕王 盧綰 反, 入 匈奴, 滿 亡命, 聚黨千餘人, 魋 結 蠻夷服 而 東走 出塞, 渡浿水, 居 秦故空地 上下鄣,

稍 役屬 眞番朝鮮 蠻夷 及 故燕 齊 亡命者王之都 王險.

 

조선열전 안에 써 놓았으니 조선의 역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만(滿)이 연나라로부터 독립한 조선의 첫 왕인 것처럼 서술한 느낌이다. 연나라가온전할 때 진번(과)조선을 속국으로 하여 관리를 두고 관청과 요새를 두었다. 라는 기록으로 조선은 오래 전부터 연나라의 속국이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

 

연이은 내용에 진번조선만이(眞番朝鮮蠻夷)가 있어 만(滿) 이전에 조선이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만(滿) 이전의 조선역사는 왜 서술하지 않았는가?

사마천이 기원전 100년 경에 사기를 쓸 때 만(滿) (기원전 190년 대 인물) 이외의 조선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어서일까?

 

2-1) 만(滿) 이 도읍한 왕험은 요동 옛요새를 지나 패수를 건너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제나라 망명자들이 많이 몰려 드니 제나라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

제나라는 현재 산동성 제남시 일대가 도읍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옛날 연나라에서 망명자들이 많이 왔다고 하는데 진나라가 연나라를 없앴으니 옛날 연나라는 어디일까?

사기를 집필하던 기원전 100년경에는 연나라는 없었던 것이다!

 

2-2 ) 옛날 연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사마천의 사기 권33 한신노관열전을 보자.

흉노와 호(胡)를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노관은 한고조에 의해 연나라 왕이 되었으나 이후 흉노로 도망간다.

이 때 연나라는 북서로 흉노와 맞붙어 있었고 동남으로 한나라와 붙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06년 초나라 항우가 진나라를 멸하고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를 멸한 것은 기원전 202년 (한 고조 5년)이다.

기원전 202년에 연나라를 공략하여 당시 연나라 왕 장도를 사로잡고 노관이 연나라 왕이 된다.

노관은 후일 흉노로 도망하여 동호 (東胡)의 왕이 되었다.

동호에서 만이(蠻夷)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노관이 흉노로 간 이후에 (연나라가 망한 후에)  만(滿)이 요동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왕험에 자리잡았고 진번조선만이(眞番朝鮮蠻夷)를 많이 이끌었다고 했다.

조선열전에서도, 한신노관열전에서도 만이가 나온다.

조선과 만이를 구분하여 기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과 만이를 구분하였으니 진번과 조선도 구분하여 기술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마천은 조선열전을 쓰면서 진번열전이나 만이열전은 왜 쓰지 않았을까? 조선과 진번과 만이는 같은 민족 아닌가?

 

요동 옛 요새를 나와서 패수(강)을 건너고 옛날 연나라 (지금의 서안시 서북쪽)와 제나라 (제남시)에서 가까운 만(滿) 의 도읍지 왕험은 어디일까?

 

2-3) 사마천의 사기 연 소공 세가(燕召公世家)를 보자.

“소공(召公) 석(奭)은 주(周)나라 왕실과 같은 성인 희씨(姬氏)이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킨 후에, 소공을 북연(北燕) 지역의 제후에 봉했다. 성왕(成王. 주나라 2대왕. 주무왕이 역성혁명후 2년만에 사망) 때 소공은 삼공(三公) 중의 하나인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고, 섬(陝)의 서쪽 지역을 관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쪽 지역은 주공(周公)이 관할하게 되었다”

 

북연지역의 제후로 소공을 임명했는데 제목은 연나라 소공 족보 (세가)이다. 북연이 있으니 남연이 당연히 있겠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사마천은 북연을 연나라라고 쓴 것은 확실하다.

소공은 섬서를 다스리는데 섬서가 연나라이며 지금 서안 일대와 서안의 서쪽이다. 기원전 330년경 (맹자의 생존 추정연대 한가운데이다)에 연나라는 제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연소공세가만 보면 조, 진, 연, 제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기원전 222년(경) 연나라왕 희(燕王喜) 33년, 진나라가 요동지역을 점령해 연왕 희를 사로잡고 멸망시켰다.

이 때의 요동은 당연히 2020년 현재 요하 유역의 요동이 아님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2-4) 사기 권33 한신노관열전에서는 노관이 한 고조 5년 (기원전 202년 경)에 연나라를 공략하여 당시 연나라 왕 장도를 사로잡고 노관이 연나라 왕이 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연소공세가와 균형을 맞추어 해석하면 진나라에 의해서 멸망된 연나라 지역에 진나라 멸망 기원전 202년 즈음하여 옛날 연나라 사람들이 나라 형태를 취한 것이라고 본다.

희씨(姬氏)성 연나라는 기원전 222년경에 멸망했고 다른 성씨가 왕 (연왕 장도)이 되어 있던 중 노관이 한나라를 등에 업고 연나라 왕이 된 것이라고 본다.

 

요동 옛 요새를 나와서 패수(강)을 건너고 옛날 연나라 (지금의 서안시 일대)와 제나라 (지금의 제남시 일대)에서 가까운 만의 도읍지 왕험은 어디일까?

 

조선열전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연나라를 살펴 보았다.

연나라는 전국시대 진나라 (지금의 섬서성 서안 동쪽) 서북쪽지역일 수 밖에 없다.

연나라는 진나라가 세어지기 전에는 산동지방의 제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옛날 주나라 (낙양에 도읍한 동주) 인근 지역이다.

현재 백이숙제 묘가 있는 곳 부근이다.

제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지금의 서안에서 가까운 지역에 연나라가 있었으니, 연과 제는 황하 L자 굽이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고 추정하면, (위)만조선은 지금의 태원, 북경 근처일 수 밖에 없다.

지금의 태원, 북경 지역은 대부분의 글쓴이들이 전국시대 조나라, 위나라 지역으로 말했던 곳이다.

 

3-1) 만(滿) 의 성은 무엇일까?

성이 없는데 나중에 역사가들이 임의로 지어 붙였을 수 있다.

사기 이후의 역사가들이 위 (한자가 두 종류다) 라고 붙였으니 성이 위이다.

하나는  衛 이고, 하나는 나라 魏이다.

전국시대에 위나라가 있었음을 주목하자.

위나라를 지금의 북경, 태원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주장이 강하다. 그래서 위만 (魏 滿)으로 쓰는 것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펴면 위나라나 연나라는 원래 조선이고 사마천이 어느 조선을 연이라는 이름으로, 위라는 이름으로, 숨겼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2) 연나라왕 노관 盧綰 이 흉노로 도망가서 만(滿)이 요동으로 나왔다고 하니 만(滿) 의 성이 노관 盧綰 의 노 盧 일 가능성이 있다. 가능성을 알아보자.

강태공의 9세손 제 문공(齊文公, 재위 기원전 815년 ~ 기원전 804년) 의 증손자 고혜(高傒)가 제나라의 로현(盧縣)에 봉읍을 받으면서, 후손들이 봉읍의 이름에서 따서 로씨를 성으로 삼았다. ( 《신당서》 권73상 표제13상 재상세계3)

로현(盧縣)은 산동성 성도인 제남(지난)의 황하 변 장청현(현재 중국 산동성 제남시 장청구) 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주류이다.

 

조선열전에서 옛날 연나라와 제나라 망명자의 왕이 되었다는 부분에서 만(滿)이옛 연나라 사람이어서 옛날 연나라 망명자가 추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뜬금없이 제나라 망명객이 추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연나라 제나라 접경지역에 만(滿) 이 조선의 도읍을 정했고 심지어 만(滿)의 본향 (조상의 고향)이 산동성 제남씨 인근이라면

옛날연 나라, 제나라 사람들이 만(滿) 밑으로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합리적으로 된다!

 

사마천의 사기 권33 한신노관열전을 보자.

노관은 한나라 고조 유방과 같은 동네 풍현에서 같은 날에 태어난 친구였다. 풍현은 지금 어디일까?

강소성 서주시 패현이다. 패현은 제남시에서 직선거리로 150여 키로미터로 서울강남에서 대전 조금 지나는 정도 거리이다.

노관이 태어난 곳은 패현이더라도 본향 (조상의 고향)은 제남시일 가능성은 있다.

 

중국 대륙 도처에 조선민족이 살고 있었는데 산동성 제남시가 조상의 고향이던  조선민족의 후예 노관이 서안시 서쪽으로 이주하여 기원전 202년경에 연나라 왕이 되었고, 노관을 따라다닌 조선민족의 후예이자 옛날 연나라 사람 만(滿)이 다시 본향 제남시 인근으로 돌아와 동이족(진번조선만이) 상투를 틀고 의복을 입고 만(滿) 조선을 세웠다고 하면 무리인가?

 

숱한 의문은 사마천이 (고)조선의 역사를 숨긴 필법의 결과가 아닐까?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