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후손없는 광복군 추석 차례를 시민단체가 12년째 지내고 있다

신영배 전문 기자
  • 입력 2020.10.03 22:40
  • 수정 2020.10.03 22: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후광복군 유지계승 위해 국립묘지안장과 좌우대립극복 절실

대한민국순국선열숭모회(이하 순국선열숭모회)2009년부터 꽃다운 나이에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산화한 무후광복군의 넋을 위로하고 그 유지를 계승하고자 추모행사를 개최해 왔다. 올해도 102일 서울시 강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무후광복군 17위 합동묘소에서 애국가와 신대한국 독립군에 백만 용사야로 시작되는 독립군가가 각각 4절까지 울려 퍼졌다.

1부 추모제가 시작된 후 기업윤리경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협의회’(이하 기윤협) 이보영 공동대표와 선진복지사회연구회 이정숙 회장 그리고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이하 나베봉) 한옥순 회장과 강순금 회원이 광복군 묘소 비석 뒷면에 새겨진 추모시를 애절하게 공동으로 낭송하여 추모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진행을 담당한 김선홍 글로벌에코넷 상임회장은“‘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친일파 후손은 호의호식하고 독립운동가 후손은 폐지를 줍는 악습을 반드시 청산해야 떳떳한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넘겨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대용 순국선열숭모회 상임공동대표는 경과보고에서 순국선열숭모회는 시민사회단체, 강북구 지역주민들로 구성되어 2009년부터 추모제를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설날과 추석날 2차례 송편과 떡국과 술을 준비하여 합동차례를 봉행해 왔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전대열 순국선열숭모회 상임공동대표는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고,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다. 따라서 광복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군이며, 정부는 광복군 합동묘소에 계신 17위 광복군을 국립묘지에 안장시켜야 된다.”고 주장했다.

송운학 개혁연대민생행동 상임대표는 조선독립군, 조선혁명군, 조선의용군, 동북항일연군 등 일제강점기 항일독립무장투쟁단체 중 광복군이 처음부터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명무실한 집단에 가까웠다. 조선의열대를 이끌었던 김원봉 선생이 중국공산당과의 연대에 합류하지 않고 광복군에 합류했다. 비록 소수파에 불과했지만, 좌우대립을 뛰어넘어 오직 항일독립이라는 대의 앞에 대동단결하자는 결단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광복군이 명실상부한 무장집단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소는 1943~1945년 중국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광복군인 중 그나마 동료들이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가 광복 후 귀국하면서 봉안하여 모셔온 분들을 모신 묘역이다. 유가족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나 후손이 나타나지 않는 17위는 광복 22년이 흘러간 후에야 합동묘소로 마련되었다. ,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광복군 선열 중 신원과 생사가 확인된 17위 합동묘소로서 1967년 한국광복군 동지회가 조성했고, 1985년 국가보훈처가 단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유리 합동묘소에 묻혀 잠들어 계신 광복군 17위는 대부분 20대 미혼일 때 전사해 묘역을 돌 볼 후손이 전무하다. 강북구에서 묘소를 관리하지만 홍보도 부족한 편이다. 이들 선열의 고귀한 희생과 존재 등을 알리고 그 유지를 계승하기 위한 체계적이고도 실천적인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