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푸루지 호프
윤한로
미카엘라와 아들내미 우리 셋
저번에 식구들꺼정 술 마시니
미주알고주알 맛있다
트집 잡힐 일 없고
도망갈 사람 없고
누가 내든 술값 머리 안 쓰고
쟁그랑쟁그렁 좀 좋으냐
아들내미한테 들려주는 옛날 얘기
군대 얘기, 학교 때 얘기, 인생의 훈계
그 구라 어디가면 누가 들어주냐, 존경해 주냐
피식 피식, 곁에서 아낸 연방 콧방귀 뀌지만
왜, 것두 다 음악 소리 같잖냐
자식은 모자라서 대학도 떨어지고
우린 다니는 직장에, 살림에 갈수록 쪼들시고
그래 우리 셋, 호프가 떠나가라
코가 삐뚤어지도록
혀가 꼬부라지도록 마신 게다
그러구러 나도 모르게 뒤로 까지니
필림 끊기니, 아아, 얀마 장하다
새끼 등에 업혀 오는 접때 밤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낡은 파카에 오리털 풀풀 날리는 추운 겨울
시작 메모
귀촌하기 전, 안양 살 때구나. 가만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차도 없고 내 집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오직 시 쓰는 것만이 힘이던 시절, 주구장창 걸어 다니던 것만이 힘이던 시절, 안양천 미라보 똥물 다리 건너, 역전 층계참 올라갔다 내려오면, 일번가 노숙자 벤치에 잠깐 앉아, 찌그러진 종이컵에 시 한 편 쓰고 싶던 시절, 거진 학교에 지각하던 시절, 그래, 허구한 날 그 작자 몇몇한테 쫑코나 먹고, 비싼 밥 먹고. 그때 누가 말했지. 그대 왜 핸드폰 안 갖냐구. 싫소. 절대 안 갖겠네. 억지로 사 준다면, 그날 바로 미라보 다리 똥물에다 확, 집어 쳐넣을 거라고. 늬들이나 몇 대씩 가져. 그런 것들 마치 저급한 시인들 신변잡기나 되는 냥 치를 떨었는데. 게다가 내 아들놈 사년제도 떨어지고 이년제도 떨어지고 다 떨어질 땐 아프면서도 슬프면서도 얼마나 기뻤던가. 인간 하나 탄생했다고. 핸드폰, 차, 집, 시보다 더 큰 힘, 더 큰 껀수 생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