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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인 러브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0.12.16 09:48
  • 수정 2023.04.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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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는 사랑 시를!

 

다음 주가 크리스마스다. 코로나19로 블루 크리스마스지만 연인에게 랜선으로 사랑 시를 선물해보자. 그렇게 오래된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감각 있는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은 1806년 3월 6일에 태어나 1861년 6월 29일에 사망한 영국 빅토리아 시대 대시인이다. 바렛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상속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결혼 전엔 이름과 성이 같았던 엘리자베스 바렛 바렛, EBB로 서명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소네트 14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소네트 43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시로 유명하다.

 12명 아이들 중 첫째이며 집에서 교육 받았고 열 살 때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서사시 「마라톤 전투」를 썼다. 처음 시는 6살 또는 8살 때 「인간에 대한 폭력의 잔인함에 대하여」인데 1812년의 2가 긁혀 정확한 연도가 논란이다. 첫 독립 출판물은 1821년 5월 월간지에 실린 「그리스의 현재 상태에 대한 시」이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 자라는 종려 가지를 보며 깨달은 생각들」을 이어 썼다. 번역, 산문도 많이 썼으며 사회의식이 높은 시들로 당시 미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이었다.

 집안은 노예 노동으로 재산을 불렸고, 근거 없이 할아버지를 염두 해서 자신이 아프리카계라고 생각했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청교도 지역(미국)으로부터 달아난 노예」와 「국가를 향한 저주」 등을 써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졌고, 미술, 건축 비평가 존 러스킨에게 “나는 서인도 노예 소유주 가족입니다. 만약 내가 저주를 믿는다면, 나는 두려워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쩌면 오랜 질병으로 믿었을지도. 아동 노동력을 비판하는 「아이들의 외침」 시로 법안에 대한 지지를 불러일으켜 아동 노동 개혁을 가져왔고, 여성 권리를 위한 많은 시도 썼다.

 15살 때 진단할 수 없는 병이 세 자매 모두에게 왔지만 엘리자베스에게만 지속했다. 낙마 때문이란 말이 있지만 그전부터 아팠다. 머리와 척추의 심한 통증과 함께 허리가 휘어 거동이 불편했고 나중 앓았던 폐결핵과는 무관하다. 개인적으론 모계 유전일 듯하고, 사춘기에 걸리고 결혼 후 좋아진 건 호르몬 변화 같고, 따뜻한 지방으로 가라는 의사 권유 등으로 보면 류머티즘 관절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후 건강이 회복되어 사회활동도 가능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노예제도와 결혼으로 어긋난 거지 항상 존경하고 그가 없는 삶은 즐겁지 않다고 하고 어머니도 동의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결혼을 금지하고 결혼 시 상속권을 박탈했지만 개인적으론 유전병이 있다는 생각에 불행해질까 하는 걱정을 한 듯하다. 상속만 못 받았지 그녀 개인 재산이 많아 풍족하게 지냈다. 어머니 가문도 농장, 공장, 선박 자산가니 어머니 유산을 받은 듯하다.

 런던에서, 먼 사촌 존 케니언이 윌리엄 워즈워스, 사상,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 등 문화계 인사들에게 소개했고, 이탈리아에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작가들과 교류했고, 파리에서 시인 테니슨 경을 만났고, 비평가 존 러스킨과 친구가 되었다. 다작을 써, 워즈워스의 죽음으로 계관시인 후보였으나 시대의 한계로 앨프리드 테니슨이 수상했다.

 1840년 2월 남동생 사무엘이 자메이카에서 열병으로, 7월엔 매우 가까운 동생 에드워드 항해 사고로 익사, 나중 여동생 죽음으로 건강이 나빠졌다. 6살 연하 무명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과 도망가 결혼한 걸로 유명하다. 당시 그녀는 유명시인이어서 활발한 로버트 브라우닝을 바람둥이로 봤고, 그녀 형제들은 하층민이자, gold-digger(제비)로 몰았지만, 남편도 은행 직종 부자 집안이다.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무명이었던 남편도 성공하고 43세의 나이로 두 번 유산 끝에 아들 하나를 얻고 이후 두 번 유산했지만 잘 살았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4번의 유산이 없었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 듯하다. 강신술에도 빠졌지만 남편의 강력한 반대로 그만두었다. 남편이 구애한 걸로 알려졌지만 엘리자베스가 먼저 그의 시가 좋다고 칭찬했다는 말도 있다.

 『포르투갈어 소네트』는 남편에 대한 사랑 시다. 개인적인 거라 그녀가 출판을 꺼려하자, 번역본인 척 내자는 남편의 제안으로 정한 제목이니 『포르투갈인으로부터의 소네트』는 오역이다. 엘리자베스는 포르투갈 최고 시인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1524-1580)를 존경해 그에 대한 시 「카타리나가 카몽이스에게」를 써서, 남편이 아내를 ‘내 작은 포르투갈인’이란 애칭으로 그녀를 불렀다. 숨은 이중 의미로 제목을 붙인 듯하고, 포르투갈 소네트의 전형적인 운율 체계를 사용한다.

 북미평론가는 “브라우닝의 시는 모든 면에서 위대한 학식과 풍부한 경험, 강력한 천재성을 지닌 여성이 말하는 것이며, 때로는 남자 특유의 힘을 여성의 본성과 결합시켰다.”며 극찬했지만 남자 특유의 힘이라니, 여성과 남성 구분을 전제로 남성의 능력을 강조한 평이라 현대로 보면 칭찬이 아닐 수 있다. 사랑 시로 유명하지만 사회의식 시도 많다. 여기선 유명한 사랑 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Sonnet 14

 

If thou must love me, let it be for nought

Except for love’s sake only. Do not say

‘I love her for her smile—her look —her way

Of speaking gently,—for a trick of thought

That falls in well with mine, and certes brought    

A sense of pleasant ease on such a day’—

For these things in themselves, Beloved, may

Be changed, or change for thee,—and love, so wrought,  

May be unwrought so. Neither love me for

Thine own dear pity’s wiping my cheeks dry,—

A creature might forget to weep, who bore

Thy comfort long, and lose thy love thereby!

But love me for love’s sake, that evermore

Thou mayst love on, through love’s eternity.  

 

소네트 14

 

그대가 날 사랑해야 한다면,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줘요.

‘그녀 미소와 표정,

부드러운 말투와

나와 어울리는 유쾌하고 편안한  

재치 때문에’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러한 건 변하고, 그대도 변하게 합니다.

그런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랑의 연민으로도 내 뺨의 눈물을 닦지 마세요.

그대 위로로 눈물을 잊은 사람은

그대 사랑도 잃을 테니!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줘요

언제나 영원토록 그대가 사랑할 수 있도록.  

   

Sonnet 43

 

How do I love thee? Let me count the ways.

I love thee to the depth and breadth and height

My soul can reach, when feeling out of sight

For the ends of Being and ideal Grace.

I love thee to the level of every day’s  

Most quiet need, by sun and candlelight.

I love thee freely, as men strive for Right;

I love thee purely, as they turn from Praise.

I love with a passion put to use                          

In my old griefs, and with my childhood’s faith.

I love thee with a love I seemed to lose

With my lost saints, -- I love thee with the breath,

Smiles, tears, of all my life! -- and, if God choose,

I shall but love thee better after death.

 

소네트 43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냐고요? 헤아려보죠.

내 영혼이 닿는 한              

깊고 넓고 높게 사랑해요

신의 은총으로 죽을지라도.                      

태양과 촛불이 매일 필요하듯

그대를 사랑해요.

권리를 얻듯 거리낌 없이 그대를 사랑하고,

숭배가 아닌 순수함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이 같은 믿음으로

고통 속에 순교하듯 사랑합니다.          

사랑이 다할 때까지 죽도록 사랑하고,

모든 삶의 숨결과 기쁨과 비탄까지 사랑합니다!

신이 부르신다면,

나는 그대를 죽어서라도 사랑합니다.

 

 남편의 구애 편지 “the one thing you must believe, must resolve to believe in its length and breadth, is that I do love you and live only in the love of you.”(단 하나 당신이 믿어야 하는 것은, 그 길이와 넓이를 믿기로 결심해야 하는 것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사랑 안에서만 산다는 것입니다)에서 인용한 depth and breadth and height.

 남편은 사랑을 구체화시켜 표현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영혼 입장에서, 삼차원을 물체를 만지는 느낌이 아니라 영혼이 닿는 길이, 영혼이 닿는 간격, 영혼이 닿는 거리, 각각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and가 처음부터 나오고. 보통 depth, breadth and height로 함이 일반적인데 저렇게 and를 다 넣은 건 깊이, 폭, 높이의 상호 연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혼과의 연관이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끝은 죽음이고 기독교에선 죽음도 신의 은총이고, 3행에 영혼이라고 했으니 4행은 죽음을 말한다. 죽어서 영혼이 된 상태다. saints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말하고 초반부 soul과 연장선상이다. 성자는 카톨릭 용어이니 기독교 신자인 시인이 그 의미로 했을 리 없다. 또한 성자를 말했다면 종교적인 건 Grace처럼 대문자로 했을 것이다.

 with my lost saints, -- I love thee with the breath에서 -- 줄표는 앞을 설명한다. 숨결을 같은 줄에 넣음으로써 saints는 성자가 아니라 죽음을 상징한다는 걸 강조한다. lost는 잃다가 아니라 죽다 이고, passion도 과거엔 고통, 순교로 쓰여 신의 은총, 죽음과 일관된다. 전체 맥락은 순교자의 자세로 사랑한다는 의미다. Praise도 순수의 반대 개념이니 여기선 찬양이 아니라 광적인 숭배로 봐야한다.

 

Sonnet 6

 

Go from me. Yet I feel that I shall stand

Henceforth in thy shadow. Nevermore    

Alone upon the threshold of my door

Of individual life, I shall command

The uses of my soul, nor lift my hand  

Serenely in the sunshine as before,

Without the sense of that which I forbore--  

Thy touch upon the palm. The widest land  

Doom takes to part us, leaves thy heart in mine  

With pulses that beat double. What I do

And what I dream include thee, as the wine

Must taste of its own grapes. And when I sue

God for myself, He hears that name of thine,

And sees within my eyes the tears of two.

 

소네트 6

 

내게서 떠나세요. 그럼에도 나는 서있습니다.              

이제부터 그대의 그림자 속에.

다시는 내 삶길에 외로이,            

전처럼 햇살 속에서 냉정히,    

그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를 갈라놓은 운명의 손길은

함께 뛰는 맥박으로 그대의 심장을

내게 남깁니다.

와인이 포도 맛이듯,

그대 안에서 살고 꿈을 꿉니다.  

신에게 간청할 때, 그는 그대의 이름을 듣고,

내 눈 속에서 두 사람의 눈물을 봅니다.

 

 upon the threshold of는 바야흐로, 이제 막 시작하는 걸 말하고 door는 길이란 뜻도 있다. 햇빛,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어 손을 뿌리쳐도 그림자, 이상, 꿈에서는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 미국 시인 에드가 앨런 포는 브라우닝의 시 「제럴딘 부인의 구애」에서 영감을 받아 시 「까마귀」을 써 그 시가 포함된 시집을 그녀에게 바쳤다. 포는 “그녀의 시적 영감은 최고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다”며, 그녀의 예술 감각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고 평했다. 또 에밀리 디킨슨에게 큰 영향을 주어, 에밀리는 그녀를 성취한 여성으로 존경했고, 릴리안 휘팅은 1899년 엘리자베스 전기에서 “가장 철학적인 시인”이라 극찬한다.

 메리 러셀 미트포드와 그녀의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성들에게는 지적 열등감이 있다고 믿었다 썼지만, 「오로라 리」라는 가상 여성 이름인 소설적인 서사시에서, 일과 사랑을 모두 포용하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만들었다. 프랑스 철학자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러지는 것이라 했듯, 열등하다는 생각은 시대의 한계이지 브라우닝의 한계가 아니다. 그 자체가 남성 가치관의 여파이다. 대부분 여성들이 자신을 표출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일반 여성들의 우월을 알겠는가? 무기력한 자조일 뿐이다.

 1861년 6월 29일 남편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웃고, 행복하게 소녀 같은 얼굴로. 7월 1일 월요일, 주변 도시 상점들은 문을 닫아 애도했다. 마지막 말은 “아름답다”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남편이? 인생이? 시가? 아마 셋 다. 로버트 브라우닝이 그녀를 처음 만나러 온 날 그녀가 쓴 한 줄 글이 전 인생과 사랑과 시를 대변한다.

 “그대가 한 번 왔을 때 그대는 영원히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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