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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93 - 끝 ]  합장

김홍성
  • 입력 2020.12.0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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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그 말끝에 돌아서서 자기 갈 길을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로 총총히 사라지는 한 수행자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또 한 번 합장했다. 

앞장서서 걸으며 생각해 보니, 스님과 내가 호텔 마리아 옥상에서 만났다가 다시 다르질링에서 만날 때까지 두 어 달 동안 스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 내가 물어본 일도 없었다. 스님과 작별하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버스에 오르기 전에, 스님에게 그것을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자 궁금한 것들이 두서 없이 떠올랐다. 림빅의 누구네 집에서 묵었는지, 며칠이나 체류했는지, 람만의 룸부네도 아는지, 까말라와 까말라에게 스웨터를 떠서 입힌 여행자를 아는지...... 마침내 질문의 핵심을 찾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스님에게 물었다.

혹시 까말라를 아세요? 람만의 룸부네 집에 사는 룸부네 먼 친척 소녀입니다.”

스님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기억납니다. 누군지 알겠어요. 저도 그 집에 여러 날 묵었으니까요."

그럼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를 떠준 여행자도 보셨겠네요? 림빅의 셀파 호텔 디키 도마는 그 여자를 나니 디디라고 불렀습니다. 동양 여성이고, 말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글쎄요. 나니 디디라는 이름은 모르겠어요. 봤는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대답을 못하겠습니다. 본 것도 같고 못 본 것도 같고 그래요."

'본 것도 같고 못 본 것도 같고'라는 말이 애매하기는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좀 더 얘기를 해서 기억을 끌어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말했다. 

"아쉽군요. 나니 디디는 스님과 거의 같은 시기에 그 동네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다시 돌아서서 바삐 걸었고 스님은 내 뒤를 따라 왔다. 시동을 건 버스들 앞에 조수들이 나와서 행선지를 외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승강구 안쪽에 세로로 장치한 철봉에 매달려서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는데 그 버스가 바로 림빅으로 가는 막차였다.

 

나는 스님을 향해 돌아서서 두 손을 모았다. 스님도 두 손을 모았다. 둘이 마주보고 합장을 하고 서 있자니 섭섭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는 가슴에 모았던 두 손을 내리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스님은 주저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뼈와 가죽만 있는 스님의 길고 메마른 손은 따스했다. 스님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림빅에 가면 나니 디디를 만나게 되기를 빕니다."

스님은 그 말끝에 돌아서서 자기 갈 길을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로 총총히 사라지는 한 수행자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또 한 번 합장했다. 

 

터미널을 빠져 나온 버스는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어시장 앞에 이르자 멈췄다. 도로 정면에서 시위대가 육박해 오고, 교통경찰이 차량 운행을 막고 있었다. 좀 전에 터미널 앞길을 지나간 시위대였는지, 다른 정당에서 구성한 새로운 시위대였는지는 모르겠다. 운무가 흩어지는 하늘에서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진다발! 진다발! 진다발!”

 

햇살 속에서 들려온 시위대의 구호는 진다발이었다. 진다발은 승리를 뜻한다고 했던가? 길가에 멈춘 버스의 차창 밑으로 시위 군중의 얼굴들이 지나갔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벵갈 인종,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몽골 인종, 그리고 아리안계도 더러 보였다.

 

거기서 미쉘의 형을 보았다. 차창 아래를 스치며 진다발을 외칠 때 드러난 그의 이빨은 사람 이빨 같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심통 맞은 얼굴이었다. 혹시 미쉘도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미쉘은 못 봤다. 대신 길 건너편에 시무룩한 얼굴로 서 있는 형사 콜롬보를 봤다. 그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겨울 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분홍색 짧은 치마에 검은 가죽 재킷을 걸쳤으며 빨갛게 염색한 짧은 머리의 몽골계 여성도 봤다. 비쩍 마르고 키도 큰 그녀는 목구멍의 가래침을 모아 하늘을 향해 퉤 뱉고 또 퉤 뱉으면서 도로를 가로 질러 콜롬보 쪽으로 가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두 광인의 대면이 예상되고 있을 때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목만 돌리다가 이내 상체를 비틀며 일어서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우하는지 보려고 애썼지만 끝내 못 봤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콜롬보는 여전히 거기 그렇게 서 있고, 빨간 머리 여자는 또 한 번 하늘을 향해 퉤, 가래침을 뱉는 장면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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