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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겨내기] 이런 날도 있었습니다.

mediapiawrite
  • 입력 2020.11.0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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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금방 지나가겠지' 생각했던 코로나입니다. 모두의 기대와 달리, 이제 코로나19는 인간의 삶에 자리잡고 오랜 시간 인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땅이 굳어지듯이,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이 위기마저 극복하고 더 좋은 세상 속에서 '그런 날도 있었지' 회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의지로,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슬기롭게 지금의 순간을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희망을 기대하고 많은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해주는 '백지은' 작가님의 '이런 날도 있었습니다' 입니다.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에 참여해주신 백지은님의 작품 '이런 날도 있었습니다.' 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겨난지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난 8개월동안 사람들은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해야했다. 예를 들어 은행업무나 학교수업, 회의 등 비대면으로 해결해야하는 상황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실내에 들어갈땐 수시로 체온을 측정해야했다. 처음엔 이런 방식들이 어색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마스크를 써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어디든 입구에 체온계와 손소독제가 있다. 물론 우리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대학교 실습 전공 졸업반임에도 학교에 나가지 못한채로 종강을 했고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셨던 엄마는 매출이 반토막도 아닌 토막도 나지 않게되어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노동센터를 수시로 방문하시며 취업을 다시 준비하고 계신다. 항만에서 일하시는 아빠는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수입, 수출이 제한되는 형국이라 일이 많이 줄어 예전엔 주말에도 일을 가셨던 아빠는 집에서 쉬는 날이 잦아져 온 가족이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할 수 있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유행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금방 지나가겠지, 누군가 해결책을 찾을거야‘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었다. 그렇게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어느덧 여덟 달이 지났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매일 확진자 숫자가 갱신 되고 핸드폰엔 알람보다 경보문자가 먼저 울려 계획보다 일찍 잠에서 깨는 날이 많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계기로 꽤나 껑충 뛰어버린 마스크의 가치는 서민들은 쉽사리 무시 못하는 비용을 써야했고 병원에서 일을 하는 친구는 코로나 확진자를 담당하는 병원에서 근무를 하는 건 아니지만 매일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고 했다. 확진자를 치료하는 병원은 그 병원대로 확진자를 치료하기 바쁘고 그렇지 않은 병원은 일반 환자들을 돌봐야하기에 바쁘다고 했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생활방식이 조금은 바뀌었기 때문에 사소한거에도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새로운 해결방안을 찾아 적응하기까지 항상 긴장한 상태이기 때문에 예민지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의 가치를 깨달았다. 예를 들면 봄이 되면 만개한 벚꽃이 있는 축제 안에서 파는 회오리감자를 먹을 수 없다는 것,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취소, 연중무휴인 영화관 휴관등 너무 당연해서 당연하게 누려왔던 마스크 밖의 일상들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소함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인터넷에서 지구가 이기적인 인간들이 너무 미워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겨났고 다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이라면 너무 절망스러웠다. 나는 아직 취업은 물론 졸업도 못했고 이대로라면 화상채팅으로 졸업식도 가능해보였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한가함을 좋아하는 나지만 뒹굴거림이 강제가 되어보니 친구들과 침 튀기며 신나게 얘기하고 침 섞으며 먹었던 빙수가 그리웠다. 마스크로 인한 트러블도 지긋지긋 했고 코로나로 인해 강제 보릿고개를 맞이한 우리집은 일주일 반찬이 계란찜, 계란후라이, 계란말이등의 계란을 이용한 계란요리였다. 토하면 흰색 노란색만 나올 것 같았다. 최근엔 치과 진료를 받으려고 벗었던 마스크를 깜빡하고 버려 버스를 타지 못했던 나는 30분동안 땀을 흘리며 집에 걸어왔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유독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왜 안쓰냐며 내리라고 하셨던 버스아저씨의 차가웠던 매정한 눈과 음성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셨기 때문에 눈만 보여 더 무서웠다.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속상했다. 이제는 이게 당연해진게 너무 절망스러웠다. 과장 조금 보태서 지구가 사람이라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미안하다고 내가 무심했다고 하며 울며 빌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고 바지를 입고 있지 않기에 붙잡을 바짓가랑이가 없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확진자의 수는 감소하고 완치자는 증가했다는 소식이나 무관객 콘서트, 고생하는 의료진을 의미하는 SNS 덕분에 챌린지, 재고가 쌓여 팔지 못하는 농식물등의 품절대란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서로의 고생을 알아주며 새로운 생활방식에 같이 발맞춰 걷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정부에서 나눠줬던 긴급 재난금은 누군가의 안경이 되어 주기도 했고 우리가족에겐 맛있는 음식이나 책이 되어 소소하지만 큰 행복을 주기도 했다. 최근 마스크를 사지 못해 약국에서 전전긍긍 하시는 할머니에게 다른 마스크를 사러 온 사람들이 자기가 산 마스크를 나눠주는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고 코끝이 찡했다. 나는 변화무쌍한 각자 다른 불황 속에 하루하루가 버거워 숨이 가쁘지만 가쁜 호흡을 조금이라도 내쉬울 수 있었던 것은 예기치 못하게 공동체 사회에서 서로가 주는 따뜻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들 사는게 힘겹지만 좋은게 좋은거라고 서로가 나누는 힘이 깜깜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다. 올해 여름은 장마가 꽤나 길었지만 어느새 장마가 지나고 여름이 왔다. 우리는 같이 이겨낼 수 있고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긴 장마가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왔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언젠가 ‘이런 날도 있었지’ 하며 추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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