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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62] 이 한장의 음반: 피아니스트 강소연의 미니앨범 '위로'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22 09:17
  • 수정 2020.12.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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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발매된 피아니스트 강소연의 미니앨범 '위로' 음반리뷰

올해만큼 위로가 필요했던 때가 있었을까? 되짚어 보니 유학 첫해였던 1993년, 군대에서 힘들었던 2003년이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위로가 필요했던 한 해였다면 올해는 개인에 국한된 작은 범위가 아닌 남녀노소 전 인류에게 토담토담 위로와 위안이 절실한 전 지구적인 재앙의 해이다. 헬라어로 위로를 뜻하는 '파라클레시스'(Paraklesis>에서 파라는 '~곁에/~곁으로'의 뜻이며 클레시는 '부른다'라는 칼레오의 명사형이다. 그러니 위로라 하면 '누군가의 곁으로 부름받음' 즉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이 '위로'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12월 22일, 피아니스트 강소연의 첫 디지털 미니앨범 <Consolation>(위로)가 기나긴 전염병에 지친 우리 국민들과 인류에 말 그대로 위로로 다가왔다.

피아니스트 강소연

첫 곡인 드뷔시의 <달빛>은 처음부터 3도 음정의 옥타브 도약이 맑고 청량하다. 플랫 계통의 곡일수록 청아함이 더해지는 왠지 모를 미세한 순결. 파동 하나 이지 않는 새벽의 호수, 손을 데면 베일 거 같고 금방 얼어버릴 거 같은 겨울 왕국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빛을 보는 듯한 영롱한 음색이 신비스럽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가슴 깊이 울린다. 몽글몽글하다. 그러면서 다음 곡인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으로 넘어가는데 한음 씩 떨어지는 역시나 드뷔시에서처럼의 Ab음(이명동음인 G#이 아니라 여기도 플랫 계통이다)이 잔잔하게 가슴을 적신다. 강소연의 연타는 음 마다의 들쭉날쭉한 변화가 아닌 일정함을 지속한다. 무게의 경중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예기치 않은 악센트가 생성되는 게 아닌 일정하게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지속력을 보여준다. 빗방울 전주곡에서 중간 부분은 같은 음이 샵 계통으로만 기보되지만 음악적 장면을 전환된다. 그러면서 음의 연타는 무게감이 배가된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까지 네 곡 모두 테크니컬 한 곡이라기보단 비슷한 악풍의 로맨틱한 무드음악에 가깝다. 리스트에서만이 화려한 수사법과 격정이 드러나긴 하는데 요즘의 스튜디오 녹음은 날 거 그대로가 아닌 정밀한 가공으로서 투박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너무 섬세하고 너무 정교해서 우리말의 접두어인 '막'자가 사라진다. 막그릇에 담아 먹는 동지팥죽과 백자에 따라 마시는 청주의 본연의 미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리스트에서만은 그 넘쳐나고 넘실거렸던 격정과 감정을 온몸으로 맞고 싶은데 팥죽이 혹시나 옷에 튈까봐 튀지 못하게 너무나 친절하게 담아져서 나왔다.

나에게 위로가 간절했던 1993년도, 군대에서의 악몽과도 같던 2003년도 지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으로 넘긴다. 나중에 두고두고 남는 이야기는 꼭 고생한 경험담이나 힘들었던 시절이다. 언젠가 2020년을 기억하고 이때를 웃음으로 화제 삼으며 담소를 나눌 날이 올까? 부디 그런 날이 한시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물론 그 웃음은, 그때를 무사히 어찌 되었든 견뎌냈기 때문에 지을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추억과 안도이기 때문이다. 그때 강소연의 미니앨범 <위로>가 그 시절을 이겨냈던 작은 힘이 되었다고 회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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