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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33] 이 한 권의 책: 피아니스트 송하영의 '마음아 괜찮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1.0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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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음악가들이 인문학이네 토크네 힐링이네 따위의 부재를 붙여 연주만 하는 게 아닌 해설과 설명을 곁들인 콘서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유튜브 방송 역시 떨떠름하다. 대중들에게 클래식을 알리고 소개한다는 명목하에 요 3~4년 사이에 부쩍 생겨난 이런 현상은 처음의 순수한 음악에 대한 봉사와 사명이라는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연주력 떨어지고 노래 안되는 사람들이 새로운 활로로 대중들과 접촉하는 수단으로 삼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에고를 들어내고 성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전락되어버려 웃음과 애교 팔면서 가십성 신변잡기, 흥미 위주 음악계 비하인드스토리나 들려주면서 대중들의 관심과 조회수 구걸에 나서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송하영의 신간, 마음아 괜찮니(흔들의자)

음악가들이 평생을 묵묵히 지켜온 음악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현장에 나오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게 대중에 가지고 있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무례, 무지, 무식, 편견, 선입견이다. 처음부터 진심으로 클래식 음악이 좋다면 기본 소양은 스스로 갖추고 음악에 대한 존중으로 무장되어 있을 텐데 염불엔 관심이 없고 잿밥만 노리다 보니 음악보단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에만 매달린다. '난 클래식 음악이 좋은 게 아니라 피아노 치는 당신이 좋아서 결혼했다'라는 어느 미술관장의 말마따나 음악인의 남편, 부모님, 가족이라고 해도 별반 다른게 아닌 마당에 클래식 음악을 알린다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되는 음악인 입장에서 자존심이요 자긍심 모두 버리고 사회에 적응하고 편입하여 일반인들을 설득하라고 강요받는다.

지난 10월 15일에 개최되었던 출간 기념 음악회

피아니스트 송하영은 선화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선화예고 재학 중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사람으로 음악가 집안의 딸이다. <마음아 괜찮니, 마음이 묻고 클래식이 답하다>(흔들의자)는 2004년 귀국하여 크고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2012년의 <피아니스트 송하영과 함께 걷는 음대로 가는 길, 그리고 안단테 칸타빌레> 등을 집필한 그녀의 최신작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려교향악단, 서울심포니, 춘천시향 상임 지휘자를 역임한 송석우로서 책 내내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존경이 서려 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소개하는 항목에서는 그 곡을 좋아했던 그래서 그녀까지 좋아하게 되어버렸던 절절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 있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송석우 지휘자가 활동했을 20세기 후반과 현재의 음악계 아니 사회 전반적인 풍토는 너무나 달라져 있다. 그때는 돈 말고도 숭고한 가치가 많이 있었고 뭔가를 얻고 누리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수고'를 기울여야 됐다. 음악을 듣기 위해선 음악회에 가야 했으며 자신이 좋아하고 소장하고 싶은 음반을 수집하기 위해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했다. 뭔가를 공부하기 위해선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되었다. 지금은? 앉아서 손가락만 까닥까닥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실컷 보고 앉아서 전 세계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값없이 얻을 수 있다. 그런 편리를 얻은 대신 우리는 소중함을 잃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넘쳐나는 세상에서 절실함과 끈기, 인내, 원형에 대한 가치에 대한 소중한 탐구와 존중이란 미덕이 소멸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딸인 송하영은 아버지의 이런 음악 철학과 사명, 유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간다. 시대와 기술이 변했으니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이 개인적인 감상에서 벗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회를 치유하고 황폐해진 인간 본연의 마음을 힐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런 사회적 연대를 꿈꾸고 나아간다. 음악치료? 역시 철저한 음악 근본주의자인 필자 입장에선 시답지 않은 용어다. 모 대학에서 최신 학문이라고 개설해서 한동안 음악 유망직종이라고 유행했던 철 지난 업종이다. 이런 삐딱한 시선을 고쳐주기 위해 송하영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학창 시절 음악에 대한 추억을 소환한다. 음악수업 때문에 도리어 음악에서 멀어진 사람들....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이 자신이 출연한다고 남고 반 학생 60명을 강제로 끌고 가 보여준 '마탄의 사수', 한참 예민한 사춘기의 나이에 억지로 가창이라는 명목하게 같은 반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해서 그 이후 노래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음치 내 친구 등 조금만 돌아보면 주변에는 이런 피해자(?)들이 넘쳐난다. 송하영은 고정관념, 즉 일제의 잔재이자 주입식 교육의 폐해요 음악과 하등 상관없는 행위들로 야기된 상처와 고름을 치유라는 게 치료로서의 시작이라고 하니 수긍이 간다.

피아니스트 송하영의 신간에 쥔 여러 손들, 사진 출처: 송하영 페이스북

누가 연주하냐에 따라 감동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음악을 결국 듣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절대불변의 진리에 도달한다. 송하영이 외치는 클래식 대중화라는 게 근본적으로 필자와 같은 철학이라는 것! '테스형'을 성악가가 부르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피아노로 연주하고, '낭만에 관하여'를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게 아닌 위대한 작품의 가치를 알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 들으면서 그 감상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의 자생 과정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안도와 기쁨으로 책을 덮게 만든다. 대중의 지속 가능한 감상을 위해 송하영이 아버지와 같은 듯 다른 '발품'을 팔며 깨어 있는 한 음악과 함께 한 아버지의 유고를 이어간다.

진정한 클래식 음악 대중화의 의의

대한민국의 클래식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소고를 다룬 부록(?)은 앞으로 같이 채워나갈 빈 공간이요 한국 클래식 음악이라는 오페라의 서곡에 불과하다. 송하영이 이제 막이 오르면 무대에 서서 여백을 채워나가며 극을 진행하라. 진솔한 송하영의 마음에서 우러난 내면의 소리에 대한 그녀만의 답이 총총히 배어 있는 이 한 권의 책 <클래식 힐링 테라피 - 마음아 괜찮니!> 정신적 궁핍에서 벗어나 위로의 바다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개인에서 함께로 나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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