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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52] 콘서트 프리뷰: 박정은 작곡발표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09 09:25
  • 수정 2020.12.0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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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일신홀

10월을 기점으로 풍성하게 이어져오던 한국 창작곡 발표회를 흩어보면 매년 거행되는 작곡가협회의 대한민국실내악제전,미래악회, 한국여성작곡가회, 동서악회, ACL, 창연악회, 제주국제현대음악제 등의 협회와 단체 차원의 동인 발표회 말고도 코로나 와중에도 5-6명의 작곡가들이 개인발표회를 개최하였다. 상반기의 신지수 작곡 발표회 말고는 전부 하반기에 몰려 있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작곡가 박정은의 발표회는 올 2020년 창작곡 발표회의 대미를 장식할 무대이다. 9월의 임승혁, 지난 주의 전현석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로 추계-독일(전현석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이지만 같은 범주 내로 통용)이라는 테크트리로 추계예대가 이제 엄연히 한국현대창작음악의 요람이 되고 있는 듯하다.

박정은 작곡발표회 포스터
박정은 작곡발표회 포스터

작곡가 박정은은(1986)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학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김혜자, 김연수 사사) 한양대학교에서 석사과정 졸업 후(임종우 사사)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작곡 석사과정을 최고점수로 졸업하고(Rebecca saunders 사사) 뒤셀도르프 국립음대에서 작곡 우수과정을 졸업하였다.(José m. sánchez-verdú 사사) 현재 ISCM, 창악회, ACL-KOREA의 임원과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한양대학교와 추계예술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첫 곡은 피아니스트 Jared Redmond의 위촉으로 작곡되어 올해 2월 미국에서 초연된 <Moto perpetumm – 태평무의 재해석 for Piano solo> (2020, 국내 초연)이다. 왕실의 번영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하여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추는 태평무는 장중하면서도 점점 빨라지는 발놀림이 특징이다. 빠른 걸음으로 복잡한 장단을 경쾌하게 가로지르는 발디딤이 장단과 어울려 이 춤만이 가진 멋인 장단 사이사이에 원을 그리며 돌리고 굴리는 기교적인 발짓에서 영감을 얻은 원의 모형을 띤 하나의 고정된 음형은 끊임없이 빨라지는 반복과 중첩의 과정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간다.

발표회의 유일한 초연곡인 <there was(있었음) for flute, violin, cello and piano>은 우리네 일상의 권태로운 관계성을 다룬 작품이다. 대형마트에 나열된 온갖 종류의 시식코너 음식을 돌아다니면서 맛을 보지만 포만감 대신 더부룩함만 느끼는 그저 그 순간의 덧없음, 의미 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스크롤, 친구와 팔로워를 맺으면서도 어떤 타자도 만나지 못하는 관계, 정보와 데이터를 쌓으면서도 어떤 지식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 순간적인 것들, 그리고 쉽게 사라지는 것들.. 이런 현대사회의 단면을 느낀 작곡가의 곡목해설을 읽으니 미국의 밥 무어헤드(Bob Moorehead) 목사가 쓴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글이 절로 연상된다. 덩치는 커졌지만 인격은 작아지고 이익엔 몰두하지만 인간관계는 경멸한다. 세계 평화의 시대라며 가족 간의 싸움은 끊이지 않고 레저는 늘었지만 즐거움은 적어졌고 음식은 많이 먹지만 영양은 없고 맞벌이로 소득은 늘었지만 이혼도 늘고 집은 좋아졌지만 가정을 파괴된 현대사회의 단면. <there was>에는 변화하는 짧은 음형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것들은 비-인과적인 방법으로 배치된다. 갑작스러운 멈춤, 새로운 소리의 짧은 등장, 다시 사라짐의 반복 등이 음악을 구성한다.

춤과 테이프로 구성된 곡까지 이번 발표회의 프로그램은 다채롭다. <중독>이란 제목의 2명의 댄서와 테이프를 위한 곡은 2013년에 작곡된 곡으로 독일, 그리스, 아르헨티나에서 이미 연주되었고 독일에서 CD로조 발매되었다. 박정은의 독일 유학 시절, 수련회에서 약물중독자들을 돌보는 미국 선교사의 생활을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강렬한 감정을 느껴 작업한 곡이다. 그러면서 본인의 중독 대상을 찾아보니 핸드폰, 특히 SNS 중독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작곡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테이프에 녹음하였고 스마트폰 중독 관련 뉴스를 인용하고 팝 음악도 소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중독에서 벗어나고픈 감정이 몸의 움직임으로 표출될까? 무용수와 함께 하는 무대는 이날이 처음이다.

작곡가 박정은
작곡가 박정은

자기 복제에 익숙해지는 작법에 안정을 잃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한병철의 책을 읽고 박정은 작곡 두 번째 분기의 첫 작품인 <타자의 소리>가 작곡한 것처럼 오늘의 발표회가 마치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의 조언을 듣고 실의를 떨치고 일어나 발표한 피아노협주곡2번처럼 대성공을 거두길 바란다. (사)한국작곡가협회의 "2020 파안 생명나무 작곡가"에 선정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정은의 작곡발표회는 현대문화기획에서 주관하고 서울문화재단에서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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